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시는 성실하게 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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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시는 성실하게 써야
  • 허성배
  • 승인 2017.07.1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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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허성배

한 편의 수필을 제대로 쓰고자 나는 꽤 오래 고민했다. 왜 그러냐 하면, 평소 내가 쓴 수필이나 칼럼을 남에게 발표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쓴 수필이 아무렇게나 적는 수필이나 칼럼은 어떤 규칙이나 법칙의 테두리 안에서 쓰이는 것이 아니므로 것을 남에게 말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 글만은 많은 이들이 읽게 될, 일종의 공적(公的)글이라서 조심 되어 때로는 일주일 또는 한 달도 고민한 때도 있다. 글을 쓰는 과정은 모든 문학 장르나 다를 바 없다. 그렇다고 내가 평소 적어대는 수필이, 아무렇게나 즉흥적으로 그리고 무책임하게 쓴다는 뜻은 아니다.

시인들도 한 편의 시를 얻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머릿속에 떠올리고 가슴으로 덥힌 다음, 최적의 언어를 골라 한 자, 한 행, 한 연을 적으리라, 숱한 고뇌와 낭설 끝에 얻어진 한 편의 시. 사실 올바른 수필가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 흰 편의 글을 써 내려 간다.
여기서 나는 수필이나 시의 작법을 이야기한다는 의미에서 몇 마디 부언해야만 할 것 같다. 한편의 글을 쓰기 위해 나는 마음속에 하나의 주제를 끌어안고 얼마나 오래오래 생각하는지 모른다. 때로는 길을 걸으면서, 또 차를 타고 가면서, 또 새벽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면 그 주제를 효율적으로 끌어낼까 고민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하나의 주제가 떠오르면 나는 주로 아침 시간을 택해 써내려 간다. 내 수필의 원고지 기준은 대개 2백자 8매에서 12매가 고작이다. 하루에 다 쓰지 못하고 며칠 걸릴 때도 있다. 이것은 내습관 탓도 있겠지만, 꼭 한두 번은 다시 고치기 때문이다. 한 번 쓴 원고를 고친다는 것은 밤새워 지어 놓은 저고리를 뜯어 다시 바느질하는 것 이상의 수고로움이 따른다. 그러기에 올바른 판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한 편의 작품이 그렇게 해서 만든 작품은 내 손에서 떠나보내며 무한한 책임을 느끼곤 한다.
오늘날 한국독서 인구 중 시(詩)나 소설을 전공하는 사람 이외의 독자로는 수필 독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안다. 이는 수필의 대중성을 말해 주는만큼 수필을 쓰는 이들은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문화예술진흥을 위해 문예 창작지원금 등을 후원하고 있어서, 문학 지망생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독자적인 창작도 중요하지만, 누구한테 지도를 받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문학의 진로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각 대학을 비롯한 문학의 전당 강의실과 수많은 문학회(수필•시•소설•시조 기타 등)가 있지만 전북의 경우 신아문예대학에서 시와 수필을 지도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최근 김 학 교수의 수필특강을 통해 내가 새롭게 얻은 지식은 글의 철학과 혼이 담긴 신문이나 논문•잡지 등 모든 글의 핵심인 제목이야말로 본문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독자는 글의 핵심인 제목을 보고 읽을지 말지 결정하므로 가능하면 흥미를 끌 수 있는 제목을 달아야 한다. 나는 어느 문학지에 기고한 글의 제목을 ‘문화가 숨 쉬는 세계화 시대로 가야! 라고 달았다. 특히 수필문장에서 불필요한 쉼표를 넣으면 글 읽기의 흐름을 방해하므로 삼가야 한다. 또 단순한 단어를 나열할 때는 가운뎃점(•)을 사용해야 일목요연하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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