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맞아 긴 연휴가 이어졌지만, 결코 즐겁거나 행복하지 못했다. 연휴 직전 연일 쏟아진 이명박(MB)정권의 적폐사실 공방이 추석 내내 잔상(殘像)으로 이어져서다. 정치권의 이른바 추석밥상 민심을 노린 공방은 가히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이다. 전임 대통령이 파면에 이어 재판을 받는 등 적폐청산이 일단락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다.
이명박정권의 각종 불법행위는 오히려 박근혜 전 대통령때보다 더 극악스런 모습이다.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아주 업(業) 삼아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댓글부대 여론조작과 선거개입,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공영방송장악, 박원순제압문건 등을 공작해온 것으로 밝혀져서다. 거기에 더해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공작 내용이 청와대에 보고되고, 국군기무사령부까지 댓글부대를 운영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당도 노 전 대통령 뇌물수수사건 재수사를 촉구했다. “논란의 본질은 문재인정부가 자행하고 있는 정치보복”이라는 대변인 성명도 내놓았다. 바른정당 하태경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선거전에 이용하려 한다”고 비판한 후 “고인을 상대로 무슨 재수사란 말인가. 한국당이 떠들면 떠들수록 적폐청산 구호만 더 요란해질 것”이라며 “추한 입을 다물라”고 주장했다.
9월 28일 마침내 MB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안보가 엄중하고 민생 경제가 어려워 살기 힘든 시기에 전전 정부를 둘러싸고 적폐 청산이라는 미명 하에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퇴행적 시도는 국익을 해칠 뿐 아니라 결국 성공하지도 못합니다”라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온갖 역주행으로 민주주의를 30년 전쯤으로 되돌린 퇴행의 당사자가 그런 말을 하다니, 아직도 MB는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안보가 엄중하고 민생 경제가 어려워 살기 힘든 시기”이니 공작정치의 불법행위가 명백한 사실인데도 그냥 넘어가자는 말인가. 그때는 안보가 엄중하지 않고, 민생경제가 좋아 그딴 일들을 자행했단 말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이미 한 차례 탄핵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한국당도 그렇다. 이명박정권이 저지른 온갖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적폐청산을 사자(死者)까지 끌어들여 정치보복이라고 우기니 할 말을 잃는다. 그래도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알베르 카뮈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참으로 요상한 것은 똑같은 하나의 사실이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범죄유무가 갈린다는 점이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국정원이나 군(軍)의 정치적 중립이 헌법적 가치로 엄존한다. 그들이 댓글부대를 운영한 것은 보수든 진보든 명백한 범죄여야 하지 않나. 적폐청산의 본질을 흐리고 대중일반의 정치혐오증을 부추기려는 저들의 뻔한 속내에 넘어가선 안된다.
답답한 것은, 이미 지난 겨울 촛불정국에서 목격했듯 저들이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향신문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77.9%가 ‘이 전 대통령을 수사해야 한다’고, 70.7%가 ‘규명해야 할 사건에 대한 정당한 수사’라고 하는데, 저들만 그 모양이다. 제발 그 입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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