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출신 원로 서양화가, 70여년 만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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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출신 원로 서양화가, 70여년 만의 귀향
  • 이세웅 기자
  • 승인 2017.06.2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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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잔느’로 불리는 박남재(89) 화백이 70여년 만에 귀향했다. 국내 서양화단의 원로 작가로 추앙받는 박 화백은 최근 고향인 전북 순창군에 들아 와 작품활동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특히 그가 빨치산 출신으로 험난한 인생역정을 극복해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6·25를 앞둔 시점에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박 화백은 지난해 12월부터  순창군 적성면 구암마을 ‘섬진강 미술관’에 둥지를 틀었다. “순창이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고향에 돌아와 큰 나무가 돼 달라”는 황숙주 군수의 요청을 받아들여 16살 이후 계속해 온 타향살이를 접은 것이다. 
망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종일 붓을 들고 화폭과 씨름을 하고 있다. 최근 새 작품을 위해 200~300호 대작 캔버스를 10개나 구입할 정도로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박 화백은 대담한 원색의 붓질로 자연의 강렬한 리얼리티를 포착해 독창적인 색감과 표현력으로 구상화의 새 길을 개척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술가로서 최고의 명예라는  ‘대한민국 예술원상(2013년)’을 받았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박 화백은 빨치산 출신으로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1929년 순창읍에서 태어나 중학교 4학년(당시 중학교는 6년제)까지 고향에서 살다 서울로 전학을 갔다. 서울대 미대에 들어갔지만, 입학 몇 달 만에 6?25가 터지면서 학업을 중도포기 할 수 밖에 없었다. 보름을 걸어 고향으로 돌아온 뒤 회문산 빨치산 전북 도당에 들어가 지리산.운장산 등을 1년간 누비고 다녔다.


 
박 화백은 조선대 미대를 나온 뒤 고교 교사를 거쳐 원광대 미대 학장까지 지냈다. 전주여고에서는 이낙연 총리의 부인 김숙희 여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김 여사는 대학진학을 앞두고 이화여대 미대를 희망했지만, 담임 교사는 “합격이 어려울 것”이라며 원서를 써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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