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조하며 사색하는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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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조하며 사색하는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
  • 허성배
  • 승인 2015.10.0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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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 논설위원

무상한 것은 계절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아무리 꽃이 아름다워도 언젠가는 반드시 지기 마련. 

아직은 한낮 노염이 마지막 기승을 부린다 해도 차츰 이슬이 가을을 알리고 잎이 떨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제아무리 건장한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죽는다. 태어날 때부터 숙명적으로 죽음을 전제하고 있다.

   무상한 것이 인생이다.  가을이 되면 꽃이 지고 잎도 떨어지는 것을 빤히 알면서 그러면서도 지는 꽃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씨가 있을 때 인생의 진면목(眞面目)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

   이제 백로(白露)와 추분(秋分)도 지난 지금 황금이 파동치는 들녘에는 오곡백과가 영글어가는 결실의 계절인 만추를 재촉하는 철이 된 것이다. 여름에 씨 뿌리고 땀 흘리지 않으면 알곡을 거둬들이지 못한다는 진리와 함께 빈 곳간을 물글럼히 바라보는 허전함처럼! 가을은 정녕 비애의 계절이 아닌가도 싶다.

   이슬을 먹고 벌레는 자란다. 이슬을 머금은 자연의 풀밭은 한결 아름다워진다. 그러나 이슬은 허무한 것.  어느새 맺혔는가 하면 어느새 온데간데없다. 그래서 흔히 인생을 이슬과 같다고 비유했는지 모른다.  아침 햇살에 비친 오색이 영롱한 이슬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일찍 떨어지는 꽃 떨어지기 쉬운 꽃일수록 더욱 아름답기만 하다. 마치 짤막한 삶의 한순간 한순간을 성실하게 살아가겠다는 마음씨가 담겨 있는 것처럼 아무리 큰 꿈을 않고 있어도 아무리 하는 일이 많아도 인생은 이슬처럼 허무하게 사라진다.

   그런 줄 알면서도 사람은 한순간 한순간을 충실한 것으로 만들면서 살아나 가야 한다.

가을을 흰색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사색(思索)의 계절이라고도 하는가. '토머스. 홉스'(Thomas Ho bees)는 많은 책을 읽은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다. 그러나 그에게는 책 읽는 시간보다는 사색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한다. 독서의 습관보다는 사색의 능력이 사실은 우리에게 더욱 아쉬운지 모른다.

   지그시 눈을 감고 세상을 관조(觀照)하며 사색의 나래를 펼 때 우리의 마음은 영그는 가을처럼 토실토실 살찔 것이 틀림없다.

   가을에서 무상(無常)을 느끼는 것도 좋다. 그리고 사라지는 모든 것에 대한 슬픔 속에 흠뻑 젖어드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인생의 모습이란 색즉시공(色卽是空)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공 즉시 색(空卽是色)에서 비로소 삶의 모습은 완결되는 것이다.

  코끝에 스치던 바람이 살랑이며 살결에 머물다. 한 걸음 물러나 갈 향을 부른다. 길가의 코스모스 꽃잎에 맴돌던 작은 잠자리 한 마리. 갈바람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어느새 가을은 소리 없이 다가와 여름 정렬 속에 저만치 머물던 살찐 그리움을 토해내고 살포시 웃음 지며 윙크하는 가을 저녁노을 빛은 가을 하늘을 붉게 물들어 간다.

    이슬은 사라졌다가도 어느 사이엔가 또 맺는다.  인생도 매한가지다. 생겼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 생겨나는 것이다.  살면서 죽음을 않고 죽음 속에서 삶을 않고 있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그게 또 가을이 안겨주는 영원한 교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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