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군산공장 폐업사태 더는 간과할 수 없어 정치권이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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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군산공장 폐업사태 더는 간과할 수 없어 정치권이 나서야
  • 허성배
  • 승인 2018.02.2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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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논설위원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에 전방위 통상압박을 퍼붓고 있다.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지난달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더니 이번에는 한국산 철강에 53% 고율 관세 부과를 위협하고 나섰다. 그렇잖아도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공공연히 미국에 손실을 안겨준 나쁜 협정이라고 비판하는 가운데 올해 초 한미 FTA 개정 협상이 시작된 상황이다. 한국 반도체에 대해서는 미국의 특허침해 조사가 진행 중이다.
통상압박이 우리 주력 수출품인 철강, 반도체, 자동차를 한꺼번에 겨냥할 태세다. 우리 경제가 지난해 3.1%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은 수출이다. 수출이 15.8% 증가한 덕분에 최저임금 인상, 가계부채, 투자 위축 등 내부 요인을 극복할 수 있었다. 우리 수출의 12%는 미국 시장으로 향한다. 또 중국 시장으로 향하는 수출 24.8%도 미국 보호무역주의 장벽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런 와중에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이후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경영정상화를 위한 지원 방안을 놓고 미국 GM 본사와 우리 정부의 신경전이 계속되고 정치권에서는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사태를 초래한 책임 공방도 뜨겁다. 냉정하게 보면 GM 본사가 해외사업을 구조조정을 하며 생산물량을 대폭 줄인 게 직격탄을 날렸지만 이를 만회하려는 한국GM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두 가지 요인이 맞물려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줄면서 6년 전만 해도 80만대가 넘었던 연간 판매량은 지난해 52만5000대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군산공장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부닥친 근본적 이유는 따로 있다. 세계 각국의 다른 공장과 비교했을 때 생산성이 꼴찌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올리버 와이먼사가 지난해 발표한 `2016년 하버 리포트’에 따르면 세계 148개 공장 중에 군산공장의 생산성은 130위였다. 생산성 지표인 대당 생산시간(HPA)이 59.31시간으로 상위권에 비해 3배에 달했다. 설비가 낡은 탓도 있지만 경직된 노사 관계에 따른 인력 운용의 비효율성도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낮은 생산성이 군산공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대와 기아차도 비슷한 고질병을 앓고 있다. 전 세계 현대차 공장의 생산성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발표된 2014년 하버 리포트를 보면 국내 공장의 HPA는 26.8시간으로 미국의 2배에 육박했다. 편성 효율도 국내는 57.9%에 그쳤고 미국은 92.1%에 달했다. 공장 가용 노동력이 100명이라면 미국은 92명 넘게 일하는 데 비해 국내는 절반 정도의 인력만 작업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정부와 기업이 자초한 것이다.
노조는 매년 파업을 벌이며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했고 경영진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다. 정부도 노조에 유리한 법을 방치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GM 사태는 더는 노동개혁을 미룰 수 없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2009년 폐쇄 위기에 몰렸던 르노의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이 임금 동결과 인력 전환 배치 등 노조의 기득권 포기와 노동 유연화로 부활한 사례를 자동차 업체와 노조, 정부는 곱씹어봐야 한다.
우리 경제가 그야말로 엄중한 도전 앞에 놓여 있는데 19일 청와대의 설명은 참으로 한가롭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8일 방한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해제를 요청한 사실을 설명하면서 “청와대 참모들은 준비하지 않은 내용을 대통령이 직접 챙긴 것”이라고 자화자찬했다. 한국 경제가 맞고 있는 위기에 경제참모들은 넋을 놓고 있었다는 설명이나 다름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상호세(reciprocal tax) 방침을 공개하면서 한국 등을 거론하며 “동맹국도 무역에 대해선 동맹국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철강 고율 관세 부과 대상국에 캐나다·일본·독일 등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은 제외하고 한국을 비롯한 중국·러시아와 함께 고율 관세 부과 대상국으로 분류했다.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과의 엇박자는 경제적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종합적으로 염두에 둬야 한다.
한미 통상전략을 원점에서 재점검해야 할 시점인데 그대로 산업통상자원부와 통상교섭본부에 맡겨둘 일인지는 의문이다. 김현종 본부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지금의 통상교섭본부 조직으로는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준비하기에도 벅차다고 토로했다. 안보와 경제 문제가 나란히 굴러갈 수 있도록 경제부총리가 지휘소로 나서서 대미 통상정책 대응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급한 일이다. 미국의 통상압박은 한국 경제에 그만큼 엄중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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