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침몰에서 영결식까지 35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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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침몰에서 영결식까지 35일의 기록
  • 투데이안
  • 승인 2010.04.2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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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함 46용사(勇士)'는 29일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어갔다. 천안함 침몰 35일 만이다.

침몰 순간부터 전사자 발견, 함미·함수 인양과 장례에 이르기까지 35일 동안 온 국민은 충격과 분노, 안타까움, 슬픔으로 가슴을 조렸다.

◇ 3월26일 천안함 침몰…구조·탐색 '난항'


지난달 26일 오후 9시22분. 승조원 104명이 탑승한 1200t급 천안함은 두 동강난 채 바닷 속으로 가라앉았다.

백령도 서남방 2.5㎞ 해상이었다.

함수에 있던 승조원 56명은 90도 정도 기운 선체에서 구조될 때까지 2시간을 버텼다. 2명은 어업지도선에 의해 차례로 구출됐다.

하지만 46명의 승조원은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은치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갔다.

군은 침몰 다음날부터 3000t급 구조함 광양함과 해군 해난구조대(SSU) 등을 현장에 투입해 함체와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침몰 천안함을 찾는데만 꼬박 3일이 걸렸다.

지난달 28일 오후 3시37분, 어선의 도움으로 마침내 침몰 지점에서 183m 떨어진 곳에서 천안함 함미를 발견했다.

함미에는 실종자 46명이 모두 탑승했을 것으로 추정, 실종자 가족들은 생존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

함미에 산소가 남아 있다면 69시간 동안 생존 가능하다는 군의 발표가 나오면서 가족들의 기대도 한껏 커졌다.

군은 생존 한계 시간을 69시간에서 72시간, 120시간으로 늘리면서도 정작 함미 내부로는 단 한발짝도 들여놓지 못해 가족들을 안타깝게 했다.

군은 천안함 침몰 나흘째인 지난달 29일 아시아 최대 수송함인 독도함(1만4000t급)을 백령도 해역으로 급파했다. 독도함에 탐색·구조 작업 총괄 지휘본부가 차려졌고, 미국 구축함 '살보함'과 해경의 경비함정 등이 측면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구조작업은 변덕스러운 기상 조건과 빠른 조류에 발목이 잡혀 진척이 없었다.

급기야 같은달 30일 오후 2시께 해난구조대(UDT) 소속 한주호 준위가 함수 주변 탐색 도중 실신,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일에는 수색에 참여했던 저인망어선 금양호가 침몰, 선원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됐다.

◇ 첫 시신 발견…돌아오지 못한 6인


지난 3일 오후 5시59분께 원상사실 천정 상부구조물 틈에서 남기훈 원사의 시신이 발견됐다. 천안함 침몰 9일 만이었다.

남 상사는 발견 당시 국방색 전투군복 상의와 내복 바지를 입고 있는 상태였고, 상의 일부가 약간 찢겨져 있었다. 군은 당시 시신이 큰 상처 없이 깨끗했다고 밝혔지만 일부가 훼손됐던 것으로 가족을 통해 뒤늦게 확인됐다.

가족들은 이날 첫 결단을 내렸다. 더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군의 수색작업 중단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군이 수색 중단을 제안했던 사실에 대해 부인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독도함에서 구조작업을 지켜보던 가족들은 즉각 반발했고 "수색작업 중단하고 인양작업으로 전환하자는 군의 제안을 가족들이 수용한 것 아니냐"며 군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나섰다.

나흘 뒤인 지난 7일 오후 4시 김태석 원사의 시신이 함미 기관조정실 부분에서 발견됐다. 김 원사의 시신을 품에 안은 가족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남 원사와 김 원사가 잇따라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가족들의 실낱같은 희망은 절망으로 바꼈다.

경기 평택2함대로 운구된 김 원사 시신은 앞서 발견된 남 원사와 함께 냉동 컨테이너로 된 임시안치소에 모셔졌다.

가족들은 함미에서 시신이나마 발견되기를 바라며 나머지 44명 실종장병이 모두 귀환한 뒤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일주일 여 뒤인 지난 15일 인양된 함미에서 36명의 시신이 차례로 발견됐다.

가족들은 발견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군의 발표 때마다 만감이 교차했다. 시신이나마 찾아 다행이었지만 싸늘한 주검 앞에 가족들은 오열했다. 천안함 침몰 21일만이었다.

이후 지난 22일 함미 침몰 해상에서 수거된 연돌에서 박보람 중사가 추가로 발견됐고, 이틀 뒤 함수 인양과정에서 박성균 중사의 시신이 수습됐다.

박 중사가 마지막이었다.

실종장병 46명 가운데 이창기 준위, 최한권 원사, 박경수 상사, 장진선 중사, 강태민 상병, 정태준 일병 등 6명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 천안함 '반쪽' 귀환에 이어 장례까지

군은 지난 15일 함미를 경기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로 옮긴데 이어 함수 인양 작업에 속도를 냈다.

지난 22일 함수 인양을 위한 4번째 체인까지 결색을 끝낸 군과 민간 인양팀은 다음날 오전 8시40분부터 함수 바로 세우기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틀 뒤 천안함의 나머지 '반쪽' 함수를 바지선에 실었다.

함수가 지난 24일 물 밖으로 나오면서 천안함은 30일만에 모습을 모두 드러냈다. 함수는 이날 늦게 2함대로 출발, 다음날 복귀했다.

천안함 가족들은 함수에서 더이상 시신이 추가로 발견되지 않자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군과 협의를 통해 25일 오후 2시부터 5일장으로 장례를 진행하고, 영결식을 29일 오전 10시로 정했다.

영결식은 김성찬 해군 참모총장을 장례위원장으로 한 해군장으로 엄수하기로 합의했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6명의 실종 장병은 입대 당시 군에 제출했던 머리카락과 손톱, 유품으로 시신을 대신했다.

해군장을 치른 천안함 46용사는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군은 46용사에게 1계급 진급과 화랑무공 훈장을 추서했다.

◇ 46용사 위령제…보상

장례를 마친 46용사 가족들은 30일 오전 백령도 해상을 다시한번 찾기로 했다.

귀환하지 못한 6명의 실종장병에 대한 아쉬움과 40명의 희생장병을 삼켜버린 바다에서 이들의 명복을 빌 예정이다.

가족들은 위령제를 마치면 군과 보상 절차에 들어간다. 가족은 하지만 보상 협의와 관련해 어떤 방침이나 계획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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