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깨부순 사랑의 승리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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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 깨부순 사랑의 승리 ‘봄밤’
  • 장세진
  • 승인 2019.07.2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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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우연의 일치인지 공교롭게도 지난 두 달간 지상파 3사 수목드라마는 로맨스 일색이었다. 5월 15일 가장 먼저 시작한 SBS ‘절대 그이’는 피규어, 5월 22일부터 전파를 탄 KBS ‘단, 하나의 사랑’은 천사와의 판타지 로맨스다. ‘단, 하나의 사랑’과 같은 날 시작한 MBC ‘봄밤’만 사람끼리의 사랑을 그린 현실 로맨스다.
응당 사람끼리의 사랑을 그린 현실 로맨스에 관심이 쏠렸지만, 그게 시청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서 이미 말했듯 MBC는 작은 혁명이라 할 편성 변경을 단행했다. 평일(월~목요일) 밤 10시 대 드라마를 1시간 앞당겨 방송하기 시작한 것. 그 첫 드라마가 바로 ‘봄밤’이다. 이를테면 ‘봄밤’이 밤 9시 대 최초의 평일 드라마라 보게된 셈이다.
MBC는 6월 3일 시작한 월화드라마 ‘검법남녀2’ 역시 밤 9시 대에 방송하고 있다. 이로써 MBC는 월~목 평일 및 주말드라마의 밤 9시 대 방송시대를 열었다. 하긴 MBC는 이미 오래 전 밤 9시 ‘뉴스데스크’를 8시로 옮기더니, 다시 7시 30분으로 앞당기는 등 시청자의 생활 리듬을 깨는 편성을 해왔다. 그만큼 입지가 흔들리는 MBC를 반영한 편성이라면 나만의 억측일까. 
밤 9시 대 드라마가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봄밤’의 경우 3.9%(닐슨코리아, 전국기준. 이하 같음.)로 시작했지만, 최고 시청률은 9.5%를 찍었다. 최종회(7월 11일) 시청률이기도 하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의 시청률은 총 32회(옛 16부작) 처음으로 두 자릿 수인 10.8%로 나타났다. MBC로선 방송을 앞당긴 시간대 효과라 생각할 법한 결과다.
 ‘봄밤’은 35세 처녀 이정인(한지민)이 동갑내기 애 아빠 유지호(정해인)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우선 ‘봄밤’은 KBS ‘공항가는 길’(2016)ㆍSBS ‘사랑의 온도(2017)ㆍtvN ’남자 친구‘(2017~2018)를 잇는 정통 멜로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긴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멜로 드라마의 주요 관전 포인트는 결말이다.
특히 도서관 사서라는 멀쩡한 직업도 있는 처녀가 약사라고 하지만 애 아빠를 사랑하게 되는 ‘봄밤’이라 어떤 결말일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정인은 수년간 알고 지낸 남친 권기석(김준한)이 있다. “미쳐야 사랑”이라든가 “사랑은 이성을 마비시킨답니다” 같은 복선 역시 어떤 결말일지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궁금증이 본방 사수의 한 이유라 할 만큼이다.
결말은, 그러나 정인과 지호의 결혼 확정으로 끝난다. 대다수 가치관의 허를 찌른 다소 뜻밖의 결말이다. 박진감 넘치는 현실 멜로가 한순간에 판타지 로맨스로 바뀌는 결말이기도 하다. 말할 나위 없이 처녀와 애 아빠의 결혼이 정인 아버지 이태학(송승환)에게서 보듯 우리 사회의 상식은 아직 아니라서다. 고정관념 깨부순 사랑의 승리라 할까.
거기엔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뒤엎는 질책이 있다. 부모 뜻에 따라 정략결혼한 큰딸 이서인(임성언)의 임신한 상태에서도 강행하는 이혼이 그렇다. 교장 퇴직후 재단 이사가 되기 위해 둘째 딸 정인을 이사장 아들인 기석과 결혼시키려는 이태학의 좌절도 거기에 해당한다. 서로의 사랑만 있으면 그게 행복이라는 결말은 아름답지만, 그러나 현실적이진 않다.
기존 애인의 치졸하고도 집요한 행동이 주원인이든 아니든 새 연인을 버리고 돌아가는 현실 속 여자들을 더러 봐온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건 또 있다. 지호와 기석의 충돌이 드라마처럼 그렇게 신사적이진 않다. 하다못해 멱살잡이 한번 없이 말싸움으로 끝나곤 하는 그런 연적(戀敵)은 현실에선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기석 아버지 권영국(김창완) 앞에서 “기석씨와 결혼할 일은 없을 겁니다” 말하는 모습이라든가 그를 찾아가 “사진 원본 달라”는 정인의 당돌함이나 지호에게 먼저 하는 프로포즈도 좀 아니지 싶다. 정인 엄마 신형선(길해연)이 지호 엄마 고숙희(김정영)를 찾아가 손까지 잡은 채 동병상련하는 듯한 모습도 상식적이거나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편 멜로 드라마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디테일이다. 그 사랑이 불륜인지 공감이나 안타까움을 자아내는지 등이 디테일 묘사에서 정해진다. 딴전 피우는 행동이라든가 어깃장 놓는 심리 등 정인과 지호의 사랑 여물어가기 밀당은 합격점을 줄만하다. 지상파 방송이라 좀 어려웠을 법한데, 끝내 ‘이층집’으로까지 이어지는 과정 역시 몰입도 견인의 일등공신이라 할만하다. 
아직 본격적 연애가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이성(理性)적 대화를 내세운 접근이 좀 아쉽지만, ‘봄밤’은 인상적인 한 편의 멜로 드라마로 기억되기에 충분하다. 배우들의 발음상 오류 따위가 드러나지 않아 반갑기도 하다. 단, 고등학교 교장과 이사장실이 여러 번 나오는데, 어찌된 일인지 학생들 모습은 한 번도 보이지 않아 좀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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