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SBS TV 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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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SBS TV 시네마’
  • 장세진
  • 승인 2018.12.1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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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로 알려진 윤심덕과 희곡작가 김우진의 사랑과 정사(情死)를 그린 영화 ‘사의 찬미’가 상영된 것은 1991년 9월이다. 김호선 감독이 연출한 ‘사의 찬미’는 ‘수잔브링크의 아리랑’ㆍ‘개벽’과 함께 추석 특선영화로 개봉되었다. 장미희와 임성민(1995년 별세)이 윤심덕과 김우진을 각각 연기했다. 이 영화로 장미희는 제37회아시아태평양영화제 여우주연상, 임성민은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필자의 첫 영화평론집 ‘우리영화 좀 봅시다’(실록출판사, 1992)를 살짝 들춰보면 “일부 지방도시에서는 아예 한 편도 개봉되지 못했지만, 장내에 꽉찬 관객과 함께 본 ‘수잔브링크의 아리랑’ㆍ‘개벽’ㆍ‘사의 찬미’ 들은 지금까지 우리의 절망감이 너무 성급했음을 환기시켜 준다”고 적고 있다. 미국영화 공세 속에서도 한국영화들이 선전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의 찬미’에 대해선 “슬픈 사랑 이야기라는 대중의 관람 취향을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지만, 그것이 관객들을 화면에 끌어들이는 요인은 될망정 감동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영화치고는 이례적으로 긴 상영시간(2시간 30분)인데다가 추석 명절 분위기와 동떨어진 슬픈 사랑 이야기라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는 아쉬움도 들어있다.
그 ‘사의 찬미’가 ‘SBS TV 시네마’란 이름으로 돌아왔다. 먼저 지난 달 27일과 3, 4일 밤에 방송된 ‘사의 찬미’는 SBS가 오랜만에 선보인 단막극이다. 필자 기억이 맞다면 2015년 추석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에 이어 2016년 설 명절 특집드라마 ‘영주’를 방송한지 2년 10개월 만이다. 명절 특집극말고 ‘KBS드라마스페셜’만이 단막극 명맥을 잇고 있어 일단 유의미한 ‘사의 찬미’ 방송이라 할만하다.
 ‘SBS TV 시네마-사의 찬미’가 반가운 이유이기도 하다. 드라마 ‘사의 찬미’에선 신혜선과 이종석이 윤심덕과 김우진을 각각 연기하고 있다. 시청률도 최고 7.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찍는 등 높은 편이다. 6회(옛 3회) 평균 시청률은 6.0%로 나타났다. 단순 비교는 좀 그렇지만, 최고 시청률 3.8%에 머물렀던 ‘KBS드라마스페셜’에 비해 월등히 높다.
우선 눈에 띄는 건 여주인공 역의 신혜선 발탁이다.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서 이미 말했듯 KBS ‘황금빛 내 인생’으로 스타덤에 오른 신혜선이 유지인ㆍ정윤희와 함께 1970~8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던 장미희와 동급의 여배우로 거듭난 셈이다. 이종석은 노개런티로 출연해 또 다른 화제를 모은 바 있다.
1926년 배에서 바다로 투신한 정사(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는 것)를 암시한 장면으로 시작한 ‘사의 찬미’는 이내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5세 동갑인 심덕과 우진의 첫 만남과 유부남인 걸 알고 헤어졌다 5년후 이루어진 재회, 그리고 동반 자살 등이 리얼하게 펼쳐진다. 디테일 묘사를 잘 살려서인지 시큰하고 먹먹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라가 그 모양인데, 나라도 잘 살아야죠”라며 우진과 각을 세웠던 심덕에게 조선총독부 촉탁가수 제의가 죽음의 한 이유로 작용하는데선 뭐랄까 장엄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죽음엔 그런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진이 유부남인데다가 동생들 학비 등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했던 현실적 중압감이 이른바 신여성 윤심덕을 앞지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 재현의 경성 거리 및 한문 간판들, 기차나 전차 속 모습, 귀에 대고 통화하는 공중전화기, 세로 편지지에 만년필로 글쓰기 등 미장센도 나무랄데 없다. 신혜선의 모자 쓰고 망토를 두른 패션까지 얼마 전 인기리에 방송된 ‘미스터 션샤인’ 못지 않다. 아니 단막극이기에 그 공들임은 400억 대작 ‘미스터 션샤인’과의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듯하다.
다만, 결말의 정사를 위한 복선은 될지 몰라도 너무 극적인 장면들이 좀 아쉽다. 가령 공연하다말고 무대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간 우진을 뒤쫓아가는 심덕이 그렇다. “떨리고 가버릴까봐 뛰쳐나왔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공인(公人)이 취할 행동은 아니다. 목포역에서 심덕과 우진이 얼싸안는 장면도 그렇다. 우진의 텃밭인데, 남의 이목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그런 모습은 리얼하지 않다.
그보다 더 아쉬운 건 주인공들이 결행한 서른 살의 요절이다. 일제침략기라는 시대의 불륜적 상황이나 가장 노릇의 현실적 압박감(윤심덕), 아버지의 문학에 대한 몰이해(김우진) 등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이해하더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중요한 사실은 값진 죽음보다 사는 가치가 우선이라서다.
윤심덕ㆍ김우진이 각각 음악과 문학을 하는 예술가들이기에 드는 아쉬움이기도 하다. 그들이 더 오래 살며 각자 영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더라면 대한민국의 문화예술계는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워지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이 남는다. 내용상 잔금이라 해야 맞는데, “녹음 끝나면 계약금 받을거고”라 말하는 오류는 또 다른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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