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책임과 실천: ‘제업(諸業)과 여가(餘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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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책임과 실천: ‘제업(諸業)과 여가(餘暇)’
  • 정항석
  • 승인 2017.04.2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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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항석 캠브리지대 연구학자, 전 대통령자문위원

사람은 일의 존재인가 아니면 여가를 위해 일하는가?
제업즉수행 (諸業卽修行). ‘근면하게 일하는 모든 노동은 정신수양이며 자기완성에 이르는 것이다. 생산성의 측면에서 이는 절대선(絶對善)이 된다. 에도시대(1603-1868)에 이시다 바이간(石田 梅岩 1685-1744)이 제시하였던 노동 철학이다. 이시다 바이간은 ‘엄마 아빠’하며 응석을 부릴 8세부터 포목점에서 일을 했다. 가난이 죄였다. 공급과 소비가 어우러지지 못한 탓에 그저 밥술이나 얻어먹어야 살 수 있는 시대이었다. 몸담았던 포목상이 도산해도 딱히 갈만 곳이 없었던 그는 그곳에서 무보수로 계속 일을 해야 했고 도저히 사람이 숙박할 수 있는 곳이 아닌 처소에 있게 되었다. 아들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한 그의 아버지는 그를 고향으로 데리고 왔다. 그는 고향 탄바(丹波)에서 농사를 짓다가 성년이 되어 다시 경도(京都)로 가서 포목상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40세가 되어 반토(番頭 상점지배인)가 되지만 노동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노동에 대한 것을 몸으로 체득한 그는 노동에 대하여 생각이 많았다. 유불신(儒佛神)을 독학하고 오구리료운(小栗縮雲)에게서 선(禪)을 배우고 ‘참된 노동은 수양된다’라는 것을 깨우쳤다고 전한다. 그가 깨달았다는 석문심학(石門心學)의 진수는 ‘무아(無我)의 경지에 인간의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마음으로 반성해 몸으로 실천한다’는 뜻이 내포된 심학(心學)에다 그의 아호를 넣어서 <석문심학(石門心學)>을 주장한다. 그의 핵심 사상서로 <도비문답(都鄙問答)>과 <제가론(齊家論)>을 합친 것이다. 일반인들이 이를 진정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그 요지는 ‘욕심을 버리는 데 행복이 있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수용하기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15년간 일본 열도를 돌아다니며 설법을 하였다. 특이한 것은 여성차별이 심하던 사회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도 좌석을 내어주는 등 개방과 개혁적인 측면을 과감하게 나타내었다. 축약하면 그는 변하기 힘든 사회내의 도덕적 향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기실 그의 철학은 일본의 신도(神道)을 축으로 동양의 주요 철학 사상이었던 유교와 불교를 접합하였던 것이며 또한 그의 개인적 선험에 따른 것으로 이론적으로 독창성은 없어 보인다. 다만 그 당시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이를테면 이렇다. 에도시대 쌀의 경제단위에서 화폐가 교환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 즈음 저장가치로 유용한 화폐를 이익적 관점에서만 추구할 뿐 그 당시 이익과 노동 그리고 소비자에 대한 상인들의 경제사회적 인식은 희박했다. 당시에는 농사가 한가하면 도회지에서 일하다가 농번기가 되면 다시 돌아와야 했다. 일하다가도 농사철이 되면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예사였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을 위한 환경은 너무나 열악했다.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인식이 업주와 노동자들 사이에 박혀 있었다. ‘잘해 줘봐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생산성이 저하되었다. 일하는 것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설사 정해졌다 하여도 굳이 더 일할 필요가 없었다. 더 일한다고 알아주는 것도 그리고 그렇다고 그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일에 대한 동기부여가 없었고 사회적으로 상호불신이 만연하였던 것이다. 그 때, 그는 빈둥거리는 것보다는 공짜로라도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정신수양에 도움이 된다고 그가 주장한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의 노동과 상(商)에 대한 가치관이다. 단지 노동을 통한 인격 수양만을 말한 것에 있지 않는다. 진정한 상인(商人)의 도리와 그리고 고객의 만족을 위한 감사하는 마음을 도출하고자 한 것이다.
<석문심학>은 일본의 상인정신을 체계화하였고 오늘에도 여전히 일본상인의 성경으로 취급되고 있다. 식자들은 일본이 상인국가(merchant country)가 된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한다. 단순히 상인이라는 특정 계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전체에 영향을 준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로 이어진다. 유래가 없을 정도로 노력하는 경영자로 알려진 그의 과감한 경영은 ‘우리 사원은 회사가 책임진다’는 정신을 가지고 사원의 노동을 귀하여 여겼다. 세계공황이 있었던 1929년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도 해고하지 않는다. 일원도 깍지 않고 급료를 지급한다.” 생산량을 반으로 줄이고 반나절만 근무하지만 직원은 한 명도 줄이지 않으며 월급을 전액 지급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원은 회사가 책임진다’.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경영철학이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오늘날 우리에게 실업은 만연해 있고 정리해고로 명예퇴직 등 갖가지 것들로 직업과 생업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에 대한 책임과 실천도 없어 보인다. 석문철학의 핵심은 그 당시의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적으로 잡아주었다는 데 있다. 오늘날 상호간의 불신은 커지고 그러면서도 이에 대한 대안은 절박해지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상황에 맞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놀면 뭐하냐’하는 것으로 다그칠 것이 아니다. 사업이든 정치이든 사원은 회사가 책임지고 국민은 국가와 정부가 맡아야 한다. 최고의 정치는 국민을 위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비단 이러한 생각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 특히 정치와 경제사회에 묻고 싶다. 누가 국민과 사원을 책임지려 하는가? ‘사람은 일의 존재인가 아니면 놀기 위해 일하는가?’ 이러한 의아한 의문이 무엇이건 한 가지는 분명해야 한다. 그것은 이렇다. 여하한 경우라도 국가는 국민을 책임져야 하며 일할 수 있는 환경설정 그리고 여가를 활용할 수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OECD 가입국이며 세계경제 14위 한국이다. 이 보다 못한 서유럽들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못할 까닭이 없다. 이에 대한 정치권의 책임과 실천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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