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38도를 웃돌던 지루한 폭염(暴炎) 속의 뜨거운 여름도 지나가고 이제 들에서는 오곡이 물의 익어 황금 들녁 결실의 계절을 맞아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서늘한 이 생수(生水)처럼 가슴속을 식혀 주는 가을이 다가왔다.

태양이 눈 부셔 쳐다보기조차 뜨거웠던 하늘은 높고 푸르게 개고 부드러운 흰 구름이 유유히 흐르는 천고마비 지절의 이 풍요로운 가을 하늘 아래 우리는 모두 상쾌한 호흡 속에 너그러운 자신을 되찾는다.
가을의 기쁨은 무엇보다도 결실(結實)에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농가의 창고에는 햅쌀과 오곡이 가득하고 울 안의 감나무에는 주렁주렁 열린 감이 빨갛게 익어가는 농촌의 가을. 가난한 마을에도 이 가을 한 철만은 모든 것이 풍성해 더구나 인심 좋은 가을….
도시의 가을 역시 가게마다 슈퍼마다 시장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햇과일과 채소들이 풍요를 말해주는 즐거운 계절이다.
여기에 상월이행(霜月李荇)이 있다. 만래미우 세 장천(晩來微雨洗長天) 하는가 하면 입야고풍 권명연(入夜高風捲瞑烟)하고 몽각효종 한철골(夢覺曉鐘寒徹骨)인데 소아청녀 투선연(素娥靑女鬪嬋娟) 이라.
가을 저물녁 가랑비 내려 긴 하늘 씻어내고. 밤 들자 높이 부는 바람 어둑한 안개 걷어내네. 새벽 종소리에 잠을 깨니 한기(寒氣)가 사무치는데 달빛과 서리가 아름다움을 다투네!
봄에 씨뿌리고 여름에 땀 흘리고 가꾸어 거두어들이는 수확의 기쁨은 땀 흘리고 기다린 사람을 많이 아는 삶의 보람이리라!
결실의 계절 가을 이것은 인생의 계절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씨 뿌리고 땀 흘려 가꾼 나무에는 가을이 오면 반드시 열매가 열린다.
인생의 가을이 되어도 열매가 달리지 않고 꽃이 피지 않는 나무는 땀 흘려 가꾸지 않은 나무다. 남들이 열매를 거두어 들일 때 빈 곳간을 바라보는 허전함 처럼 거두지 못하는 사람 들은 태만 했거나 무능한 사람들 이리라!
흙은 땀흘리는 사람들을 배반(背叛)하지 않고 반드시 결실을 안겨 주듯이 하늘 또한 한평생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을에 틀림없이 축복과 보람을 안겨 준다는 진리를 나는 믿는다.
예술가나 작가는 고뇌하며 잠 못 이루는 밤과 새벽에 창작(創作)을 낳고. 과학자나 학자들 역시 연구실의 피나는 노력으로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탄생시킨다. 남 보기에 쉽사리 성공을 거두는 것 같은 사업가 또한 얼마나 많은 고군분투(孤軍奮鬪)와 남모르는 고뇌(苦惱) 끝에     성공의 열매를 거둘 것인가?
가을의 기쁨은 또한 소망이 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욕망. 하면 될 것 같은 희망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리라는 의욕 들이 모든 것에 가을의 잔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준다.
가을의 뜻은 저 하늘처럼 높고 푸르고 꿈도 구름처럼 풍성(豊盛)하고 다채롭다. 부푼 마음 으로 새로운 삶의 용기를 안고 마라톤 선수가 목적지를 향해 달리듯 우리는 심호흡(深呼吸)을 다시 하고 이 가을의 새로운 출발을 시도해 보리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을의 기쁨은 또한 사색(思索)에 있다. 생각함으로 살아 있는 나를 확인한다. 사색의 광맥을 찾아 나의 가을밤은 길고도 아쉽다.
하루의 삶을 한 해의 삶을 반성하고 생각하며 보다 밝은 내일의 태양을 꿈꾸며 잠드는 가을밤은 밤마다 기쁨이어라. 축복(祝福)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