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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의 역사와 재조명 된 영천서원
2016년 09월 20일 (화) 13:13:51 신인식 기자 tlsdlstlr0006@daum.net

 

   
영천서원 숭현사
서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며 지역문화를 대표하는 장소였다.
얼마 전 임실문화원 주관으로 『영천서원과 호남학맥고찰』학술대회가 임실군에서 성황리에 개최 되어 서원에 대한 관심이 집중 재조명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에 서원이 설립된 것은 1543년이었다. 당시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은 안향을 추모하기 위해 그가 학문을 하던 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을 설립하였다. 안향은 중국의?주자학이라는 학문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한  학자였다. 주세붕이 세운 최초의 서원은 ‘백운동서원’이라 했지만, 이황의 건의로  ‘소수서원’이라는 어필 현판과 서적, 노비를 하사받은 전국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이황을 비롯한 성리학자들에 의해 서원의 보급운동이 일어나면서 전국에 서원이 건립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명종 대에 17개소에 불과했던 서원이 선조 대에는 100개가 넘었으며, 18세기에는 전국에 700여 개소에 이르렀다고 한다.
서원은 교육기능과 교화기능을 주축으로 삼았다. 조선 중기 사대사화를 비롯한 정치적 혼란으로 말미암아 학자들은 지방에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선배 유학자들을 기리고 제사하는 사당의 기능까지 통합한 서원을 창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교육기능으로 서원에 있어서의 교육의 목표는 인품이 훌륭한 성현을 본받고 관리를 양성하는데 있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다른 교육기관과 마찬가지로 『소학』에서부터 시작하여 사서(四書)와 오경(五經)을 중심으로 공부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사서와 오경을 모두 익힌 다음에는 『가례』,『근사록』과 같은 성리학에 관한 지식을 배웠다.  정치적 혼란으로 중앙정계에서 물러난 학자들에 의해 대부분의 서원이 설립되었던 까닭에 ‘성현을 본 받는다’는 교육목표는 초기의 서원교육에서 특히 중요시되었다. 그들에게 있어 학문의 진정한 의미는 인생과 우주의 본질을 추구하고 자신을 도덕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이었다. 그 뒤 서원에서 공부한 선비들이 정계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과거준비를 위한 교육도 동시에 강조되었던 것이다.  서원의 또 한 가지 기능인 교화기능은 주로 선현에 대한 제사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제사의 대상인물에 있어서는 성균관이나 향교와는 차이가 있었다. 성균관과 향교의 문묘(文廟)에 배향된 인물은?공자를 비롯하여 사성(四聖)과 십철(十哲), 그리고 우리나라 18현 및 송대의 6현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서원은 사학이라는 특성상 대부분 문중에 의해 건립되었던 까닭에 자신의 문중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물 가운데 뛰어난 인물을 배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수적인 면에서 볼 때에는?이황과?이이,?송시열?등을 배향한 서원이 가장 많았으나 배향인물의 선택 폭에 있어서는 국가에 의해 정해진 성균관과 향교에 비해 훨씬 넓었다.

   
영천서원 제향

선현을 제사하는 기능 이외에도 서원은 다양한 기능을 담당했다. 즉, 지방의 인재들이 모이는 집회 장소이며, 학생들의 학문을 위해 다양한 도서를 보관하는 도서관의 기능과 책을 출판하는 기능도 담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서원에는 ‘장판각’ 또는 ‘장판고’라는 서고가 있다. 이 외에도 서원은 지방의 풍속을 순화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서원에서는 그 지역의 여론을 이끌어 나갔음은 물론, 각 지방별로 설치된 향약을 기준으로 효자나 열녀 등을 표창하고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사람을 성토하는 등의 직접적인 교화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서원에는 다양한 유교문화가 존재하며 각종 의례와 도서보관, 출판과 문화, 정치적 여론 형성 등 복합적인 문화를 내포하고 있는 우리나라 유교문화를 대표하는 장소였다.

   
유헌 정황의 문집, 장행통고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있는 영천서원도 1619년(광해군11)창건하여 4현을 봉안하고 있다. 4현으로 남원 금지면에 기묘명인 사제당 안처순은 사마시에 합격하고 병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과 예문관 춘추관사관을 거처 조광조 등 당대의 사림들과 교류하며 나이든 어머님을 봉양하기 위하여 구례현감으로 부임하였으며 구례 백련동에 향교를 건립하고 근사록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여 구례지역에 유학의 기풍이 일어나게 하였으며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등 사림파 들이 파직되자 구례현감을 사직하고 남원에 은거하다 어머님이 타계하여 시묘살이 등으로 효를 극진이 실천 하였으며 다시 복권되어 성균관 전적, 양현고주부, 봉상시판관 등을 거쳐 홍문관 박사를 역임하였다.
장수군 산서면에 회산 정환은 창원정씨 가문의 인물로 정환의 7대조부터 이곳에 정착 대대로 내려오면서 가훈을 만들어 유교적 생활기반과 가풍을 이룩하였다. 그는 성격이 침착 엄하며 굳세었으며 식견과 지취가 고원하고 부모와 형제간에도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진사시에 합격하고 부친의 3년 상을 가문의 법도에 따라 극진히 모신 효자로 홍문관 박사, 사복시 판관을 역임하였다,
동생 유헌 정황도 유교적 생활기반과 가문의 법도에 따른 효자로 부의 3년상을 극진이 치르고 난후 급제하여 승문원 적자를 거처 저자랑으로 옮긴 후 다시 모친상을 당하여 귀향했으며 그의 효행과 형제간에 우애가 조정에까지 다시 알려져 승문원교감, 예조좌랑, 성균관전적, 사헌부 정언, 예조좌랑,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하다. 그 후 벽서사건으로 거제로 유배되어 생활하다 풍토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나 사후에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충간이란 시호도 받았다.
활계 이대유는 경자년에 생원시에 합격한 이종윤이 부친이며 창원정씨가 외가로 부친은 23세에 타계하였다. 당시 이대유의 나이 4살이어서 어머니 슬하에 외가에서 자라게 되었다. 이 때문에 창원정씨와는 특별한 관계로 정환, 정황의 학통을 이어받았으며 어머니를 공경과 사랑을 다하여 모셨으며 돌아가시고 장사를 지낸 뒤 여막을 짓고 조석으로 곡하고 슬퍼하였다. 부모의 기제사 때에도  부모의 옷을 걸어두고 부모가 계신 듯 정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이대유는 1570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사옹원 참봉에 천거되었으며 경기전 참봉, 사포서별좌 등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으며 향촌사회에서 강학 활동을 통해 많은 문인을 배출하였다. 만년에는 지금당(장수군 산서면 하월리 소재)이라는 서당을 짓고 후학양성에 힘썼다.
이곳 산서면 일원에서 뛰어난 덕망과 학행으로 이름난 활계 이대유의 문하에서 많은 문인들이 배출되었고 이대유 사후 1년 뒤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사우가 지어졌고 10년 뒤 1619년(광해11)에 서원이 건립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남원과 안동부사를 한 고용후, 또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이담손의 후손이자 이대유의 문인이었던 천묵재 이상형(1585~1645) 및 이유형, 이상길 등과 이대유 문하에서 배출된 문인들이었으며, 그 학문은 안처순이 조광조와 도의로서 교유하고 정환과 정황은 조광조에 수학하여 이대유로 이어졌다고 한다.

   
정염선생과 이대유가 협의하여 만든 지금당
(장수군 산서면 하월리 소재)
※ 이곳에서 대과에 7명, 생원진사시에 30명이 배출되었다.

이곳 영천서원이 1610년에 건립되어 1686년(숙종12)에 전라도 생원 김유경 등의 상소로 건립 된지 67년 만에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고 이 지방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성장, 이 일대의 인재를 양성하는 산실이 되어왔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정책에 따라 1868년에 철폐되었다가 1959년 복설을 시작하여 이듬해인 1960년에 사당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 임실문화원에서 주최한『영천서원과 호남학맥고찰』학술대회에서는 영천서원이 훼철 될 때까지 260여년 동안 문과와 사마시급제자가 얼마나 배출되었는지? 당쟁이 치열한 시기인 1686년 영천서원이 사액을 받았는데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 졌는지? 등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지역에 사료박물관도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지방자치시대 우리 선현들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의 사료 발굴, 수집, 연구, 보존과 관리가 체계적으로 다른 자치단체에서도 계승 발전 확산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신인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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