25일, 정읍시립박물관 제6회 기획특별전 「한국의 세잔 승동표, 정읍을 품다」 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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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정읍시립박물관 제6회 기획특별전 「한국의 세잔 승동표, 정읍을 품다」 개막식
  • 박호진 기자
  • 승인 2014.03.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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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고향 정읍에서 교육자.예술가의 삶 펼친 운봉 승동표 화백 작품세계 조명

정읍시립박물관이 제6회 기획특별전으로 마련한 「한국의 세잔 승동표, 정읍을 품다」개막식이 지난 25일 열렸다.
이번 기획전은 '한국의 세잔'이라 불리는 승동표(1918~1996) 화백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자리로, 시립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6월 1일까지 이어진다.

시립박물관은 이번 전시회와 관련, “정읍을 배경으로 한 작품과 정읍 거주 당시 제작한 작품 위주로 선정해 메인파트(main part)를 구성했고, 승화백의 붓과 이젤(easel), 팔레트 palette) 등의 화구들과 서적, 가족앨범, 훈장 등 승화백의 땀과 숨결이 간직된 유품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또 관람객들이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1부-정물, 제2부-풍경으로 구성하여 1개월 단위로 교체 전시할 예정이다.
전시회에서는 특히 승화백과 세잔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별도 편집한 작품영상과 옛 사진 및 가족, 제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들려주는 승동표 화백의 스토리(story)도 만날 수 있다.
또 1936년 조선일보가 주최한 「전조선미술전람회」에서 1천여의 경쟁작을 물리치고 최고상을 수상했던 승화백의 ‘꽃다발의 있는 정물’그림을 모사해보는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1918년 9월 14일 평북 정주군에서 출생한 승화백은 1933년 임용련 선생의 지도로 미술에 입문하여 우리나라 대표화가인 이중섭의 후배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다.
1936년 제1회 ‘조선학생미전’에서 최고상인 특선을 차지했고, 1938년 일본 동경으로 유학하여 근대 서양미술을 체득했다.
1942년 귀국 고향에서 교사 및 작품제작 등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1951년 한국전쟁 중에 아내와 세 자녀를 북에 두고 홀로 월남하여 전북에 정착했다.
이후 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정읍 중학교와 정읍농고(현재 정읍제일고), 정읍여고에서 근무하면서 오랫동안 정읍과 깊은 인연을 맺으며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승화백은 월남 후 1996년 작고할 때까지 단 한차례의 전시회를 열거나 출품하지 않아 오랫동안 ‘잊힌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사후 국립현대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등에서 수차례 전시회를 열게 되면서 명실공히 '한국의 세잔'이라 칭송받으며 한국 근대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예술가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됐다.
한편 당일 개막식에는 김생기시장을 비롯 유종근 전 전라북도지사, 고영규 도의원, 정읍시의회 의원, 이흥재 전북도립미술관장, 이태영 전북대학교박물관장, 정창환 정읍문화원장, 승화백의 유족과 제자 등이 참석했다.
개막식에서 장남 승수관씨는 “부친의 제2의 고향인 정읍에서 뜻 깊은 전시회를 갖게 돼 무척 뜻깊고 감사한 마음이다.”고 밝혔다.
개막식에서는 식전행사로 미술평론가인 윤범모 가천대학교 교수가 「승동표의 예술세계와 그 의의」를 주제로 특별강연, 관심을 모았다.
“한국 화단사(壇史)에서 누락된 승동표라는 화가의 복권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윤교수는 “승화백은 원색을 자유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색채 감각이 뛰어나고 윤곽선을 강하게 표현함으로써 토대를 강하게 구축, 그림의 기가 살아 움직이는 무게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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