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침략기가 그냥 배경일 뿐인 ‘해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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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침략기가 그냥 배경일 뿐인 ‘해어화’
  • 장세진
  • 승인 2016.05.2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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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2015년 여름 ‘암살’이 천만영화로 등극했다. 일제 침략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그 때문일까. 2016년 일제 침략기 배경의 영화가 봇물을 이룬 것은. 그 영화들은 ‘해어화’, ‘아가씨’, ‘밀정’, ‘덕혜옹주’ 등이다. ‘해어화’(감독 박흥식)가 가장 빠른 4월 13일 개봉했다.

‘아가씨’는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칸국제영화제에서 이미 심사위원대상(‘올드보이’)과 심사위원상(‘박쥐’)을 수상한 바 있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라 기대를 한껏 갖게 한다. 일반 개봉은 6월 1일로 잡혀 있다. ‘밀정’과 ‘덕혜옹주’는 하반기 선보일 예정이다. 두 영화 모두 유명 감독(김지운, 허진호) 작품이라 역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뚜껑을 연 ‘해어화’는 흥행 실패작으로 남게 되었다. 일반 상영에서 50만 명도 동원하지 못해서다. 100억 가까운 제작비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는데 48만 2505명(5월 16일 기준)은 참패의 숫자다. 지난 겨울 개봉한 ‘대호’에 이은 또 하나의 대작 실패라 할만하다.

박흥식 감독으로만 좁혀보면 2015년 여름 개봉한 ‘협녀: 칼의 기억’에 이은 두 번째 실패이다. 90억 원쯤 들인 ‘협녀: 칼의 기억’의 최종 관객 수는 43만 1310명이다. VOD나 IPTV 등 다른 매체로 벌충하는 것을 감안한다해도 쪽박 신세를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안타깝고도 이해 안 되는 일이다.

일단 언론의 지원사격도 별 힘이 없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두 주인공 한효주, 천우희 인터뷰를 비롯 중앙일간지들이 앞다퉈 ‘해어화’ 리뷰 기사를 내보낸 것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성적이다. 1년도 안돼 연달아 대작(제작비상)을 선보인 박흥식 감독이 이례적이지만, 당분간 그의 영화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해어화’는 일제침략기인 1944년 기생을 주인공으로 한 멜로영화다. 기생 정소율(한효주)과 서연희(천우희)가 작곡가 김윤우(유연석)를 둘러싸고 벌이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애증이 시대와 함께 펼쳐진다. 일단 전차라든가 일장기 걸린 건물, 노래하는 무대, 의상 등 시대를 재현한 미장센은 나무랄데 없어 보인다.

그것이 겉멋이라면 내면이 너무 없다. “이런 세상에서 출세를 하는게 죄악”이라든가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하는 목소리”의 대중가요 지향 등 제법 챙기려 든 것도 보이지만, 너무 밋밋하달까 재미가 없다. 처음부터 1시간 이상 너무 느린 전개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비교적 또렷히 와닿는 건 한효주의 악역 캐릭터 변신이다. 윤우와 연희가 서로 사랑하는 걸 알게된 소율이 그들을 파멸시키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데도 덜컥하며 와닿는 찡한 어떤 것이 없다. 소율은 1991년, 그러니까 40년 넘게 흐른 세월에도 자신이 서연희라고 밝히며 무대에 서지만, 쿵하는 악인 이미지가 박진감 넘치게 와닿지는 않는다.

멜로 지향 때문인지 도대체 뭘 말하려는 거야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거짓 사랑에 놀아난 여인의 기구한 인생역정’쯤 되지만, 그것이 관객에게 짠하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일제 침략기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냥 세팅에 불과할 뿐이다. 선남선녀 사랑에 얽힌 애증만이 공허하게 넘쳐나는 그렇고 그런 영화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효주의 노인 분장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얼굴에 핀 검버섯이라든가 손등의 주름 등은 영락없는 노인이지만, 치아만큼은 어쩌지 못한 모양새다. 조선 후기부터 궁중에서 불리웠다는 ‘정가’ 등 배우들의 노래 연습 같은 노력은 정당히 평가되어야겠지만, 천우희의 한복 모습은 좀 안 어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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