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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이 낳은 작가, 한국 화단의 거장이 되다
한국 구성 회화의 새로운 전형 창조 신구상 부문 국내외 독보적 존재로
2018년 12월 05일 (수) 18:37:21 허정찬 기자 cldn27@daum.net

   
울림 최예태
“회화는 어떤 경우라도 말로서는 유효하지 않다. 고로 예술가는 가장 훌륭한 영감의 촉진제요. 불타오르는 창작의 점화제다.”(최예태)
지난달 28일 서울 인사동 인사 아트겔러리에서 한국 미술계의 유수의 거장 작가들과 수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현대미술가협회 KAMA 2018&최예태 그 예술의 발자취 출판기념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고장의 역사인물’로 선정, 군산시 후원으로 출간된 ‘최예태 그 예술의 발자취’ 출판기념회를 계기로 최예태 화백의 발자취를 돌아 보았다.
 
 

 

▲한국 구성 회화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낸 독보적 존재
화단에 등단해 60년 한길만 걸어온 최화백은 한국 구성회화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내 한국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신구상부분의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런 그가 자랑스럽게도 우리 전북(군산) 출신이다.
 
   
 
▲군산 ‘비둘기 다방’에서 ‘붉은 산의 판타지’로 향한 첫 날개 짓
전쟁의 포화로 나라 전체가 폐허가 된 50년대에 화가의 꿈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키어온 고등학교(군산고) 3학년 최예태는 1958년 4월, 첫 개인전을 군산 ‘비둘기 다방’에서 열었다. 당시에는 극히 이례적였던 고등학생의 개인전은 발 디딜 틈 없는 성황을 이루며, ‘붉은 산의 판타지’로 향한 첫 날개를 펼치게 됐다. 
“예술이란 열심히 작업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지적 고양과 뜨거운 열정에 의해 도달하게 되는 은총과 섭리의 경지라고 사료된다.(최예태)”
미술 명문 홍익대에 입학 했지만 급작스레 기운 가정형편으로 대학을 휴학하고 군대를 다녀온 그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길거리 노점, 미술용품상, 시계상 등 혹독한 고난과 좌절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 고난의 터널 속에서 그의 작가 인생중 가장 소중한 동반자인 송옥숙 여사를 만나게 되며 그의 헌신적인 내조 속에서 고난과 좌절의 아픔을 작가의 영혼이 묻어나는 그림으로 승화시켜낸다.
 
   
 
▲성공과 부를 버리고 만난 알래스카 ‘붉은 산’
“산은 조물주가 만든 가장 훌륭한 조형물이며 흥미로운 것은 인체에서도 그러한 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최예태)”
1988년 그는 한국에서의 성취와 부를 버리고 캐나다로 이주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이 시절 알래스카 여행 중 태양에 불타오르는 산을 보면서 강렬한 영감을 받게 된다.드디어 ‘붉은 산’이 최화백과 조우하게 되며 ‘알레스카의 산’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것이다.
불세출의 ‘붉은 산의 판타지’ 시리즈는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그의 작품세계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며, 이후 ‘붉은 산’은 한국 고유의 정서, 동양 고유의 가치가 가미되며 기존의 구성 회화로는 표현되기 힘든 부분까지 표현된 최예태 만의 독특한 구성회화의 새로운 전형이 만들어진다.
 
▲색과 선의 60년, 명화가 돼버린 삶!
“달을 얻으려 할 땐 그것을 등져야 하듯 명화를 그린다는 의식 자체를 버려야 한다. 모든 것을 얻으려 할 땐 그것 자체를 버리는 일과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심혈을 기울여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최예태)”
이후 국내에 귀국해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이며, 예술의 순수성을 버리지 않는 작가로서의 삶을 그만의 색과 선으로 한점 한점 메워나간다.
그런 그에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모여 2008년 ‘울림회’를 만들고 ‘최예태 회화 50주년 기념식’에서 최화백의 도록(500페이지 분량)을 헌정하는 감동을 선사한다.
이어 2010년 그의 주도 아래 그를 따르던 25명의 작가들이 모여 한국현대미술가협회(Korea Association of Modern Artist 이하 KAMA)를 만들어 순수한 작품 활동으로 최화백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2015년에는 성신여자대학교 운정그린캠퍼스 ‘최예태 미술관’이 설립돼
그에 정신과 작품이 한국 미술사의 거대한 기둥으로 자리하게 됐다.
시대와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예술가는 훌륭한 작품과 더불어 도덕적 책무를 요구받는다. 그러나 작품과 인품을 인정받는 예술가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작품성과 그 예술 정신 그리고 인품을 이 사회로부터, 또 같은 예술인들로부터 존경을 이 끌어내며 한 길 인생 82년의 삶을 명화로 탄생시켰다.
“그림을 그릴 때는 큰 짐승을 잡기 위해 숨을 죽이 듯이 예술의 존엄성과 끊임없는 고독 외로움과 싸워야 한다.(최예태)”


   
 
뛰어난 예술인들은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우월한 존재라 생각 하지만 최예태 화백의 삶을 들여다보면, 진정한 예술가들이란 뭔가 의구심이 가는 것들을 계속 쫓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낙오자가 되기도 하고, 또는 철학자가, 때론 정의에 투사가, 심지어는 의술을 공부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 마디로 평생을 온몸으로 치열하게 그 무엇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일견 사람들은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그 재능을 세상에 마음껏 펼치고 인정받은 예술인들을 축복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그런 사람과 동시대에 살며 호흡을 같이하며 그의 재능을 통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축복이 아닐까.
어찌 보면 우리는 그 축복에 목말라하면서도 이리 가까이 있던 ‘최예태’라는 축복을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
“이제 겨우 그림이 보이는 것 같아요. 지금부터 참다운 내 모습을 그려야겠습니다.(최예태)”
그림은 문장이기도 하고 때론 웅변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크게 소리치기보다는 조용히 속삭이듯이 우리들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귀 기울여 축복을 느껴봐야겠다.
그의 내밀한 이야기에...


최예태 : 1937년생으로 1958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입학, 조선대학교 대학원 서양화 전공, 알공퀸 칼레이지 수채화전공(캐나다), 케백 유니버시티 조형미술(캐나다)을 전공했으며, 중앙대·원광대·예원예술대 대학원 강의, 2015 성신여자대학교 최예태 미술관 설립, 국전 추천작가 및 초대작가,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 및 운영위원장, 2007 마니프 한국 구상대전 조직위원장, 2011 SAAF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


“최예태 화백만큼 한국인의 정신과 자연의 조화를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화가는 매우 드물다. 내가 여기서 환희, 매혹, 그리고 경탄감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최예태 화백의 구상 작품들 속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Roser Bouilot 프랑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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