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동결’ 결단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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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최저임금 동결’ 결단 필요하다
  • 허성배
  • 승인 2019.04.1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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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소득 주도론자도 홍 부총리도  최저임금 과속 최저임금 위 탓에  애꿎은 소비자까지 피해 막심 경제학자 41%가 내년 동결 지지 OECD에서 이미 상위 3위 수준 1만 원 공약 철회가 해결 출발점 “최저임금위원회에서 2018년 인상률이 16.4%로 나왔을 때 우리(청와대) 정책실에서는 걱정이 정말 많았다.
시장에선 13∼14%를 생각했거든요.”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지난달 ‘중앙 모일간지와 인터뷰에서 한 회고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비슷한 얘기 끝에 “나도 깜짝 놀랐다”고 한 적이 있다. 참 해괴한 논리다. 최저임금 과속을 불러온 몸통이 문재인 정부의 ‘2020년까지 1만 원’ 공약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두 사람은 기획자이자 집행자였다.
2017년 최저임금이 6470원이었으니 3년 후 1만 원이 되려면 매년 15.7%씩은 올려야 한다는 셈식도 진작 나와 있던 터다. 득의의 결과가 나왔는데 놀라고 걱정했다? 유체이탈 화법도 이 정도면 할 말을 잊게 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처신도 못지않다. 취임 전부터 최저임금 속도 조절론을 펴 기대감을 높이더니 정작 꺼낸 비장의 카드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이다. 전문가들이 조정 범위를 정한 뒤 인상률을 확정하는 이원화 방식이다. 태풍으로 나무가 뽑힐 지경인데, 곁가지를 만지는 격이다.
‘기업의 지급 능력’을 산정 기준에 넣는다고 했다가 그마저도 번복했다. 홍 부총리 발상의 기저엔 최저임금 조정은 정부와 무관한 최임위 소관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다. 정부 입맛에 맞게 고른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 인상률을 좌지우지했다는 게 사안의 본질이고, 새로운 방식에서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
문재인 정부는 임금을 올려 가처분소득이 늘면 소비가 증가하고 생산·투자도 확대되는 선순환 구도를 짰다. 최저임금은 그런 소득주도 성장의 선봉이었다. 그러나 16.4% 오른 지난해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한 자영업자들이 폐업·감원에 나서면서 2월부터 고용 참사가 시작됐고, 특히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은 하위 20% 가구는 소득이 외려 감소했다. 기대했던 선순환은커녕 악순환 결과를 만든 주범이 최저임금 과속이다.
소득 주도론자들은 ‘일자리 감소 = 최저임금’ 구도에 펄쩍 뛰지만, 지난달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선 2018년 최저임금으로 줄어든 일자리가 21만 개라는 실증분석이 나왔다. 무디스도 IMF도 공개적으로 한국 최저임금 속도와 고용 위축을 걱정하는 판이다. 중소기업· 소상공인· 취약 근로자뿐 아니라 소비자도 최저임금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인건비가 오르면서 외식 가격이 다락같이 올랐고, 서빙·배달 등 음식점 서비스 질도 떨어졌다.
편의점 등 소매점 영업시간은 단축 추세다. 햄버거· 가락국수를 사 먹으려 해도 자동주문기 앞에서 끙끙대야 한다. 정책 실패를 감추려는 카드 수수료 인하 여파로 소비자가 누리던 할인·적립 서비스도 축소됐다. 일자리안정 자금·공공 일자리·근로장려금·기초연금 등 서민 달래기에 더 들어가는 돈은 결국 국민 부담이다. 문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은 한국경제를 비정상의 괴물로 만들고 있다. 과속열차를 멈춰야 한다.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업종·지역 등에 따라 달리 적용해 사업·취업 숨통을 터주는 것이다. 일본을 비롯해 많은 나라가 도입했다. 둘째, 영세 사업자를 범법자로 내모는 주휴수당 폐지를 검토할 때가 됐다. 주휴수당을 포함한 최저임금은 올해 1만 원을 넘었다. 외국에도 거의 유례가 없다. 두 가지 모두 논란이 적잖아 시일이 필 요한다. 마지막으로,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2년 새 29%나 올랐다. 한국경제학회 설문 조사에서 경제학자 80명 중 33명(41.3%)이 동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정책 수요자가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본 것이다. OECD 회원국 중 소득을 고려한 한국 최저임금은 3위다.
올해 중위임금의 60%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2005년 이 비율이 60%를 넘어서자 최저임금 인상을 사실상 중단했다. 미국은 연방 최저임금을 7.5달러로 올린 지 10년 만에 의회에서 인상을 논의 중이다. 문 대통령은 2월 14일 자영업·소상공인과의 대화에서 “최저임금 동결” 요청에 “길게 보면 결국 인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고 답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소상공인 단체는 물론, 야당도 최저임금 동결·유예를 주문하고 있다. 1년만 숨을 고르고 길게 가자는 것이다. 사태의 근원인 ‘1만 원’ 공약을 공식 철회하고, 동결 불가피성을 국민에게 호소하면 될 일이다. 진퇴유곡에 빠진 ‘문재인 경제’의 출구(出口)전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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