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스러운 3개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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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러운 3개의 수상
  • 장세진
  • 승인 2018.10.2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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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최근 한 달 사이에 3개의 상을 받았다. 연금수필문학상과 충성대문학상, 그리고 어느 공모전 지도교사상이다. 많은 상을 받았을 때처럼 여전히 그 기쁨은 말할 나위 없지만, 그러나 이번 수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구나 하는 체험을 안겨준다. 누구든 상을 받으면 기쁘고 좋은 것이 인지상정일텐데, 이상하다. 애써 이름 붙이자면 쑥스러운 3개의 수상이라 할까.
연금수필문학상은 공무원연금공단이 퇴직자를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공모전이다. 수필로 정식 등단한 적은 없지만, 엄연한 평론가로서 응모해도 되는지 망설임이 있긴 했다. 그런 제한이 없는 걸 알았고, 응모했다. 퇴직후 갖게된 ‘주는 기쁨’의 감격에 겨워 응모한 것이기도 하다. 은상 수상작 ‘은퇴가 준 뜻밖의 선물’은 604편 응모작중에서 뽑힌 8편 가운데 한 편이다.

“잘 쓰긴 했던데, 프로와 아마추어가 겨룬 것 아냐?”
아내가 공무원연금지에 실린 수상작을 보았다는 지인의 말을 들려줬다. 딱 맞는 지적을 하는 걸로 보아 아마 나에 대해 제법 알고 있는 아내의 지인인 모양이다. 사실 축하한다는 문자나 전화를 문인 여러 명으로부터 받았지만, 그런 지적은 없었다. 이를테면 그런 지적 이전부터 쑥스러워하던 마음에 화룡정점을 찍은 셈이라 할까.
충성대문학상은 육군3사관학교가 시ㆍ수필ㆍ단편소설 3개 분야에 걸쳐 해마다 실시하는 공모전이다. 기성 문인은 ‘본인이 등단한 동일 장르’엔 응모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소설을 보냈다. 수상작은 단편소설 ‘초보 선생’이다. 소설을 써서 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개인적으론 엄청 기쁘고 의미 있는 수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고교시절부터 나의 꿈은 소설가였다. 국문과 진학을 한 것도 그 이유가 가장 컸다. 그 시절 어느 은사가 “창작에 실패하면 평론가가 된다”고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말씀처럼 되었다. 평론가가 되면서 아득히 멀어져간 소설이었다. 문학뿐 아니라 방송ㆍ영화평론가로서 그야말로 눈썹 휘날리는 활동을 해온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퇴직하고나서다. 무엇보다도 무한 시간이 주어졌다. 남아도는 시간을 심심치 않게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소설 쓰기는 나름 가치 있는 일상이다. 응당 다 쓴 소설을 나만 읽어보고 간직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갑속에 든 칼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소설을 내보낸 것이라고 해야 맞다.
하긴 이미 등단한 작가가 같은 장르 공모전에 응모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일례로 장강명 소설가가 생각난다. 그는 2011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에 당선, 등단했는데도 이후 수림문학상ㆍ문학동네작가상ㆍ4ㆍ3평화문학상ㆍ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모두 장편소설로 받은 상이다. 그는 2010년 이후 ‘최단기간 최다 문학상수상’이란 기록 보유자가 되기에 이른다.
그래도 소설가나 수필가로 정식 등단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새 문력(文曆) 35년에 펴낸 책만 자그만치 45권이다. 이 관록에 신인상도 생뚱맞지만, ‘본인이 등단한 동일 장르’가 아닌 부문에 자유롭게 응모할 수 없어서다. 딴은 원고 청탁이 없거나 대중이 알아보지 못하는 등단보다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작품을 쓰는 일상이 더 의미 있는 나날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현직을 떠난지 2년이나 지났는데, 지도교사상이라니! 지도교사상은 쑥스러운 3개의 수상중 하이라이트라 할만하다. 사연인즉 이렇다. 어느 공모전 고교생 응모작품을 지도해준 일이 있는데, 그 학생이 대상을 받게 되었다. 더불어 나에게 고등부 지도교사상을 수여한다는 전화가 왔다. 현직교사가 아닌 점을 들어 완곡히 사양했지만, 방과후학교도 있다는 말에 상을 받고 말았다,
3개의 수상이 쑥스러운 이유는 또 있다. 나는 교원문학회장으로 이미 2회에 걸쳐 교원문학상과 전북고교생문학대전 수상자 수십 명에게 상을 수여했다. 그러니까 이미 연금수필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밝혔듯 상을 주는 입장에서 받게되어 쑥스러운 것이다. 그런데도 아픈 다리로 시상식이 열린 서울까지 올라가 상장과 상금을 받았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뿐이 아니다. 나는 일부러 짬을 내 문학상에 대한 쓴소리를 칼럼으로 꾸준히 써오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아무리 ‘본인이 등단한 동일 장르’인 평론이 아닌 수필과 소설이라 해도 단일 작품을 응모해 상까지 받게 되었으니 쑥스러운 것이다. 그 동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상을 받고도 이렇듯 쑥스러운 느낌이 가시지 않는 건 귀빠지고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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