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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읍 풍물단』우리의 전통문화유산 맥 잊는다.
2017년 07월 09일 (일) 12:53:08 신인식 기자 tlsdlstlr0006@daum.net

   
이성재 단장
장수 한누리 전당 풍물 전수관에 오후 7시에 가면 어김없이 꽹과리 소리에 장단을 맞춘 징과 장구소리로 신명나는 한판이 벌어져 보는 사람도 저절로 어 깨를 들썩이게 한다. 이곳에서는 이성재 단장을 비롯한 30여명의 단원들이 일 과를 마치고 매일같이 모여 지금은 잊혀져가는 우리민족의 혼이 깃든 풍물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열심히 매우고 익히고 있다.
  우리의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모내기나 김을 매고 해질녘에 일과를 마치고 들어오면서 풍물을 치고 하루의 피곤함을 잊고 흥에 취해 마을로 돌아오곤 했으며 단오등 대 명절에도 집 돌이를 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 풍습이었다.
  이러한 풍물은 원각사의 협률사라는 단체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이곳에서 고종이 즉위 4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명창 김창환, 송만갑 등에게 명을 내려 전국의 예인을 극장 협률사에 모이도록 하여, 예행연습도 시켰다는 곳으로 '농악'이라고 통칭하게 된 것은 8·15해방 이후 국악정리 사업이 이루어지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이 명칭은 일제의 '조선 혼 말살정책'에서 비롯된 것인데 일제는 조선총독부 주관으로 조선 문화 특히 민속 문화에 관한 조사사업을 통해 무속종교가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에 무속신앙은 가장 중요한 탄압대상이 되었고 그중에서도 공동체를 형성·유지하는 장치역할을 해온 마을 굿을 철저히 제지했다. 그러나 1920~33년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하면서 농업장려운동의 하나로 두레 굿만은 허용했다.

   
집 돌이

  굿하는 단체들은 농악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신청을 해야만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민간생활의 다양한 형태에서 공동체를 형성했던 장치기구인 굿은 농업에 관련된 음악으로만 국한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꽹과리, 징, 장구, 북의 4가지 타악기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태평소, 나발의 관악기와 그밖에 버꾸 등이 곁들어지는 농민음악을 '농악'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대인들의 축원 형태로 나타난 제천의식에서 볼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주조술이 발달한 신라에서 쇠(꽹과리)와 방울을 만들어 두레 농악인 “도솔가”를 지어 놀았다고 하는데 꽹과리 소리를 흉내 낸 "쾌지나 칭칭나네"라는 꽹과리 두레소리가 지금까지 전한다.

   
 

  고구려에서는 "놀 때는 고깔과 수건을 쓰고 꿩 꼬리를 꽂고 춤을 추는데 촌구석의 남녀까지도 주야로 굿치고(농악) 즐겨 놀더라"라는 기록이 “삼국지” 후한서에 전한다. 백제에서는 산천에 제사를 지낼 때나 군사들을 열병할 때 농악을 쳤으며 매번 일본에 음악인을 파견했는데 그 예로 가면 굿의 미마지가 일본 음악에 영향을 준 것을 들 수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시작된 나라 굿인 팔관회가 국가적인 규모로 토속 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고려시대까지 이어진 점 등은 농악의 역사적 기원을 알게 해준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918년(태조 1)부터 궁중행사에 등장했고 사찰이나 민간에서도 중요한 연중행사 때 없어서는 안 될 음악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팔관회가 중지되고 유교사상에 젖은 성균관 유생들과 양반, 사대부들이 대중예술인 농악을 천시하는 경향이 많아져 나라 굿은 없어졌고 마을단위의 공동체 굿만이 여전히 성행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국문화말살정책'으로 농악이 빛을 잃게 되었고, 해방 후에는 서구문물에 밀려 급속히 근대화, 도시화되면서 전통적인 삶의 양식은 대부분 파괴되었으므로 지연을 기반으로 한 마을 굿은 쇠퇴하게 되었다. 여기에 박차를 가한 것이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각 마을의 당집은 없어졌고, 당을 중심으로 주민들을 단결시키고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기능을 했던 마을 굿은 거의 사라져갔으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일부 마을은 서낭 대를 앞세우고 매구를 치며 당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당에 사람들이 모이고 일렬횡대로 늘어서 쇳 가락에 맞추고 서낭신에게 절을 올린다. 당에서 굿이 끝나면 서낭 대를 높이 세우며 마을로 돌아와 구석구석을 돌면서 풍물을 울리는데, 이를 '집 돌이'라고 한다.
  집 돌이는 관가나 우물 등 공공시설로부터 시작해서 각 집을 방문하여 '마당밟기'를 한다. 이것은 지방에 따라 지신밟기라고도 부르는데 문 굿에서부터 마당 굿을 거치고 정지 굿, 장독 굿을 친 다음 마구간 굿이나 측간 굿까지 쳐주는 풍습도 있다. 굿이 끝나고 집주인이 대청에 고사 상을 차려 놓으면, 상쇠는 풍장도 치고 고사소리도 읊었다.
  이러한 농악이 지방에 따라 악기편성, 채(장단), 진법 등이 다른데 웃다리가락(중부이북), 아랫다리가락(중부이남)으로 크게 나누기도 하며, 기호농악권, 호남농악권(좌도·우도 농악), 영남농악권, 영동농악권으로 나누기도 한다
  호남농악은 산간지대와 내륙지방의 농악을 좌도농악, 평야지대의 농악을 우도농악이라 구별하여 부른다. 좌도농악의 악기와 편성은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호적, 나발로 이루어져 있다. 채에는 채굿가락(1~7채), 풍류 굿, 자진모리, 휘모리, 호호굿이 있으며 가락이 빠르고 힘이 있다. 독특한 가락으로는 영산(靈山)가락을 들 수 있는데 손바닥으로 쇠를 막거나 트는 표현을 말하며 소쩍새가락이라고도 부른다.
  이밖에 짝드름도 특징적인 가락인데 품앗이가락이라고도 부른다. 소고춤과 쇠꾼의 부포놀이가 발달했고 전원이 상모를 쓰며, 밑놀이 굿가락은 소박하다.    우도농악의 악기편성은 좌도와 비슷하며, 채에는 내드림가락, 인사굿가락, 느린오채, 늦은삼채, 긴삼채, 자진삼채, 자진모리, 자진오채, 오채질굿, 호호굿이 있다. 좌도굿에 비해 가락이 느리고 유연하며 밑놀이, 즉 악기 연주기교가 특출하다. 정읍지방에서는 설장구가 발달했는데 그 진법이 다양하면서 크다.
  장수 풍물단에서는 좌도농악의 명맥을 잊기 위한 노력으로 잊혀져가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가기위해 관내에서 개최되는 각종행사나 정월 대보름 달집놀이 등에 참여하여 행사 분위기를 살리고, 년 초 각 기관을 돌며 한해의 액운을 몰아내고 행운을 비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도 한누리 전당 풍물 전수관에 가면 장수읍 풍물단원들의 꽹과리, 징, 장구소리가 가락 장단에 맞춰 조화를 이루며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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