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가 추구하는 비전과 자긍심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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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가 추구하는 비전과 자긍심은 무엇일까
  • 허성배
  • 승인 2017.12.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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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논설위원

금융 분야의 비전(vision)은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이자 그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있는 페이팔은 `금융서비스의 민주화`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전 세계 2억 명 이상의 금융소비자에게 간편 결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금융서비스의 접근성을 확장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하지만 명확하고 측정 가능하며 페이팔의 정체성이 잘 반영된 비전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가? 국내 금융회사들이 선포한 비전은 주로 `선도은행` 등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것이거나, `홍익` `감동` `따뜻한` `행복` `사랑` 등과 같이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리딩뱅크`와 같이 자기중심적인 비전은 몰가치적인 데다가 고객과의 공감성이 낮아 비전으로서 부적절하다.

또한,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수준에서 그치는 비전들도 각 금융회사의 정체성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너무나 추상적이라 비전 달성을 위해 어떤 전략을 추구해야 하는지 파악하기도 어렵고, 비전이 얼마나 달성되고 있는지 측정하기도 어렵다. 비전은 모든 조직에 있어서 가장 상위의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이 비전 설정을 위해 깊이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금융회사의 경영전략이나 발전전략도 비전과는 상관없이 그저 수익성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듯 보인다. 금융회사가 추구하는 가치 없이 그저 수익만 내겠다고 하면 고객들이 어찌 금융회사를 자신들의 동반자로서 인식할 수 있겠는가?
현재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신뢰의 위기에 당면해 있다. 2016년 1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우리나라 금융발전지수 순위는 183개국 중 6위였던 반면, 비슷한 시점에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우리나라 금융시장 성숙도 순위는 137개국 중 80위였다. IMF 지수가 다양한 통계 지표에 기초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객관적 모습을 나타내지만, WEF 지수는 상당 부분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기초했기 때문에 고객 처지에서 본 금융산업의 주관적 모습을 나타낸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양적으로는 상당히 성장했지만,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는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태로 해석된다. 한편 미국 중앙은행인 Fed가 기준금리 0,25% 포인트 인상을 계기로 한국도 금리추가 인상을 한은 내부의 ‘매파’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작년에 비교해 다소 이익이 증가한 금융회사들에 대하여 국민이 비판적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만 보아도 국민의 금융회사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국민은 금융회사를 동반자가 아닌, 금융회사가 이익을 보면 내가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의 거래 상대방으로 인식하고 있다. 금융회사에 대한 국민의 이러한 시각을 바꾸지 않고서는 금융산업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라는 책의 저자인 윌리엄 데이먼 스탠퍼드대 교수는 우리가 고난과 역경을 만나도 중심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치 있는 삶을 위한 목적 설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금융회사가 가치 있는 비전을 갖고 있어야 구성원들이 더욱 큰 자긍심을 갖고 자기 일에 보람을 느낄 것이다. 회사가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힘도 갖게 될 것이다. 금융회사가 이러한 비전을 고객과 공유하면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은 비로소 금융회사를 자신들의 동반자로서 인정할 것이다.
우리의 금융회사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가? 이 비전은 고객 또는 국민의 관점에서 가치가 있는 비전인가? 비전이 회사의 정체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가? 비전 달성을 위해 어떤 구체적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는가? 비전이 얼마나 달성되고 있는지 지속해서 확인하는가? 비전 및 비전 달성을 위한 노력에 대하여 고객 및 국민과 충분히 소통하고 있는가? 금융회사도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것을 강변하기에 앞서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 묻고 답을 찾는 것이 먼저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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