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잠에서 깨어난 장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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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잠에서 깨어난 장수가야
  • 권남주 기자
  • 승인 2016.09.0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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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역사는 과거 인간 삶의 총체이며, 이들 가운데 극히 일부가 사료(역사적 자료)로 남아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삼국시대 역사 이중 가야사는 김부식, 일연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고 변질되었다. 그러한 소외와 왜곡 속에 삼국시대 백제의 변방으로 인식되었던 장수지역에 과거 고대사회의 찬란하고 화려했던 역사가 살아 숨 쉬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이 없을 것이다.

1500년이란 긴 세월동안 잠들었던 장수가야를 깨운 이는 어느 유명한 역사학자도 아닌 천천면 삼고리 이방마을 밭에서 무 저장 구덩이를 파던 故한홍석씨다, 1990년대 초 땅을 파다 우연히 발견된 유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기관에 제보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학술조사가 진행되어 1996년 “삼고리 고분군”이 처음 확인되었고, 백제의 변방이 아니라 장수가야의 중심지역임이 확인되는 기초가 마련되었다.

문헌이나 역사기록하나 남아있지 않아 잠들어 있던 소중한 장수가야 문화유산이 고고학 자료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후 화려한 비상을 꿈꾸던 장수가야는 먹고살기 바빴던 지역민들과 행정의 무관심 속에 관심대상에서 벗어나 다시금 소외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장수가야의 중요성을 인식한 장수군은 군산대학교 박물관을 통해 지속적 학술조사가 진행되었고, 왕릉급 가야고분과 삼국시대 유일하게 운영되었던 봉수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장수가야의 의미를 인식하고 지속적 관심을 가진 고고학자의 집념 때문에 확인된 소중한 문화유적이다.

지금까지 장수군 일원에 확인된 가야고분은 200여기 이상으로 장계 삼봉리?장계리?호덕리?월강리 일원에 120여기, 장수 동촌리 일원에 80여기이며, 발굴조사를 통해 가야계 고분 최초로 편자가 출토되었으며, 금제이식, 대도, 환도대도 흔, 가야계?백제계?제지계 토기류, 마구류를 포함한 각종 철기류 등이 수백점이 출토되었다. 이들 유적은 중요성을 인정받아 장수 삼봉리 가야 고분군은 2013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장수동촌리 가야 고분군은 2016년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 신청된 상태이다.
  봉수유적은 장수군 일원의 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에 자리한 산봉우리에 20여개소가 자리하며, 인근 무주?금산?진안?임실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들 봉수는 조선시대 운영된 5거루트 봉수가 아닌 삼국시대 독자적으로 운영된 것으로 추정되며, 최근 학술조사에서 확인된 가야유물 등을 통해 운영주체가 가야세력이었을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특히, 이들 봉수의 분포도를 확인한 결과, 인근지역에서 장수를 향하고 있으며, 장수를 향한 봉수가 장계지역을 둘러싸고 있어 최종 목적지가 장계 인근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봉수의 운영주체가 장수지역의 가야세력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행정에서 자체예산을 마련하여 산성과 봉수?고분에 대한 학술조사를 진행하였고 가야문화유산을 기본으로 하는 종합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기본계획수립 용역과정에서 장수군 제철유적이 전국최대규모이며 약 40km에 걸쳐 30여개소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대산성 발굴조사는 장수군에 자리한 합미산성과 침령산성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산성내부의 집수시설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집수시설은 원형과 방형으로 확인되었으며 내부에서 가야토기 등과 더불어 후백제 유물로 추정되는 토기류, 와당을 포함한 기와류가 상당량 출토되었다. 특히, 와당문양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상당히 주목받았다. 또한, 발굴조사 중 진행된 자문회의에 참석한 유명한 산성전문가는 성벽의 잔존상태와 출토유물 등을 확인하였을 때 그 가치는 매우 높으며 향후 보강조사를 통해 국가사적으로 지정보호 되어야 한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철유적의 확인은 그동안 “철의왕국 가야”로 불리던 가야의 약점인 생산

유적의 확인이라는 면에서 기대감을 드러낸다. 그동안 수많은 가야고분에서 확인된 철기류의 생산유적이 확인되지 않아 반쪽자리 철의 왕국이었으나 남원지역과 장수지역에서 확인된 제철유적이야 말로 상당히 큰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 발굴조사가 진행되지 않아 조심스러울 따름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장수가야 문화유산은 고분, 봉수, 제철, 산성이 자리하고 있는 복합적 문화유산이다. 장수가야의 화려함은 후백제의 국경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다 신라의 통일과 고려의 개국에 의해 철저히 감춰지고 파괴되었다. 그 이후 1500년이란 긴 잠이 들어버렸다.

이토록 찬란하고 화려했던 문화가 바로 “장수가야”이다.
장수가야 문화유산은 영남지방의 가야문화유산에 비해도 앞설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자원이다. 영남지방의 가야문화유산은 지역적 관심도가 조금 빨라 유적 국가사적 지정, 정비 등이 진행되었고 이를 토대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상태이다.

장수군은 최근 장수가야의 찬란함을 되살리기 위해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영남지방보다 조금은 늦었지만 선택과 집중 차별화를 토대로 국가 사적 및 세계유산 공동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속적인 학술조사 추진 및 대국민 홍보를 위한 국가예산확보, 유적정비를 통한 관광자원화를 예정 중에 있으며 주민대표, 행정대표, 전문가 등을 바탕으로 하는 세계유산 등재추진위를 구성하여 향후 세계유산 등재추진에 적극 대응할 예정이다.

특히, 장수유적 정비 사업을 통해 고분군의 복원, 산책로 조성, 전시관 설립, 기반시설 조성을 추진 중에 있으며 유적의 보존과 활용이 동반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 중에 있다. 또한, 학술조사?학술대회 예산을 대폭 증가하여 유적 유물의 가치증명, 학계 관심고조, 지역민 홍보 등에 힘쓰고 있으며 “장수가야”브랜드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지금은 1500년 잠에서 깨어나 태동하고 있는 장수가야에 대한 모두의 애정 어린 관심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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