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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간을 지켜온 장수 대장간의 박석진 씨
타~탕탕! 두드리고 달구고... 쇠 하나로 뚝딱뚝딱
2017년 06월 15일 (목) 12:37:41 신인식 기자 tlsdlstlr@daum.net

 
   
평생을 장인정신으로 살아온 대장장이 박석진씨
옛날에는 시골 장터나 마을 단위에 전통 대장간이 있어 무딘 농기구나 농촌에서 사용하는 각종 연장을 불에 달구어 새로 만들기도 하였다. 자급자족하는 시대에 시골에서는 대장간은 꼭 필요한 존재였다. 대장장이는 오랜 숙련을 통해 담금질로 쇠의 강도나 성질을 능숙하게 잘 조절하는 사람이었다.
  풀무는 손풀무와 발풀무가 있는데 특히 발풀무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장간에는 풀무 외에 모루, 정, 메, 집게, 대갈마치, 숯 등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졌다. 대장간이 없는 지역이나 시골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연장을 벼루는 떠돌이 대장장이도 있었다.
  철, 구리, 주석 등 금속을 달구고 두드려 연장과 기구를 만드는 장인을 대장장이라 한다.  대장장이는 청동기의 출현과 동시에 등장하였다.
  신라에는 철유전(鐵鍮典), 축야방(築冶房)과 같은 관서가 있어 무기, 생활용품, 농기구 등을 제작하였으므로, 이미 이때 많은 대장장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 된다.
  신라시대의 절에서는 불상과 종의 주조기술을 가진 사노(寺奴)가 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관직, 제도상에서 여러 장(匠) 가운데 홀대대장(笏袋大匠), 연장(鍊匠), 전장(箭匠) 등은 대장간을 관장하던 관리도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초기 야장이 부족하여 일반병사들과 포로로 잡은 왜인(倭人)야장을 사역시키기도 하였다. 그들 중 오로지 관청수공업장에서만 사역당하는 대장장이도 있었지만, 스스로 농기구 등을 만들어 장시(場市)에 상품으로 판매하거나 물물교환으로 생활하면서 관청의 사역에 때때로 응하던 자들이 많았다. 조선 전기 대장장이의 신분은 양인과 천인이었지만, 후기에 들어서는 거의 양인화하여 관청의 사역에서 벗어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의 작업장인 대장간에는 풀무와 화로가 기본적인 설비이고, 그 밖에 모루, 메, 망치, 집게 등의 연장을 구비하고 있었다. 작업과정을 살펴보면 풀무로 화로의 불을 피워 쇠를 달군 후 메질과 담금질을 계속한다. 전통적인 대장장이가 호미 하나를 만드는 시간은 줄잡아 한 시간이 걸리지만, 현재의 기계로 제작하면 한꺼번에 수십 개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대장장이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지금은 대장간과 대장장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장수군 장수읍 장수시장(5일과10일)에는 대장간에서 붉게 달궈진 쇠를 쉴 새 없이 두드리는 탕!, 탕!, 탕!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평상시에는 장수리 남동마을 그가 물려받아 작업하는 작은 대장간에서도 잊혀져가는 소리, 장인(匠人)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반세기 가까이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대장간을 지켜온 대장장이 박석진 씨(61)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다섯 평 남짓한 자그마한 대장간 이곳저곳을 누비며 빨갛게 달아오른 고로와 담금질을 기다리는 주물 등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쇠를 벼리는 등 제작 작업을 이어가는 박석진 씨의 손놀림은 쉴 틈이 없다.   시뻘겋게 달궈진 쇳덩이를 집게로 집어 타~ 탕탕! 망치질을 시작하면 어느새 쇳덩이는 구상하고 있는 모양새을 갖춰간다. 모루에 올려놓고 모양을 잡아가는 동안 박 씨의 눈빛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그는 “하나하나를 명품을 만든다고 생각하며 다듬어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기계틀에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눈과 손의 느낌으로 모양을 잡고 불꽃색으로 온도를 맞추어 만들어 갑니다.” 

   
 
그는 장인정신으로 평생을 살아왔다는 박 씨는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단가 경쟁의 어려움이 있지만 품질 만큼은 자신감이 있다”며 “원하는 제품은 무엇이든 특별제작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투박하고 묵직하지만 손잡이와 끝 부분에서 꼼꼼하고 섬세한 마감을 볼 수 있는 괭이, 호미, 낫, 망치, 곡괭이 등 농기구들이 대장간 바닥에 정리되어 있어 눈길을 잡는다. 특히 그는 아이젠 같은 등산용품을 비롯해 심마니들이 주문하는 특수한 도구들까지 수십여 가지에 이르는 종류의 도구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내고 있다. 그의 농기구 제품들은 그 기능을 널리 인정받아 대전, 금산, 무주, 진안, 경남 함양 등지에서 특별 주문 납품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먹고 살기가 힘들어 사회진출을 고민하고 있을 때 작은아버지가 운영하던 대장간에서 바쁜 일손을 잠시 도와준다고 시작한 일이 그를 46년 동안 대장장이로 살아오게 했다고 술회 한다.
  장날만 되면 대장간 앞은 시골노인이나 농부들, 등산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시장 “사랑방”이 된다. 누구나 대장간을 찾는 사람들은 커피는 기본이고 막걸리 한잔 까지도 친절히 대접하니 모두가 친한 친구가 되고, 바뿐 틈에도 낫이나 칼을 갈아달라며 찾아오는 인근 주민들은 무료로 갈아 주기까지 한다.
  대장간을 찾는 손 모씨는 “기성제품은 쇠가 약해서 쉽게 망가진다며 이곳에서 불로 달구고 두들겨 만든 호미나 괭이 낫, 칼 등이 튼튼하고 강해서 30여년간을 즐겨 찾고 있다” 며 대장간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군에서도 이곳을 장수군민의 대장간으로 지정하여 간판을 제작 부착하였다.
  그는 최근에야 장수가 철과 봉수의 왕국인 가야의 중심지라는 것을 알았다며 “개인적인 욕심은 없지만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이랄 수 있는 대장간이 사라져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지자체에서 철기문화 유산이라 할 수 있는 대장간을 나서서 기술 보전과 홍보 계승에 힘써 줬으면 더 좋겠다.”고 말한다.  미래 첨단정보화 산업사회가 되더라도 쇠붙이를 다루는 대장간의 정신과 얼은 제철산업과 철강 산업,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연장을 만드는 수공업으로 발전 보존시키고 시대가 변화하고 소비자의 욕구가 다양화함에 따라 우리의 전통 대장간도 창조적으로 재조명, 지역사회의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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