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기 거역스러운 ‘죽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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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기 거역스러운 ‘죽어도 좋아’
  • 장세진
  • 승인 2018.12.2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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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일반 시청자들처럼 드라마를 보다가 중도하차한 것은 30부작 MBC 월화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2017.1.30.~5.16)이다. 나는 20회까지 보고 강한 시청 중단 유혹에 시달렸다. 벌써 끝났나 하는 아쉬움이 들어야 맞는데, 언제나 끝나지 하는 생각이 불쑥 솟구쳐 올라서다. 그런 충동이 사실은 8회쯤에서 이미 하늘을 찔렀다.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거의 없었던 일이다. ‘거의’라고 말한 것은 한두 번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SBS ‘대박’(2016.3.28.~5.16)이 그랬다. 24부작 ‘대박’을 딱 3분지 1인 8회까지만 보고 미련없이 버렸다. 다름 아닌 더 봐주기 힘든 역사 비틀기의 이른바 퓨전사극이었던 것이다.
대개 그런 퓨전사극은 아예 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거역스러운 역사 비틀기를 보며 시간 낭비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라 할까. 너무 심하게 비틀어대고 짓이겨댄 윤색의 퓨전사극은 정통 대하사극에 익숙해진 탓인지 모르겠으나 보기에 너무 거역스럽다. 그야말로 안보면 그만이지만, 전파낭비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퓨전사극이 아닌 현대물인데도 그런 드라마를 올해도 만났다. ‘악덕상사 갱생프로젝트’를 표방한 KBS 2TV의 수목드라마 ‘죽어도 좋아’가 그것이다. ‘죽어도 좋아’를 본 것은 ‘오늘의 탐정’ 후속작이어서다. 다른 방송사 같은 시간대 드라마들이 제법 인기를 끈다해도 중간부터 볼 수 없어 그냥 ‘죽어도 좋아’ 보기로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1월 21일 마침 MBC와 SBS가 각각 ‘붉은 달 푸른 해’, ‘황후의 품격’을 새로 선보여 다른 드라마 보기로 돌아섰다. 아무리 시청률 낮은 드라마라해도 보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시청하는 원칙을 위에서 말한 퓨전사극들처럼 깬 것이다. 채널을 돌리고 싶어도 꾹 참고 보는 것은 말할 나위 없이 글을 위해서다. 종영후 쓰는 관례를 깨고 8회(옛 4회)만 보고 쓰는 이유다.
11월 7일 ‘오늘의 탐정’ 후속으로 시작한 ‘죽어도 좋아’는 방송 첫날 4.0%의 시청률을 찍으며 여느 평일 드라마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후 12회까지 3%대 다섯 번, 2%대 다섯 번으로 시청률이 하락했다. 처음 호기심이라든가 궁금증을 가진 시청자들이 대거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가능한 시청률 추이라 할 수 있다.
MW푸드 마케팅팀의 이루다(백진희) 대리가 백진상(강지환) 팀장을 죽이는 꿈 장면으로 시작한 ‘죽어도 좋아’는 얼핏 보면 2017년 1~3월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김과장’을 연상시킨다. 일단 회사내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전반적 코믹모드라는 점이 그렇다. 이른바 사이다 재미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죽어도 좋아’는 뭔가 억지스럽다.
퓨전사극에서 보던 역사 비틀기가 아닌데도 도저히 더 봐주기 힘든 거역스러움이다. 타임루프(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이 동일한 기간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SF의 하위 장르임.)의 전개방식이 관심을 끌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코미디와 섞여서 그런지 장난같기만 하다. 오히려 낯설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가장 큰 아쉬움은 왜 사회적으로 심각한 회사 횡포와 상사 갑질 문제를 장난거리 삼느냐 하는 점이다. 오피스 드라마로서의 좋은 아이템을 진지하고 리얼하게 다루지 않고 코믹모드로 끌고가 진정성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한 접근 방식이다. 설사 그게 아니라하더라도 진지함이 희석되거나 그냥 웃기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이른바 ‘의도의 오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코믹모드와 별도로 공감이 안되거나 설득력 없는 장면들도 아쉽다. 가령 4회에서 자신을 합격시킨 면접관들에게 “쓰레기 치우는 걸 왜 도와주지 않냐”고 대거리하는 이루다가 그렇다. 잘릴 것에 대비해 다른 회사 면접시험을 보고 합격한 이루다이지 않은가? 따라서 이루다 언행은 자신에게 닥친 사태의 심각성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황당함일 뿐이다.
5회에서 이루다가 끈으로 묶여있는 A4 상자를 번쩍 들어 백진상 머리를 내려치는 것도 웃긴다.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속이 찬 A4 상자는 건장한 성인 남성도 두 손으로 들어야할 만큼 무겁다. 그걸 들어올려 서있는 백진상 머리를 내려치니 왜 안그렇겠는가. 1회부터 ‘깨끄치’(깨끗이→깨끄시)로 잘못 발음하는 백진상은 또 어떻게 봐야할지 이래저래 문제가 심각한 ‘죽어도 좋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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