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투자 외국인 외면하는 이유 기업 옥죄는 상법 같은 규제 때문
상태바
한국 투자 외국인 외면하는 이유 기업 옥죄는 상법 같은 규제 때문
  • 허성배
  • 승인 2018.11.18 15: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성배 주필
지난 9월 미국 금리 인상 이후 글로벌 증시가 동반 하락하고 있다. 10월 하락률로 보면 한국 증시는 주요국 지수중 최악의 수준이다. 외국인이 10월에만 4조 원 이상 돈을 빼 갖는데 11월에도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
미국 금리 12월 추가 금리 인상 예고와 글로벌 무역 분쟁으로 신흥국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가장 큰 타격을 한국이 받고 있다. 주식 투자를 위해 기업을 선택하려면 우선 그 회사의 소유주나 CEO를 분석한다. 회사를 성장시킬 의지가 있는지 돈 벌 능력은 있는지 등은 기본이다. 한국 증시 투자 여부를 저울질하는 외국인은 우리 정부를 어떻게 판단할까. 요즘 외국인들의 거센 매도 공세를 외부 요인으로만 치부하는 건 너무 순진한 시각이 아닌지 걱정이다.
되레 정부는 최근에도 기업 옥죄기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는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 과제들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처리되도록 총력을 기울이자는 다짐이 있었다. 주요 내용으로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재벌 개혁, 대·중소기업 및 노사 간 상생 협력 강화, 소비자 보호 강화, 과세형평 제고 등이 나열됐다. 기업 소유주들의 지배권을 약화하고, 한편으로는 기업이 버는 돈을 최대한 주변과 나누도록 하려는 조치들이다.
이웃 일본의 경우 2012년 말 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중앙은행 총재 교체였다. 이전 민주당 정권에서 선임된 시라카와 마사아키를 성장론자인 구로다 하루히코로 바꿔버렸다. 그것도 전임자의 임기가 채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밀어내다시피 했다.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은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는 아베 총리의 주장에 묻혀버렸다.
구로다 총재는 대규모 양적 완화를 통해 엔고를 엔저로 바꿔놓았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일본 대형 제조업체들은 신이 났다. 세계 시장점유율이 빠르게 올라갔고, 해외에 나가 있던 공장이 국내로 유턴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아베 총리는 매년 새해 첫 골프를 한국의 전경련 격인 게이단렌 회장과 함께하고 있다. 매일 공개되는 그의 일정에는 기업인과의 회동이 수시로 포함된다. 그들을 만나 애로를 듣고 정부 차원에서 요구할 건 당당히 요구했다.
일본 경제와 기업을 짓눌렀던 엔고를 해결해서 실적을 좋게 만들어줬으니 국가를 위해 고용과 투자를 늘려달라고 주문했다.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화답했음은 물론이다. 지금 일본 청년들은 사실상  `100% 취업률’을 즐기고 있다. `기업부터 돈을 벌어야 한다’라는 총리의 국가 운영 방침이 효과를 본 것이다.
아베 총리의 친기업 행보는 지금도 여전하다. 지난달 25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기업인 500여 명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철저히 경제협력이 목적이다. 태국 스마트시티 건설 협력, 제3국 기반기술 개발 공동 참여, 양국 간 통화스와프 재개 등을 논의한다. 50여 건의 양해각서 체결되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은 한일 관계 이상으로 불편한 사이다.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이 생겼을 때는 평범한 일본인이 중국 도심에서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일본 기업의 중국 현지 공장이나 법인은 방화 또는 파괴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미국의 보호주의에 직면한 아베 총리는 국가적 자존심보다는 기업들이 먹고살 거리를 마련해주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기업들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내리는 와중에 우리는 되레 올렸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으로 비용 증가가 불가피하다. 사회적으로는 기업 소유주와 경영자가 단죄의 대상이 된 듯한 분위기까지 형성 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기업과 기업인들의 기를 살려주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못하다.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정식으로 만난 것은 지난해 7월 호프 미팅 한 차례뿐이다. 평양 방문 때 4대 그룹 총수가 동행했지만, 기업 목소리를 듣는 자리는 아니었다. 일부 대기업의 국내외 사업장을 방문하는 형식으로 개별 기업과 회동이 몇 차례 있는 정도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4일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경총은 “대주주 의결권 등을 제한하는 개정안이 현실화할 경우 외국계 투기자본의 공격에 대한 한국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며 신중한 재검토와 경영권 방어 수단의 법제화를 주장했다. 실제로 상법 개정안에는 대주주 전횡을 견제하는 장치는 지나치게 많지만, 경영권 방어책은 빠져 있어 한국이 해외 투기 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은 감사위원을 뽑을 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이고,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이사 선출 때 1주당 뽑을 이사 수만큼 투표권을 부여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그동안 총수 일가가 감사위원이나 이사를 `자기 사람’으로 심어놓고 주주 이익을 외면한 채 영향력을 행사해온 만큼 견제가 필요하다는 정부 입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런 취지와 달리 개정안이 통과되면 오히려 외부 세력의 경영권 공격에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헤지펀드 소버린과 SK 경영권 분쟁 당시 SK 주식 14.99%를 보유한 소버린이 지분을 5개로 쪼개 모든 의결권을 행사하고, SK 최대 주주는 의결권 행사를 3%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비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개입과 현대자동차그룹 구조 개편 개입 등에서 보듯 한국도 글로벌 헤지펀드의 적대적 경영 간섭에서 더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대내외 경제 여건이 악화하고 기업들 실적이 곤두박질치는 마당에 경제민주화라는 명목으로 기업을 옥죄는 상법 개정안을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회는 재계 호소를 새겨듣고 선진국처럼 차등의결권(특정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제도)과 독소조항(적대적 인수·합병 발생 시 기존 주주들에게 회사 신주를 싸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대신 재계도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투명성 강화에 더한층 노력을 가하여 세계 경제 흐름에 예의 주시하고 한국경제 발전에 거듭나야 할 때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