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정녕 서정시(抒情詩)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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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정녕 서정시(抒情詩) 인가
  • 허성배
  • 승인 2018.03.0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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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논설위원

봄이다. 창문의 커튼을 젖히면 아직도 밝지 않은 새벽길을 힘차게 달리는 트럭과 버스의 헤드라이트가 기다란 빛의 꼬리를 남기며 지나간다. 어디론가 오늘의 목적을 향해 출발하고 있다. 출발은 언제나 기대와 희망을 안겨 준다. 그리고 봄은 그 출발과 함께 온다.
자연의 모든 것이 이 봄과 함께 또다시 새 삶의 출발을 시작한다. 얼었던 강물이 녹아 굽이치고 죽은 듯 땅 속에 그 숨결을 묻었던 풀잎들이 푸른색 생명의 색채를 뿜으며 솟아난다. 새 학기를 맞은 학생들은 학교 갈 채비를 차리고 학교를 갓 나온 신입 사원들도 캠퍼스를 떠나 이제 사회라는 생소한 곳을 향해 출발을 시작할 것이다.

여인들의 하늘거리는 옷자락에서도 쉽게 봄이 온 것을 느낄 수 있지만 봄은 우리 인간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생동의 계절이다. 아직은 꽃샘바람이 차갑다. 그러나 개나리꽃이 곧 필 듯이 머물고 목련(木蓮) 꽃도 솜털의 윤이 나고 있으니 정녕 봄은 온 것 같다. 만약 겨울이 지나도 봄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 생활이 얼마나 절박할까?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고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계절이 서사시(敍事詩)라면 봄은 서정시(抒情詩)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마음은 가을의 정신으로 하되 행동은 봄의 정신으로 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중국의 어떤 문사(文士)는 꽃과 달과 미인이 없으면 이 세상에 태어날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했다지만 꽃피는 봄은 어떻든 우리 인간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희망을 안겨주는 생동의 계절임이 틀림이 없다.
중국의 구양수(歐陽修)는 도롱이 삿갓과 호미를 들고 나가 봄을 줍겠다고 찬미(讚美)했다니 가히 그 계절의 운치를 알만하지 않는가. 봄에는 색채가 만발한다. 나뭇가지에 푸른 물기가 돌고 땅 위에 파란 풀기가 보이고 햇빛이 밝아지고 사람들도 봄의 색깔을 본뜨기 때문이다.
핀란드 격언에 낡은 말뚝도 봄이 오면 푸른 빛이 되기를 원한다지만 우리 속담에 봄 떡은 들어앉은 샌님도 즐겨 먹는다니 식욕 또한 왕성 해지는 계절임이 틀림없다. 흔히 일지 춘심(一枝春心)과 백 년 봄빛(百年春色)을 음미하는 망중한의 시간을 즐긴다면 얼마나 멋이 있는 일이겠는가.
꾀꼬리 노래하고 나비가 춤을 추는 봄날 양지바른 풀밭에 드러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켜고 기상나팔 같은 봄비를 맞으며 한없이 걸어보고 싶은 것은 봄에만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사치일 것이다.
봄은 사랑의 계절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만 봄을 느끼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봄이 와도 봄을 느껴지지 못한다면 리듬 없는 삭막한 인생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만 새면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고물가 시대에 사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소시민들이야 정부의 말뿐인 물가정책의 고달픔에 못 이겨 유유자적(悠悠自適)한 마음으로 계절의 감각을 느낄 수가 없음을 어찌하랴?
지난해 부터 발생한 AI에 이어 구제역 AO형 발생으로 시름에 잠긴 축산농가와 뜻하지 않은 천재지변(지진)과 화재 그리고 조난사고 등 각종 재난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위해 우리는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묘하게도 황이랑 한 겨울보다는 만물이 소생하는 화창한 봄날에 더욱 자살에의 충동을 느낀다니 이 또한 심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맹호연(孟浩然) 은 춘 안 불이 효(春眼不覺曉)라고 봄을 읊었다. 봄에는 밤이 짧아 잠이 곤해서 날이 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생기 돋은 봄철에 비몽사몽(非夢似夢)에 빠져 있대서야 말이 되는가. 봄, 봄이 왔다. 젊은이들에게는 패기를 발산하고 보람을 찾으며 사랑을 구가하는 낭만의 계절이고 연로한 사람에게는 인생을 관조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는 의미 깊은 계절이기도 하다.
호구지책(糊口之策)에 여념이 없는 서민 일지라도 단조로운 생활의 권태로움이나 애환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피어나는 꽃을 보고 푸른 자연을 감상하며 춘광(春光)을 즐기는 그런 춘심(春心)의 여유를 느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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