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선거
상태바
막걸리와 선거
  • 이경애
  • 승인 2018.11.21 1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창군선거관리위원회 회계주임 이경애
막걸리 맛이 참 좋은 계절이다. 숨 막혔던 여름을 잘 견디어 냈다고 다독이기라도 하듯 산뜻하고 쾌청한 요즘. 떨어진 낙엽따라 살살 걷다가 근처 아무 식당이나 들러 메밀전병 한 점과 곁들이는 막걸리 한잔의 맛은 설명할 길이 없다.
이렇게 맛있는 막걸리를 동네에서 막 퍼주던 때가 있었다. 선거철이면 동네잔치가 벌어지고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더 따라주는 사람이 당선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당선자 중에 양조장집 아들이 많았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후보자들은 막걸리 한잔으로 표를 팔았고 유권자들은 기꺼이 그 표를 샀다. 민주주의가 갓 도입된 시기였다. 투표로 우리들의 대표를 뽑는다는 개념 자체가 낯선 시대였다. 그 때문에 돈 선거를 뜻하는 ‘막걸리 선거’라는 말이 생겨났다.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이 막걸리를 선거인에게 제공하는 경우 선거법에서는 기부행위라고 부른다. 공직선거법은 어쩌면 가혹하리만큼 기부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선거구 안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선거구 밖에 있더라도 선거구민과 연고가 있는 단체에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다. 더 나아가 이익제공의 의사표시 또는 그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까지 모두 기부행위에 해당한다. 비단 기부행위를 하는 주체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기부를 받아서도 안되며 지시, 권유, 알선, 요구해서도 안된다. 선거법에서 이를 중하게 처벌하는 처벌조항을 두어 그 죄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기부행위가 난무하던 과거 선거역사의 아픈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조항이라 하겠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우리는 수십번의 선거를 치렀다.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체득하며 더 이상 막걸리를 사주는 사람이 우리의 대표가 될 수 없음을 아프게 배워가고 있다. 돈이 없어서 막걸리는 못 사줘도 진정으로 유권자를 위하는 후보자가 곳곳에 있음을 믿는다. 돈이 많아도 정책으로 승부하는 후보자 또한 우리 곁에 있음을 믿는다. 무엇보다 기부행위 없는 정정당당한 선거문화를 만들고, 깨끗한 후보자를 만들어내는 유권자의 힘을 믿는다.
스치는 겨울바람에 작은 바람 빌어본다. ‘막걸리 선거’가 옛이야기가 되었듯 선거철 기부행위 또한 옛이야기로 남아주기 바라며, 내년 우리동네에서 치러지는 동시조합장선거에서 정정당당한 후보자가 우리의 대표가 되는 아름다운 선거문화가 따사로운 햇살처럼 스며들기를.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