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제도와 기업 때리면 서민만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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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제도와 기업 때리면 서민만 더 어렵다
  • 허성배
  • 승인 2017.10.1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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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논설위원

국정감사 새삼스러울지 모르지만, 한국의 국정감사 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국정감사란 국민 의사의 대변 기관이며 헌법기관인 국회가 정부 예산안 심의를 계기로 정부 각 부처 운영과 예산 집행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뜻한다. 헌법에 의하면 국회는 연간 회기 100일간, 1회의 정기회와 여러 차례의 임시회의를 소집해서 정부 예산안과 법률 및 기타 국정을 심의 의결하게 되어 있다.

올해도 지난 10월 12일부터 11월 3일까지 23일간 시행하는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어김없이 실행 중에 있는데 선진국과는 달리 열심히 달러를 벌어 들려 국부를 증가하고 있는 기업을 때리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직원도 없이 홀로 영업하는 `1인 자영업자’가 약 400만 명에 이르러 미국·멕시코·터키에 이어 세계 4번째로 많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보고서가 공개됐다. 인구 대비 `나 홀로 사장’ 숫자를 따지면 세계 최고 수준이며 자영업의 비정상적 비대화, 왜곡된 한국 노동시장의 현주소다. 1인 자영업자는 지난 6월 이후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우리 경제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통계다.
우리나라 취업자 중 임금 근로자 비중은 74%로 미국(93.5%), 독일(89.2%), 일본(88.5%) 등에 비해 크게 낮고 그 대신 자영업자 비중은 다른 나라보다 크게 높은 편이다. 고용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자영업에 뛰어들기 때문이지만 포화상태인 자영업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영업자 5명 중 1명은 연소득이 1,000만 원에 못 미치고 자영업 10곳 중 6곳은 문을 연 지 3년 이내에 폐업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은 결국 저소득빈곤층으로 내몰리고 있다.
난데없이 심리학 이론을 끄집어낸 건 정부의 국정 추진 방식이 두 이론이 설명하는 현상을 빼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기업 관련 경제정책의 경우 특히 그렇다. 넉 달여 내내 퍼부어대는 ‘반기업·친 노동’ 정책 폭탄으로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 소상공인까지 아우성인데도 들은 척, 본 척도 않는다. 경제지표도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정권이 내세운 정책을 정당화하려 한다. 지지율 하락이 두려워 재벌 대기업을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은 뒤 ‘반재벌 연대’를 결집해 자기편으로 만드는 등의 구태를 헌법이 정한 여·야 국회의원의 권한을 이번 국정감사에서 기업만 때릴 것이 아니라 공정하고 과감하게 특히 각급 공직자는 물론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깊이 뿌리박힌 비리와 부정부패를 혁파 정신으로 파헤쳐 만천하에 공개해 줄 것을 국민은 바라고 있다.
진보든, 보수든 역대 정권은 ‘재벌·대기업 때리기’를 필승 병기로 애용했다. 양극화의 최대 희생자인 서민을 꾀는 데 반 부자 정 서만 한 특효약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재벌 책임도 크다. 정경유착, 황제경영, 불공정 갑질은 반기업 정서를 키우는 숙주다. 그렇더라도 현 정부의 재벌 때리기는 도가 지나쳐 ‘재벌 죽이기’ 수준이다.
요즘 기업 CEO나 임원을 만나면 몇몇 공통점이 발견된다. 우선, 넋이 나가 있다. 말수도 줄었다. “이대로 가도 나라 괜찮나요” 하며 장탄식을 한다. 실적이 좋아도 자랑하려 들지 않는다. 언론 노출도 피한다. 말을 더할라치면 “세상이 어지러울 땐 조용히 있는 게 상수다. 괜히 나댔다간 공정위·국세청 표적이 된다”고 손사래 친다. 그리고 일어나면서 한마디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규제개혁과 노동개혁 없이는 기업 못 해 먹겠다”
당연히 기업 자체도 피멍이 들어 있다. ‘뭘 해야 할지’보다 ‘어떻게 막아야 할지’를 궁리하느라 급급하다. 한 분석에 따르면 ‘소득 주도성 장발 위험성’으로 인한 추가 비용이 최대 78조 원이나 된다. 내년 예산의 18%에 달하는 액수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통상임금 판결 등이 청구항목이다. 그렇지않아도 실적이 급격히 악화하는 터라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최근 5년간 기업의 1인당 매출액 연평균 증가율은 -1.8%다. 1인당 영업익도 연평균 3.0%씩 줄었다. ‘고비용의 역습’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8월 청년실업률은 18년 만에 최고다. 실업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경제고통지 수’도 6년 만에 가장 높다. 새 정권의 지지층이면서 정책 수혜자로 꼽히는 서민·청년이 더 힘들어지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최근 기업인 사이에 “노무현 시절이 그립다”는 말이 유행한다. 노 정부 때도 재벌개혁 의지는 분명했다. 하지만 집권 초 ‘카드대란’ 전조에 지정학 위험성까지 겹치자 규제 완화를 통해 정책균형을 잡았다. ‘법인세 인하’도 전격 선언했다. 반면 문 정부는 대내외 여건이 훨씬 나빠졌는데도 강경책 일색이다.
세계 감세 전쟁 속에 한·미 법인세 역전이 코앞인데도 법인세율을 올리려 한다. 친기업으로 경제를 살려내는 일본과도 정반대 길을 간다. 중국 공산당마저 건국 이후 처음으로 기업가정신을 공식 장려하고 나선 판국이다. 문 대통령과 핵심 측근은 ‘확증편향 중증’에 ‘균형이론 신봉자’임이 분명하다. 돌파구는 없는가. 문 정부가 확증편향에서 탈피해 역지사지하면 살길은 있다. 길은 둘이다. 과속 중인 ‘반시장·반 자유’ 정책 속도를 확 줄여라. 한참 뒤떨어진 혁신성장 액셀은 세게 밟아라. 그런 면에서 요 며칠 전 문 대통령의 혁신성장 발언은 많은 아쉬움을 준다.
당장 시작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제야 개념 정립과 집행 전략을 지시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한데, 대통령이 ‘공정경쟁으로 기업이 마음껏 뛰게 하는’ 혁신성장을 언급한 그 날 사정 기관장 모두를 불러모아 첫 반부패정책협의회도 주재했다. 이 두 장면을 동시에 본 기업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규제개혁과 노동개혁 없는 혁신성장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여야가 규제개혁의 상징인 서비스산업발전법과 규제프리존법만이라도 조속히 통과시켜야하는 이유다. 지금 야당이 여당 때 찬성했고, 여당이 야당 때 반대한 법안이니 상대방 처지에서 잘헤아려 문 정부 ‘제1·2호 협치법안’으로 삼으면 어떨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경제 원리와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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