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캐슬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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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캐슬에선
  • 정은애
  • 승인 2019.02.1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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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 119안전센터장 정은애

최근 2~3개월동안 주말에 사람들을 TV앞에 앉아 본방 사수하게 만든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SKY캐슬”이라는 드라마 인데 왕국의 성(캐슬)같은 고급주택에 살며 자녀의 최고 학벌을 위해 모든 금전적 지원은 물론 영혼까지 팔 자세가 되어 있는 여러 부모들의 사례를 그려보여서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던 드라마이다.
특히 이 세상은 피라미드로 되어있어 밑바닥에 있으면 짓눌리고 정상에 있으면 누린다는 신념으로 집 거실 중앙에 커다란 피라미드를 들여 놓고 자식들이 그 꼭대기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모를 보며 자식들이 경쟁사회에서 밀리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마음과 한편으로 저렇게 까지 하는게 과연 자식을 위하는 길일까 하는 의구심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은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TV를 보는 소방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어떤 소방시설이 있을까 하는게 제일 궁금했다. 소방관련 법상 사적 공간인 개인주택은 아파트등 공동주택을 제외 하고는 규모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법적으로 스프링클러나 자동화재탐지설비등 소방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없다.(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는 설치 의무 있음) 그렇다면 그런 고급주택에는 소방시설이 없을까? 에*원이나 캡*등이 있어서 방범뿐 아니라 화재 발생의 경우에도 경보시스템이 있다고 하는데 만약 화재가 발생한다면 그렇게 큰 규모의 집에서 조기에 각지하여 신속하게 외부로 대피 할 수 있을까? 나아가 본인 집의 불을 꺼서 옆집으로 번지는 걸 막을 수 있을지....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이 크다. 자료를 보면 가정에서 화재가 났을 때 늘 익숙하던 본인의 집인데도 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고 당황하여 안방에서 거실을 가로질러 대문까지 대피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의외로 사람의 뇌는 비상상황에서 바로 반응하지 않는다. 2005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의 생존자 900명 가량을 인터뷰한 미美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존자들은 계단으로 달려가기까지 평균적으로 6분을 기다렸고 어떤 사람은 계단 앞까지 가는데 45분이나 소비했다고 한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가족들과 통화를 여러번 하느라고 지체하기도 했으며 컴퓨터를 끄는데 시간을 지체하기도 했다. 왜 지체할까? 사람들은 화재는 남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고 보통은 만사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거의 언제나 그래왔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경향을 “일상성의 편견(normalcy bias)라고 한다. 인간의 뇌는 패턴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과거의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의 상황에 잘 들어맞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외적인 상황에서도 이 상황을 ”거부“하며 익숙한 패턴을 찾기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고 이는 곧 위험을 맞닥뜨리게 한다. 다행히 이 ”거부“의 단계를 빨리 지나 이 위기상황에서 무언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숙고“를 거쳐 결정적 순간에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본인과 주변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 영웅인데 릭 레스콜라가 바로 그 사람이다. 릭 레스콜라는 911 테러시 세계무역센터건물 73층에 위치한 모건스탠리라는 세계적인 금융회사의 안전관리자 였는데 직원과 내방객등 2687명의 사람을 모두 구하고 자신을 포함한 안전관리요원들 13명이 마지막까지 인명검색을 하다가 붕괴되는 건물과 함께 순직한 인물이다. 평소에 재난에 관해 ‘설마?”하며 안이했던 임직원을 설득하여 1년에 4차례씩 소방훈련을 하였다. 글로벌 투자은행에서 1분 1초는 수백만 달러가 오가는 상황이라 직원들과 내방한 세계적인 금융자산가들의 반발이 거셌으나 반복 훈련을 해야만 재난이 발생했을 때 겪는 머릿속 혼란과 망설임, 행동의 지연 등을 막아준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 결과 8년 후 3000여명의 사망자가 생긴  911 테러때 모건스탠리의 직원들은 모두 평소 숙지한 대피통로와 비상시의 매뉴얼대로 일사불란하게 행동을 할 수 있었고 자신의 책임하에 있었던 모든 사람을 살릴수 있었던 것이다. 소방훈련이나 교육을 위해 방문하면 어떤 사람들은 작년에 했던 소방훈련을 왜 또 해야 하냐며 불편해 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지켜본 소방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은 그렇게 해야만, 그 방법이라야만 어떠한 재난이 닥치더라도 본인과 주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 뿐이다.

이제 재난은 화재·테러뿐 아니라 기후, 통신, 환경오염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위험상황에서 모든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응용력과 복합상황판단능력을 키우는 방법은 평소에 적절한 사전 소방훈련을 통해 머릿속 혼란을 빨리 정리하고 몸으로 행동 하는걸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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