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시대, 꽃은 어디에서 피는가
상태바
참담한 시대, 꽃은 어디에서 피는가
  • 이두엽 군산대 겸임교수
  • 승인 2009.07.12 06: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두엽 군산대 겸임교수(54)
세계적인 여성신학자 (정)현경교수는 ‘결국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거야’라는 제목의 ‘에코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썼다.

‘본 회퍼’가 나온 진보신학의 메카 ‘유니온 신학대학’의 종신교수이지만, 호주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 한국의 무당들을 데리고가 ‘학살당한 영혼’들을 불러내는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벌인 적도 있다. 당시 전 세계 기독교인들로부터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3년 전, 어느 찻집에서 만난 현경교수는 전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불교의 지혜로 명쾌하게 풀어냈다.

첫째, 신자유주의, 그 핵심인 금융자본주의는 ‘끝간데 모르는’ 자본의 자기증식욕구, 즉, 탐(貪)이 근본원인이다.

둘째, 흔히 군산복합체로 불리는 ‘무기상인’들의 손에 의해, 끊임없이 기획되고 자행되는 전 지구적 차원의 전쟁은 성냄, 즉 진(嗔)이다.

셋째, 대중의 건전한 판단능력을 파괴하고 지구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나쁜 미디어들. 미국의 폭스뉴스나 한국의 조중동과 같은 극우(보수는 올바른 표현이 아님)언론은 어리석음, 즉, 치(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탐/진/치를 금융자본주의/ 군산복합체/나쁜 미디어로 정리해내는 정교수의 해석은 단순하지만 명료했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관철되는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삶에서 ‘영혼’을 앗아간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제목의 독일 전위영화가 있지만 인간의 삶을 근본에서 흔드는 ‘불안’은 이미 전 지구적 화두가 되었다.

전쟁과, 미디어에 의한 광기의 확산은 ‘불안’을 지속적으로 확산시킨다. 불안한 일자리 때문에 영혼이 피폐해지는 비정규직의 문제는 그 핵심에 있는 문제다.

문화와 예술이 기본적으로 ‘영혼’의 문제를 탐색하는 것이라면, 문화와 예술이 놓여져 있는 진정한 전선(戰線)은 탐욕/성냄/어리석음과 ‘영혼’ 사이에 가로놓여져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문화예술은 전위(前衛)다. 아방가르드(avant-garde)다. 우리의 옛 선비들도, 다산 정약용이나 교산 허균처럼, 그 진정한 모습은 시대에 맞서는 ‘전위’였다. 최치원 선생은 ‘현묘한 도(道)’로서 ‘풍류(風流)’를 말했지만, 풍류 또한 그 본질은 음풍농월이 아니라 드높은 정신의 차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시대의 문화는, 그리고, 전라북도의 문화와 예술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몇 년 전, 우리에게 ‘주목받을만한’ 동학축제가 없다는 사실을 고민하면서 ‘동학 천지소리 한마당’을 만들자고 제안해 본 적이 있다. 천지만물에 깃들어 있는 ‘생명’을 섬기고 모시는 동학의 사상. 그 정신의 뿌리에서 단호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보자는, 어쩌면 단순한 생각이었다.

동학의 사상은 생태정치학과 생태경제학의 든든한 ‘뿌리깊은나무’요, 샘솟는 ‘샘이 깊은 물’이다. 이 거대한 수원지에서 참담한 우리 시대를 적셔나갈, 힘찬 물꼬를 트자는 것이었다.

금융자본주의가 이렇게 빨리 세계적 경제위기를 초래할 것을 그때는 예상치 못했지만, ‘카지노 자본주의’의 파멸적 위험성이 거듭 경고음을 발하고 있을 때였다.

‘동학의 땅’에서, ‘동학의 시선’으로, 이 고장의 소리인 판소리로, 전 세계의 나쁜 놈들을 포승줄에 묶어놓고, 한바탕 해학과 풍자의 일대 난장을 펼치자는 것이, 막걸리잔이 돌아가면서 서로서로 모아졌던 마음들이었다.

조지·부시나 딕·체니 같은 전쟁광(狂) 네오콘들도 불려나오고, 로스차일드나 JP모건 같은 유대계 국제금융자본도 머리를 조아리는 옛 도청앞 광장.

땅거미가 지고, 성(聖)과 속(俗)이 만나는 시간에 여기저기 촛불이 밝혀지기 시작하면, 전 세계 민중의 한(恨)과 염원이 폭죽 터지듯 분출하는 축제. 간장을 에이고 온몸을 뒤흔드는 판소리 사설과 흰옷 입은 백성들의 군무(群舞)가 큰 울림 속에 어우러지며 세계를 향해 물결치는, ‘사람 사는 세상’의 거대한 총체극을 만들 수는 없을까?

CNN과 BBC가 축제를 녹화하고, “올해는 과연 어떤 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불려나올까?”를 지구촌 가족이 해마다 궁금해 하는 ‘21세기형 동학축제’를 우리 힘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고부에서, 무장에서, 황토현에서, 남원에서, 삼례에서. 축제의 물결이 일렁이다가 마침내 전주 옛 도청 앞에서 벌어지는 ‘동학 천지소리 판’을 클라이맥스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큰 ‘판’을 만들 수는 없을까. 전라북도가 세계에 내놓는 ‘전라북도만의 상품’을 만들 수는 없을까.

막걸리 잔을 따라 상상력이 역동(力動)하다가 내린 결론은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의 문제를 화두로 삼아 ‘정면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라북도 전체를 아우르고, 전라북도 전체가 함께하는 축제. 가장 전라북도적이고, 진정한 전라북도의 ‘혼(魂)’과 ‘소리’가 있는 축제를 생각하면서 그 날 우리는 많이 행복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전북을 ‘꽃심의 땅’으로 불렀다. 꽃의 심(心), 꽃의 힘, 꽃의 마음 …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운을 다 해 ‘꼿꼿이’ 버텨온 저항의 땅이 전북이다.

동학혁명의 중심지역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자치기구인 집강소가 설치되었던, 자유과 평등의 ‘꽃’이 한때 피었던 땅이 전북이 아닌가.

일찍이 해월(海月) 최시형 선생은 부안에서 “이 땅에 새로운 문명의 꽃이 피리라”고 예언했다. 개벽과 상생의 문화지대인 전북지역이 훗날 전 세계인이 그리워하는 ‘꽃심의 땅’이 될 것을 예견했던 것이다.

금산사가 깃들어 있는 모악산(母岳山)은 ‘어머님의 품’과도 같은 산이다. 동학사상과 증산사상의 모태가 된 신령한 산(山)이고,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생명사상이 발원하는 ‘꽃심의 땅’이다.

이 꽃심의 땅에서, 우리는 어떠한 ‘문화의 꽃’을 피워야 할 것인가.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바보 노무현’의 지난 모습을 TV로 보면서, 이 참담한 시대에 문화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본다.

이두엽 군산대 겸임교수:56년생. 전주고와 고려대에서 공부했고, KBS-TV에서 교양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영상·미디어 회사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전주에서 예원예술대학교 문화영상 창업대학원장으로 재직하다가 새전북신문 사장을 맡은 바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