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 소쩍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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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 소쩍새
  • 허성배
  • 승인 2017.07.0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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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논설위원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이 왔다.
피곤한 일과에서 잠시 마음 놓고 창문을 열며 바람결에 희미하게 또는 선명하게 때로 가까워지는 듯 더러 멀어져가는 듯 “소쩍 소쩍…”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리곤 한다. 모악산 소쩍새 울음은 밤에 들어야 정한에 잠 못 드는 이의 혓소리를 대신 풀어낸다지만 낮에 듣는 소쩍새 울음도 꽤 이상적이다.

소쩍새는 두견새라고도 하고 소쩍새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 촉나라 망제(望帝)의 죽은 넋이 이 새가 되어 밤낮으로 처량하게 운다고 하지만 전설 때문인지 예부터 많은 시인(詩人)들의 노래 속에 등장 하기도 했다.
울다가 울음이 진하면 피를 토하면서까지 울고 마침내는 피가 다하여 죽고 만다는 소쩍새는 고려의 가요 정과정곡(鄭瓜亭曲)에서도 슬프게 노래가 되어 있다.
『내 님을 그리 자와 우니 나니, 산 소쩍새와 비슷하오이다. 아니시면 거츠르신 달아 아, 잔월효성(殘月曉星)이 아시리이다…』라고 고려 적의 이름모를 작가는 새벽하늘의 조각달과 잔별 떼까지도 다 알고 있는 결백함을 왜 몰라 주냐고 소쩍새처럼 피를 토하며 울었다고 한다.
소월도 『접동 애오라지 접종…의 의붓어미 시샘에 죽은 누나는, 진두 강 사람 가에 와서 웁니다. 아홉이나 남게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소쩍새 되어 운다고 노래했으니 진정 소쩍새 울음은 살아생전에 못다한 사랑이나 억울한 누명을 죽어서까지 울어대는 넋의 소리를 연상시키는가 보다.
그런 선입감 때문인지 대낮에 듣는 소쩍새 울음소리도 오늘따라 왠지 처절하게 들려 새삼 잊었던 시구마저 떠올려 준다.
윤희 설(輪廻說)의 말대로 한 많은 이의 넋이 소쩍새로 환생 되어 슬피 우는 것인지 듣는 이의 마음이 설움에 겨워 처절(悽絶)하게 들리는지 아니면 비록 미물인 새라 하더라도 모든 목숨이 지닐 수 있는 아픈 사연을 간직한 까닭에 또한 그렇게 우는지는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한참 푸르러 가는 녹음 속에 그 모습을 숨기고 목청 하나로 자신을 들어내는 소쩍새 울음은 어쩐지 자학처럼 가슴에 와닿는다.
현대인을 고독한 군중으로 표현한 “에리히 프롬”의 소외의식이 새삼 절실하게 느껴지는 듯도 하다.
팔순이 가까워진 이 나이에 그것도 눈부시도록 볕 바른 대낮 풍요와 삶의 환희(歡喜)를 상징하는 짙푸른 녹음의 계절에 어째서 목 놓아 우는 소쩍새의 고적감에 이리도 공감이 되는지!
외쳐 볼 목청이 없고 소리쳐도 귀 기울여 주는 이 없는 고독한 영혼이 못다 부른 노래처럼 아리고 아프게 들리느냐 말이다.
모악산 푸르디 푸른 기슭에 숨어 우는 소쩍새여 “말하라 그대 정녕 누구였길래 그대 진정 무엇이 아파 그토록 슬피 우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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