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짧은 우리 인생 가을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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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짧은 우리 인생 가을 나무처럼
  • 허성배
  • 승인 2015.11.1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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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 논설위원

 밤비 내리는 소리에 밤이면 목이 마르다. 찬비를 맞으면서도 갈증이 더해지는 늦가을 수풀과 나무처럼 목이 마르다. 아마도 지금쯤 천지의 모든 초목은 그 발아래 더운 피를 쏟아내듯 붉은 잎사귀를 떨구고 섰으리라. 낭자하게 붉은 선혈처럼 낙엽은 흥건히 젖어 누우리라.

참회의 기도이듯 차가운 가을 밤비를 맨몸으로 맞으면서. 가장 처절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으리라. 환희의 기도이듯 아름다운 지난 봄철 울긋불긋 어지러이 꽃피던 어리석은 목숨의 화려한 꿈이며. 그 꿈이 가져온 허망스런 종말의 이 시간. 아픈 뉘우침과 눈물의 기도밖에는 할수 없는 무엇이 또 있단 말인가.

구름 잡듯 헛된 허상(虛像)을 두고 열정을 바쳤던 지난여름 동안 비린내 엉기던 가슴 가슴마다 무성히 우거진 허세도 교만도 속절없는 가랑잎으로 돌아가 누울 수밖에는!

짧은 인생을 만 년이나 살 것처럼 결단코 나만은 죽지 않고 영생(永生)할 목숨처럼. 황홀이 부풀렸던 일만 가지 꿈. 명예와 사랑과 그리고 돈. 이 모든 것이 이 밤 가을비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낙엽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랴? 길어야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인생(人生)길에서 어찌어찌 높아 지고 무엇 무엇 좀 움켜쥐었다고 우쭐대고 자랑 하며 뽐냄을 즐겨 하는 사람들아....

노랑 빨강 울긋불긋 온 산(山)을 치장(治粧)하던 아름다운 단풍(丹楓)들도 보라.... 분홍 온갖 교태(嬌態)로 아름다움을 뽐내던 예쁜 꽃들도 해지고 밤(夜) 이 되면 모두가 어둠 속에 묻혀 같은 색깔이 되고 천하제일(天下第一) 권세가(權勢 家)와 부호라는 사람들도.... 생전(生前)의 영웅호걸(英雄豪傑) 경국지색(傾國之色) 절새 미인(絶世美人)도 이승의 울타리 넘으면 백골(白骨)이 된다네.

있음을 자랑하고 높음을 뽐내며 무너지고 사라질 물사(物事)에 목을 매고 단풍(丹楓)놀이 영원(永遠)할 듯 기뻐 웃는 어리석은 사람들아.... 엄동설한(嚴冬雪寒) 매서운 바람 이제 곧 닥쳐오리니. 소리 없이 흐르는 세월(歲月) 앞에 금석(金石)인들 온전 할까.... 보시게 그 많은 사람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며 희희낙락(嬉嬉樂樂) 쳐다보던 둥근 달도 찌그러져 상강(霜降)과 입동(立冬)도 지났는데 살아서는 남들의 질시와 손가락질받기 쉽고 죽어서는 후세인 들에 욕(辱) 듣기 쉬운 속세의 지위와 부(富)가 얼마나 가겠는가.

그러니 높은 자리 물러나서도 손가락질 아니 받고 빈난 해 져도 천대받지 않고 죽은 뒤 욕(辱)먹지 않으려거든 있을수록 겸허(謙虛)해야 하는법(法) 이라네.... 인생(人生)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군고. 출세하기 싫은 사람 누군고. 시기 질투 없는 사람 누군고. 흉허물없는 사람 어디 있겠소.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고 못 배웠다 주눅이 들지 마소.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외다.

가진 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소리 치지 말고 명예 얻었다 목에 힘주지 마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더이다.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평가하지 말고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다나 가세. 다 바람 같은 거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바람이고 오해가 아무리 커도 비바람이라오.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오.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돈다오. 다 바람이라오.... 버릴 것은 버려야지 내것이 아닌 것을가지고 있으면 무엇하리요.

줄 게 있으면 줘야지. 가지고 있으면 뭐하나. 내 것도 아닌데.... 삶도 내 것이라고 하지 마소. 잠시 머물다가는 것일 뿐인데 묶어둔다고 그냥 있겠소. 삶에 억눌려 허리 한번 못 피고인생계 급장 이마에 붙이고 뭐그리 잘났다고 남의 것 탐내시오. 훤한 대낮이 있으면 밤하늘도 있지 않소 흐르는 세월 붙잡는다고 안가겠소. 그저 부질없는 욕심일 뿐 낮과 밤이 바뀐다고 뭐 다른게 있소. 다보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있다만은. 잠시 대역 연기하는 것일 뿐. 슬픈 표정 짖는다 하여 뭐 달라지는 게 있소. 기쁜표정 짖는다 하여 모든 게 기쁜 것만은 아니요. 내 인생 네 인생 뭐 별거랍니까....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고 불다 보면 멈추기도 하지 않소. 그렇게 사는 것이외다....

며칠 못 살고 죽는 하루살이가 있는가 하면 모하비 사막의 떡갈나무 덤불처럼 1만 년 이상 사는 생물도 있다. 일본의 유명한 여류소설가 소 노아야 코(曾野?子) 씨의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아름답게 늙고 싶다”라는 계노록(戒老錄)처럼 만추의 11월 낭만의 아름다운 계절에 황금빛 은행잎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듯!

빗소리는 더욱 높아지는데. 소리죽여 흐느끼는 여인의 안타까운 기도처럼. 참회의 강에 몸을 던져 우는 가장 정직한 기도의 물결 소리처럼 밤빗소리는 한결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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