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정문 · 고(故) 강도근명창, 관극시 받아
상태바
고(故) 김정문 · 고(故) 강도근명창, 관극시 받아
  • 김동주 기자
  • 승인 2016.06.07 12: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 김정문 명창 손녀 김화자 명창과 고 강도근 명창 제자 이난초 명창이 대신 받아

남원출신인 고(故) 김정문 명창(1887(고종 24)∼1935)과 고(故) 강도근 명창이 (사)한국판소리보전회(이사장 송순섭)로부터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구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고 김정문 명창과 고 강도근 명창 등에 대한 관극시 증정식을 갖고 관극시를 증정 받았다.

관극시(觀劇詩)는 가면극(假面劇), 즉 판소리 같은 극 형태의 공연을 보고 극의 내용과 느낀 감흥을 기록한 한시나 운문을 말하며, 다른 말로 '연희시(演?詩)‘로도 불리며, 판소리나 가면극 등 연희장소의 풍경, 관객들에 대한 묘사, 창자의 모습 등이 다양하게 표현돼 역사시대 민중들의 음악과 놀이문화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번 관극시 작시는 묵재 김세종 교수다. 김 교수는 현재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책임교수이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한문학을 배워 한국고전번역원 거점 호남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미암집', '신간소왕사기', '난계선생유고' 등을 역주하는 등 국내에서 시문에 밝은 인물로 꼽히고 있다.한국판소리보존회는 지난 4월 송순섭 이사장을 중심으로 관극시 증정 위원회를 구성하고, 다섯 차례의 논의 끝에 대상자를 최종 확정했다.

120년 전통을 가진 사단법인 한국판소리보존회는 1902년 이전부터 조선시대의 성악단체인 협률사와 원각사, 조선성악회로 34년의 명맥을 이어오다 1971년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예능 보유자들을 중심으로 한국판소리보존연구회를 설립해 한국전통예술인 판소리 계승, 보급발전을 위해 설립됐다.

고 강도근 명창 제자 이난초 명창
관극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삼국사기' 최치원이 지은 것으로 전하는 '향악잡영 오수'이다. 시 다섯 수의 제목은 각각 금환(金丸), 월전(月顚), 대면(大面), 속독(束毒), 산예(?猊)다. 이 가운데 속독은 춤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춤과 대화가 섞인 것이 대면과 산예, 소극(笑劇)적 요소가 가미된 것이 월전, 단순한 기예만 있는 것이 금환으로, 앞에 연희의 내용을 묘사하고 뒤에 필자의 감흥을 더하는 구조로 이뤄진 게 특징이다.

따라서 관극시는 문학적 가치보다는 시의 내용면에서 더 큰 가치를 지닌다. 시라는 장르적 특징 때문에 내용 전달의 한계를 갖고 있지만, 대상에 대한 서정성과 당대의 예술적 가치관, 연희 풍경 등 시로 표현될 수 있는 감성적 내용이 세심하게 나타내는 특징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관극시를 증정 받은 고 김정문 명창은 판소리 흥보가 전승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흥보가 명창'으로도 불린다.
제자 강도근 명창과 박녹주 명창이 그의 뒤를 이었으며, 박녹주 명창은 박송희 명창과 한농선에게 흥보가를 전승해 오늘날 판소리 흥보가의 전승 보존체계를 완성한 인물로 꼽힌다.

고 김정문 명창의 관극시는 직계 가족으로 그의 손녀인 김화자 명창이 대신 받았다. 현재 (사)대한민국 춘향국악대전위원회 부회장인 김화자 명창은 고 김정문 명창의 조카인 고 김영운 명창의 딸이기도 하다.

고 김정문 명창 손녀 김화자 명창
김화자 명창은 "뒤늦게 작은 할아버지가 역사적인 관극시를 받게 돼 영광스러울 뿐"이라며 “뜻을 저버리지 않고 명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2002년 전남 목포국악대회에서 뒤늦게 명창반열에 오른 김화자 명창역시 부친인 고 김영운 명창에게 어려서부터 소리공부를 시작했다. 고 강도근 명창, 남해성 명창 등에게 사사했고 수차례의 해외공연과 2차례의 수궁가 완창발표회를 비롯 전국 명인 명창대회 등을 석권하며 현재 국악집안의 계보를 잇고 있는 김 명창은 아버지 고 김영운 명창의 대를 이어 남원시립국악단에서 12년이상 판소리를 지도한 데 이어, 1997년부터는 후학들을 위해 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다.  

관극시는 다음과 같다.

贈, 故 金正文 名唱 (고 김정문 명창에게 드림)
작시 : 김세종
雄唱龍城歌制奇(웅창용성가제기)
東便紹肄大三師(동편소이대삼사)
扇提四體甦興甫(선제사체소흥보)
鶴?風流不世姿(학창풍류불세자)
용성(남원)의 웅성한 소리 법제 기묘하니/세분의 큰 스승에게 배워 동편소리 이었네.
부채 든 너름새에 흥보가 소생한 듯하니/학창의 멋스런 자태 세상에 드문 풍류라네.
 

한편 고(故) 김정문 명창은 전라북도 남원 출신으로 주천면에서 살았다. 유성준(劉成俊)과 장자백(張子佰)의 생질이다. 처음에는 외숙인 유성준에게 판소리를 배우다가 송만갑(宋萬甲)의 고수로 있으면서 그의 소리를 익히게 되었고, 결국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뒤, 송만갑의 영향으로 동편제(東便制) 소리를 하였으나, 서편제(西便制) 김채만(金采萬)의 소리를 듣고 그의 문하에 들어가 판소리를 배운 뒤, 동편제에 서편제의 맛을 섞어서 독창적인 소리를 하였다.

그는 타고난 재주는 적었으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여 마침내 명창이 되었고, 판소리뿐만 아니라, 창극에도 솜씨가 있어 서울에 올라와서는 창극공연에도 참가하여 크게 인기를 모았다.
그는 특히 「흥보가」·「심청가」·「적벽가」를 잘하였고 단가인 「홍문연가(鴻門宴歌」도 잘 불렀다. 남원에 있을 때는 많은 제자를 길렀다. 그 가운데 박녹주(朴綠珠)·김준섭(金俊燮)·강도근(姜道根)·박초월(朴初月) 등은 당대 명창으로 꼽히고 있다.
그리고 그의 소리는 동편제에 기초를 두고 서편제의 맛이 나는 가락을 함께 구사하였기 때문에 순수한 동편제라고는 할 수 없다. 현재 음반으로는 「춘향가」 몇 대목과 단가 「홍문연가」가 남아 있다.
또 고(故) 강도근명창은 전라북도 남원 출신으로 농사꾼 아버지인 강원중과 어머니 이판녀 사이에서 9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에는 음악가들이 많았는데, 대금산조의 무형문화재 강백천(1898∼1982)이 그의 사촌형이고, 판소리와 창극으로 이름을 날렸던 강산홍과 가야금의 명인 강정열은 당질이며, 가야금산조로 남원과 진주에서 활동했던 강순영 또한 그와 사촌간이다.
17세 되던 해에 동편제 판소리 명창 김정문 문하에서 소리를 배운 강도근은 흥보가 중 ‘제비 후리는 대목’이 특기이다. 20세 때 상경하여 조선성악연구회에서 당대 최고 명창의 한사람인 송만갑 선생에게 판소리 다섯마당을 두루 배웠고, 25세 때에 구례로 가서 박봉술의 형 박봉채(朴奉彩)에게 판소리를 지도받았다. 지리산 쌍계사 일대에서 7년여 동안 혼자 공부한 후 하동으로 유성준을 찾아가 판소리 수궁가를 배웠다.
해방을 전후해서 동일창극단·조선창극단·호남창극단 등을 전전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목포·이리·여수·순천 등지의 국악원에서 창악 강사를 지냈다. 1973년 이후 남원국악원을 창립하여 강사를 지냈고, 틈만 나면 선유폭포 등 지리산 등지를 다니며 연습을 한 노력파였다.
조선시대 명창으로 추앙되던 송만갑의 판소리 전통을 이어받아 동편제 소리를 고수해 오던 그는 환갑을 넘겨 60대 중반에서야 판소리계에 이름을 내기 시작한 은둔의 예술인이기도 했다.
그는 돈이나 명예에 초연한 고집스러운 소리꾼으로, 타계하기 직전까지 농사꾼임을 자처하며 고향 남원에서 농사를 지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강도근 후계자 양성소를 설립, 동편제 소리의 맥을 이어온 판소리 동편제의 마지막 대가이다. 안숙선(국립창극단장)은 초기에 그가 길러낸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1953년부산 전국판소리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 1981년 한국국악협회 국악공로상, 1985년남원시민의 장 문화장, 1986년 KBS국악대상, 1992년 동리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자그마한 키에 다부진 모습으로 약간 쉰 듯하면서도 청청한 수리성과 가늘고 단단한 상청을 이루는 성음이 특징이다.
*** 참고문헌 : 우리 전통예인 백 사람(이규원, 현암사, 1995), 김명곤의 광대기행(김명곤, 도서출판 산하, 1994), 판소리 답사 기행(이규섭, 민예원, 1994), 발자취-작고한 동편제 판소리 대가 강도근 명창(오중석, 『조선일보』, 1996) 및 제공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남원=김동주기자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