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내요, 메셀! 당신을 응원할게요
상태바
힘을 내요, 메셀! 당신을 응원할게요
  • 엄범희 기자
  • 승인 2009.06.17 12: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힘을 내요, 메셀! 당신을 응원할게요

메셀!
전화를 해도 받지 않더군요. 요즘 매우 힘들다는 얘기, 전해 들었어요. 내가 보았던 메셀은 늘 힘들었지만 늘 웃는 얼굴이었죠. 그것이 메셀의 가장 큰 매력이었어요.
맨 처음 당신을 보았던 날을 기억해요. 곰팡이가 피어 있는 좁은 방에서 두 살배기 형란이를 안고 있었죠. 당신의 나이 스물세 살, 엄마라고 하기엔 너무 어려 보였어요. 크고 동그란 두 눈엔 걸핏하면 눈물이 고였죠. 특히 필리핀 고향 이야기가 나오면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눈물이 주룩 흘러내리곤 했어요. 그러면 당신은 손바닥으로 눈물을 쓰윽 닦고는 우릴 보고 해맑게 웃곤 했죠. 천성이 밝고 낙천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울음과 웃음 사이를 그렇게 빨리 오가는 사람을, 나는 당신 말고는 보지 못했으니까요.

남편은 말없이 앉아 있다가 조용히 나가서 담배를 피우곤 했죠. ‘신경성 스트레스 장애’라는 병명이 너무 낯설었어요. 그건 어떤 병일까요? 무거운 것을 들면 근육이 떨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없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죠. 밥을 먹고 나면 알약을 한 움큼씩 먹더군요. 그래도 당신은 웃었어요. 남편의 나이는 마흔 두 살, 당신과는 무려 열아홉 살이나 차이가 났지요. 그래도 당신은 “자기야! 자기야!”하면서 남편을 끔찍이도 생각했어요. 무표정하고 말이 없는 남편에 비해 당신은 애교덩어리에 에너지가 넘쳤죠. 당신을 보면 나까지 기운이 솟는 기분이었어요.

아토피성 피부염 때문에 고생하는 형란이를 끌어안고 당신은 울었죠. 곰팡이 없는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고 했어요. 하지만 노점상을 하는 시어머니에게 얹혀사는 처지에 어떻게 집을 옮길 생각을 하겠어요? 도무지 당신 앞엔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래도 당신은 열심히 한국말을 배웠죠. 당신은 매우 영리하고 똑똑했어요. 필리핀에서 대학 3학년까지 다니다가 중퇴했다고 했죠. 학원에서 수학강사도 했었고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가난한 한국남자에게 시집을 오게 됐을까, 정말 궁금했어요. 어머니 때문이라고 당신은 말했어요. 갑상선 종양으로 힘들어하는 어머니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으로 시집을 온 거라고.
그때만 해도 남편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다고 했죠. 신발 도매업을 하던 남편은 지금처럼 몸이 아프지도 않았고 돈도 제법 벌었었다고요. 하지만 경찰관과 시비가 붙어 폭행을 하는 바람에 남편은 수감생활을 해야 했고 그때부터 집안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어요. 광주에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당신 부부는 시어머니가 계시는 남원으로 이사를 와야 했죠. 이사라기보다는 도피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만....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시집 온 당신은 너무나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맑게 웃을 수 있다는 게 저는 신기했죠. 시어머니를 도와 장사를 하는 당신을 본 순간, 어쩌면 당신은 타고난 장사꾼이 아닌가, 확신이 생길 뻔 했답니다. 손님을 끌어오는 수단도 뛰어났고 물건을 파는 솜씨도 탁월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시어머니보다 당신이 더 장사를 잘하던 걸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어 말하기 경연대회에 출전하고, 장기자랑대회에까지 나가 물불 가리지 않고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저는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결국 최우수상과 2등상을 타내고, 상금 봉투를 거머쥔 당신을 본 순간, 당신에게는 그것이 장난이나 취미가 아니라 절실한 ‘생활’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상금 30만원이면 형란이 한 달 치 기저귀와 분유값은 걱정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요.

어느 날 방송국에 놀러 와서 이것저것 흥미를 보이는 당신을 보고 저는 참 마음이 안타까웠어요. 신분증을 목에 건 나를 보고 “언니! 멋있다! 부럽다!” 그렇게 말했죠. 많은 이주여성을 만났지만 나를 그렇게 스스럼없이 “언니!”라고 부른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메셀! 당신은 그처럼 순수하고 경계 없는 사람이었죠. 당신이 원하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어요. 투병중인 어머니의 수술비를 매달 5만원이라도 보내주는 것, 남편의 몸이 지금보다 건강해지는 것, 남편을 대신해 매일 출근하는 직장을 가져보는 것.... 그 정도가 당신의 꿈이었죠. 하지만 그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나마 우리(방송팀)을 만나게 돼서 하나의 꿈을 이룰 수 있었죠.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어머니의 수술!

어머니가 한국으로 오던 날, 당신이 공항에서 조바심치던 모습이 기억나요. 어쩔 줄 몰라 하는 당신은 그저 어린아이 같았죠. 엄마를 부르며 달려가 얼굴을 부비던 당신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였어요. 전북대병원의 도움으로 무사히 갑상선 종양 수술을 마친 어머니.

어머니 앞에서 노래를 하던 당신의 모습은 마치 천사 같았답니다. “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당신은 울면서 웃으면서 그 노래를 불렀죠. 엄마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딸이 시집 간 낯선 땅에 와서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의사들한테 수술을 받았던 어머니. 사랑하는 딸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알게 된 어머니는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죠. 서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엄마와 헤어지던 날, 안타까워하던 당신의 얼굴이 한동안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어요. 지금도 눈물을 훔치던 당신의 얼굴이 ‘슬로우 영상’으로 그려져요. 당신의 주제가였던 “하얀 민들레”도 귓전에 들려오는 듯하고요.

그로부터 벌써 2년의 세월이 흘렀어요. 당신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남원에 가면 연락을 하곤 했지만, 당신은 전화가 안 될 때가 더 많았죠. 남편의 건강이 더 악화돼서 입원했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방과 후 교실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일도 그만 뒀다고 하더군요. 휴대폰도 없어졌고 가정생활도 힘들다고 들었어요. 그토록 밝게 빛났던 당신의 얼굴이 검게 상했다는 말도 들려오더군요. 제가 하는 일과 관련해 당신을 만나려고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어요. 나를 만나면 언니! 하고 반가워할 텐데,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나요? 당신을 떠올리면 필리핀에 있는 당신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언니와 여동생이 떠올라요. 필리핀의 가족들에게 당신은 유일한 희망이죠.

그러니 메셀! 여기서 좌절하지 말고 힘을 내세요. 형란이를 위해서, 필리핀의 가족들을 위해서 다시 한 번 웃어 보세요. 당신은 웃을 때가 가장 예쁘답니다. 당신만큼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당신은 예쁘고 능력 있고 성격마저도 좋아요. 그 정도 능력이면 한국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어요. 포기하지 말고 힘을 내요 메셀! 여기에서 언니가 당신을 응원할게요.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