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분노 자아내는 특수활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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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분노 자아내는 특수활동비
  • 장세진
  • 승인 2017.11.0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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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박근혜 대통령 시절 문고리 3인방이라 불리우며 사실상 실세였던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이 국정원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들은 수감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정호성 전 비서관과 달리 최순실국정농단사건을 피해간 상태였다. 매우 의아스러웠는데, 2013년부터 매월 1억 원씩 총 40억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구속되었다.
이씨가 박 전 대통령 지시로 한 것이라는 진술을 했다는데, 그 돈은 국정원의 이른바 특수활동비로 밝혀져 새삼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새삼’이라 말한 것은 지난 4월 법무부와 검찰간부들의 돈봉투만찬사건에서도 특수활동비가 도마 위에 올라서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3년 2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자진사퇴때 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 횡령 의혹이 있었다.

감사원은 돈봉투만찬사건이 터지자 7월 19일부터 특수활동비 점검에 들어갔다. 20일 넘게 2016년 1월부터 2017년 6월 30일까지의 ‘특수활동비 집행실태’를 점검한 결과 19개 기관은 집행내용확인서조차 아예 없었다. 또 각 기관이 사용한 전체 특수활동비의 50.3%만 집행내용확인서가 있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깜깜이 예산에 눈먼 돈인 것이 드러난 셈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후 가진 첫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에서 특수활동비 절감방안을 언급했다. 내년 예산안에서 18.6%줄어든 특수활동비는 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아예 빠져 있다. 올해 특수활동비 예산은 20개 기관 8,938억 원에 이른다. 그중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4,930억 원으로 55%를 차지한다.
특수활동비란 정부 각 기관이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수집이나 사건수사, 국정수행 활동 등에 쓸 수 있게 책정된 예산”이다. 일견 그럴 듯해보이지만, 사실은 눈먼 돈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가령 국정원이 해외 및 대북 정보활동에 써야 할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자체가 천인공노할 짓이라 솟구친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입법부가 앞장서 그런 범죄를 조장해놓은 측면도 있지 싶다. 국민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국가 예산을 그렇듯 비밀리에 쓸 수 있도록 법제화.제도화해놓았기 때문이다. 김동연 부총리가 국정감사에서 영수증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특수활동비에 대해 “관행적으로 해왔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시정돼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폐지 기미는 보이지 않아 유감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적폐로 보이는데, 다시 불거진 특수활동비 논란은 문예지도 교사시절을 새삼 떠오르게 한다. 예산집행의 엄정함에 한껏 초라해지고 행정실 하수인쯤으로 전락해버린 것같은 매우 불쾌하고 씁쓰름했던 기억이다. 가령 3만 원일 경우 학생들이 쓴 교통비.식비.간식비 등에 대한 영수증을 일일이 첨부하여 정산하는 식이다.
특히 영수증 주기를 꺼려하거나 정착되지 않은 짜장면집에서의 간이영수증 챙기기는 여간 고역(苦役)이 아니었다. 고작 3만 원의 학생여비 정산절차도 그처럼 추상같이 이루어졌다. 당연히 나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학교 예산을 쓰는데 한 치의 빈틈이나 소홀함이 있어선 안되겠기에 불만이 있어도 하라는 대로 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특정업무경비 횡령 의혹사건이 불거졌을 때 깊은 허탈함에 빠져든 건 그래서다. 심지어 어떤 배신감까지 느꼈던 기억이 난다. 특정업무경비가 특수활동비와 다르게 공적 업무를 위해서만 사용해야 하며, 영수증 등 증빙 서류를 반드시 제출해 공무 관련성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높은 분들 쓰는 국가예산은 그렇지 않다니 너무 잘못되었다. 영수증 따위 정산처리 없이 쓰는 그런 눈먼 돈이 올해만 총 8,938억 원이라니 다시 배신감도 생긴다. 투명하게 따박따박 세금 내는 월급쟁이 등 서민들이 이런 위화감을 언제까지 느끼며 살아야 하는지, 과연 ‘나라다운 나라’가 맞는지 온갖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국정원 게이트니 박 전 대통령 비자금이니 하는 말들이 난무하지만, 확실한 것은 특수활동비로 인해 대다수 국민이 느낄 상실감과 위화감이 더 큰 문제라는 점이다. 또 그것을 치유할 책임자나 세력도 없다는 점이다. 다른 뇌물사건과 다르게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사건이 새삼스런 분노와 함께 더 분통을 터지게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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