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원전기술 한국, 탈원전 탓에 중·러에 시장 뺏길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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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원전기술 한국, 탈원전 탓에 중·러에 시장 뺏길 위기
  • 허성배
  • 승인 2019.03.0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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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최근 10년간 매년 연평균 3조5,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 던 한국전력이 지난해 2,000억 원 이상 적자를 냈다. 2012년 8,179억 원의 적자를 낸지 6년 만이다. 이를 두고 ‘탈원전 정책’ 비판의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전기료 인상 우려도 퍼지고 있다.
한전은 이례적으로 적자가 탈원전 정책 탓만은 아니라는 해명과 함께, 적자 보전을 위한 전기료 인상은 않겠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적자는 결국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현실적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한전 공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 손실이 2080억 원에 달했다. 2017년 영업이익 4조9,232억 원에 비하면 실적이 5조1,612억 원 줄어든 셈이다.
영업손실의 가장 큰 원인은 전력구매비 상승이다. 한전은 발전사가 만든 전기를 사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데, 전기료가 고정된 상태에서 발전 자회사 연료비 부담(3조6,000억 원)과 민간발전사 전력 구매비(4조 원) 증가분 7조6,000억 원이 비용 증가분이 되어 실적을 악화시킨 것이다.
전력구매비 급등은 정비 등을 위해 가동 중지된 원전이 늘어나면서 통상 80% 이상을 유지했던 원전 이용률이 65.9%까지 떨어진 게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원전의 빈자리를 연료비가 비싼 다른 발전을 통해 조달해야 했는데, 지난해 액화천연가스(LNG)가 전년 대비 16%, 두바이유와 유연탄 가격도 각각 30%, 21% 오른 게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이번 적자가 탈원전 정책 탓만은 아니라는 한전 주장은 원전 이용률 하락이 탈원전 때문이 아닌, 정상적 정비에 따른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원전이용률 하락이 곧바로 실적 악화로 이어진 현실이다. 아울러 에너지 전환정책에 따른 신재생 의무공급제도(RPS)나 원전 안전 강화 추세 등에 따른 비용 상승 부담으로 올해는 영업손실액이 2조4,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한전 자체 전망도 걱정이다. 정부와 한전은 전력 낭비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지만, 전력은 그 자체로 산업 인프라라는 점에서 풍부하고 값싼 공급도 환경론 못지않게 중요하다. 에너지 전환정책도 좋지만, ‘경제적 에너지 공급책’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크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는 2030년까지 2.8GW 규모 원전 2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총사업 규모가 200조 원에 이르는 이 사업 수주를 위해 한국과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5개국이 뛰고 있다. 영국과 체코 등에서도 원전 수주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어디에서도 한국 수주를 낙관하거나 한발 앞서 있다는 분석은 들리지 않는다.
2월 12일(현지 시간) 미국 최대 원전 운영사인 엑슬론 등 원전 관련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미국 원전 수출 지원을 요청했다. 한 참석자는 “러시아와 중국의 원전 수출 경쟁력이 크게 향상됐다”며 “미국이 해외 원전 프로그램에서 밀려나면 전략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라고 말한 것으로 현지 언론이 전했다. 이들의 염려에는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한국 원전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군사 전략적 의미가 있는 원전 기술에서 우방국 대신 적성국이 앞서 나가는 것을 미국은 경계한다.
한국 표준형 원전 개발의 주역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지난달 26일 한미기업인 친선포럼에서 “한국이 탈원전으로 주춤하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가 국가 차원에서 원전 판매에 나서고 있다. 이대로라면 세계 원 전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설상가상 원전 전문 인력의 해외 이탈로 심각한 가운데 수출 또한 석 달째 뚝 떨어져 반도체 수출도 25%나 둔화하는 등 전반적인 국내수출 실적이 작년 동기보다 11.7%나 감소한 395억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산업통상자원부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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