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공모제 악몽
상태바
교장공모제 악몽
  • 장세진
  • 승인 2018.01.10 16: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지난 세밑 교육부는 ‘교장공모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2018년 9월 임용부터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운영하려는 학교 중 15%까지만 교장자격증 미소지자가 지원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규정을 없애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일반 독자들을 위해 부언하면 2011년 9월 내부형 교장공모 확대를 뼈대로 한 초ㆍ중등교육법과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하에 통과되었다.
그러나 당시 교과부가 마련한 시행령이 발목을 잡았다. 내부형 교장공모의 경우 공모를 실시하는 학교의 15% 이내로 제한하는 시행령이 2011년말 국무회의를 통과, 지금까지 그대로 시행되고 있어서다. 그 결과 이명박ㆍ박근혜정권에서의 내부형 교장공모는 전국적으로 씨가 마르다시피 했다. 정권교체와 함께 김상곤 교육부장관이 취임하면서 그걸 없애겠다는 것이 개선방안이다. 

역시 일반 독자들을 위해 잠깐 부언하면 교장공모제엔 3가지가 있다. 교장자격증 소지자끼리 경합하는 초빙형과 교장자격증 없이도 응모 가능한 내부형, 개방형 교장공모가 그것이다. 2007년 노무현정부때 처음 도입된 교장공모제 근본 취지는 바로 내부형과 개방형을 통한 젊고 유능한 인재 영입이었다. 기존 승진제도의 폐단을 막고, 교장 임용방법의 다양화가 핵심이었다.
도입 당시부터 강력 반발해온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은 "공모제 확대는 착실히 교육ㆍ연구 경험을 쌓아온 수많은 교사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교육감과의 친분 관계에 의해 교장이 될 수 있는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 동안 시행 과정에서 드러난 무자격 교장공모제의 폐단을 고려할 때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런 소식을 접하고 보니 필자는 악몽이 떠오른다. 실제로 그것과 또 다른 교장공모제 폐단을 경험한 바 있어서다. 필자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여기저기 교장공모 학교에 지원했다. 어느 중학교는 내부형, 또 어떤 고등학교는 개방형공모에 지원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애들 말로 쪽팔릴 일에 휘말려든 것이다.
어느 중학교 교장공모제에 지원한 경우다. 교장공모제 실시 학교 교사가 지원하는 바람에 해보나마나한 경합을 벌여야 했다. 교장공모 실시 학교의 교사 지원은 심사위원인 학교운영위원들과 평소 자연스럽게 접촉, 사전선거운동을 하게 독려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학교운영위원이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데, 이미 두터운 교분을 쌓은 해당 학교 교사와 경합한 것이다.
그렇듯 원천적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게임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내부형 교장공모제였다. 내부형 교장공모제 진행과정이 그렇다면 승진에 목매 오로지 예스맨으로서의 길을 걷는 승진제도와 다를게 뭐 있겠는가! 그런 폐해를 줄이거나 없애보고자 도입한 교장공모제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라면 무자격교장 논란과 상관없이 폐기하는 것이 옳다.
다음은 어느 고등학교 개방형공모에 지원한 경우다. 나는 심사위원인 학교운영위원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노골적인 돈 요구를 듣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200만 원씩 5명만 잡으면 된다. 1,000만 원 내면 3배수 안에 들게 해주겠다.”, “돈 안 쓰면 안된다.” 등 실로 귀를 씻어버리고 싶은 얘기들이었다. 나는 당연히 거절했다.
남들이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라고 하는 부부교사인데, 돈이 없어 못쓴 건 아니다. 검은 돈, 신성해야 할 학교를 부패의 온상으로 만들고, 나아가 사회를 혼탁하게 하는 검은 돈이기에 애써 안쓴 것이다. 제자들과 자식 앞에 떳떳한 선생님이고 아빠이기 위하여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친 것이다. 아무리 선거판이 진흙탕이고 사회가 썩었어도 교육계만큼은 그래선 안된다는 것이 교사로서의 소신이기도 했다.
퇴직한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그러나 학교운영위원들의 1차심사(6명중 3명 뽑음)에서 탈락하는 대가(代價)가 뒤따랐다. 청와대 탄원까지 한 끝에 알게된 나의 순위는, 맙소사! 6명중 6위였다. 내 학교경영계획서를 표절한 지원자가 있어 경찰에 고소까지 하는 소동을 겪었는데, 그보다 순위가 낮은 꼴찌라니! 누가 봐도 공정하고 절차상 하자가 없는 심사는 아니었다.
두 건의 사례에서 보듯 무슨 활동경력이나 교육철학, 경영능력 등 실력은 겨룰 짬도 없는 교장공모제임을 알 수 있다. 교장자격증 소지자를 대상으로 한 초빙형도 문제다. 시골의 경우 지원자가 없거나 한 명에 그쳐 기본적으로 재공고에 들어가기 일쑤인 초빙형 교장공모가 행정, 시간낭비는 물론 탈락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까지 안겨 주는 등 실익이 없는 걸로 나타나서다.
교육부 개선안에 “학교심사위원회 및 교육청심사위원회의 위원 명단을 공개하도록 한다”든가 “심사위원 중 학운위 위원은 전체 위원의 50%를 초과할 수 없음”이라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글쎄 필자가 겪은 교장공모제 폐단의  악몽이 완전히 제거될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정권에 따라 바뀌는 교장임용제도의 현실이 참 씁쓰름하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