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배 주필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을 맡긴 지 3년차가 되었다.
민주 정치에서 국민과 대통령 관계는 주인과 대리인 관계다. 주인은 대리인이 주인의 분신처럼 정직하고 솜씨 좋게 일을 처리해주기를 기대한다. ‘정직성’은 대리인의 생각과 이익이 주인과 충돌했을 때 주인 뜻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솜씨 좋게’는 맡긴 재산을 늘리지 못할망정 축내지는 말라는 것이다.
북한 어선 삼척항 정박 사건에는 청와대·국방부·합참·해군이 합동 출연했다. 시시각각 설명이 달라졌다. 그 와중에 국방일보는 ‘남북 평화 지키는 것은 군사력 아닌 대화’라는 제목으로 대통령 스웨덴 연설을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와 ‘정신 나간 국방일보’가 무관하다고 누가 믿겠는가.
대리인이 정확한 위치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니 ‘여기가 어딘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알 길이 없다. 대통령의 북유럽 방문 중 미·중 충돌은 격화됐다. 포탄과 총알이 오가지 않을 뿐 북한·대만·남중국해·티베트 문제 등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 시진핑은 평양으로, 트럼프는 오사카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南船北馬)이다. 하체는 중국에 인질로 붙들리고 상체는 미국에 끌려가는 나라 형세다. 송곳니와 발톱을 드러낸 두 마리 사자 등 위에서 한국은 취침 중이다.
전두환은 일본 방위 한국의 방파제 역할론으로 60억 달러 경제 협력을 끌어냈고, 노태우는 천황에게서 ‘통석(痛惜)의 염이란 최고 수준의 역사 사과를 들었고, 김대중은 ‘새 한국의 품격 있는 지도자’란 찬사를 받았다. 박근혜의 종군위안부 합의를 매국 행위로 규탄했던 이 정권은 강제징용자 문제를 섣불리 다루다 제 발로 지뢰를 밟아 아베의 무역 보복으로 전자 산업은 물론 자동차부품 수출동결로 외화 수출기업 전체가 초비상사태로 국가 존망을 가르는 경제외교야말로 북핵 문제보다 더욱 중차대하다는 사실을 이번 왜구의 악행을 계기로 문 정부는 크게 자성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운전한다던 ‘북한 핵 폐기’는 명패부터 ‘한반도 비핵화’로 바꿨다. 김정은이 주장하고, 시진핑이 받쳐주고, 현 정권이 내심 동조하는 비핵화와 제재 해제의 ‘단계적 동시적’ 이행 방안이 현실화되면 한국은 수십 년간 북한 핵폭탄을 머리에 이고 살게 된다. 미국 내 한반도 문제 논의에는 주한미군 감축과 철수 언급이 빠질 때가 없다. 초점은 이제 ‘시기’와 ‘규모’로 옮아갔다. 트럼프가 재선돼도 새 대통령이 등장해도 한번 방향을 튼 미국 추세는 변하지 않으리라고 한다. 중국 대양 해군이 남쪽이라도 바다에 출현하고, 독도 해상에 일본 자위대 항공모함이 등장하는 건 머나먼 가상현실이 아니다.
며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을 교체했다. 그렇다고 소득 주도 성장이란 볶은 씨앗·삶은 씨앗·구운 씨앗을 뿌린 밭에 새순이 돋을 리 만무하다. ‘볶은 씨앗’은 ‘죽은 씨앗’이다. ‘6개월만 더 기다려보자’는 게 벌써 몇 번째인가. 2030년까지 ‘제조업 세계 4강·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이란 말은 다리 끊어 놓고 강 건너자는 논리다. 현 정권은 2년째 삼성을 마취하지 않고 수술 중이다. 삼성전자 혼자 작년 16조 원 세금을 냈다. 삼성은 가장 ‘세계적’이고 가장 ‘한국적’ 기업이다. ‘최첨단 기술’과 ‘전근대 경영’이 한 몸뚱이에 공존한다. ‘전근대 행태’는 한국 정치 그대로다. 지금 수술 방식대로면 ‘전근대’를 도려낸다면서 ‘최첨단’을 죽이고 말 것이다. ‘수술은 성공했다. 환자는 사망했다’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세상에서 가장 꼴불견은 ‘기도(祈禱)하는 위선자’ 다. 나라 위해 제 돈 1원 내놓은 적 없는 교육감이 수학 참고서를 팔아 모은 439억 원을 쏟아 세운 자율형사립고를 문 닫게 한 전주 상산고 사태가 꼭 그 꼴이다. 이 정권 들어 성장한 건 민노층 조합원 숫자 말고 특별히 내놓을 것이 없다. 어떻게 국민이 나라를 맡긴 대리인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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