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의미 더한 ‘항거: 유관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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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의미 더한 ‘항거: 유관순 이야기’
  • 장세진
  • 승인 2019.08.2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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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8월 15일 74주년을 맞은 광복절의 의미는 여느 해 같지 않았다. 3ㆍ1만세시위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데다가 가해자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불매운동과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시국이라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열찬 반일 분위기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가운데 일제(日帝)의 만행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들이 눈길을 끈다.
먼저 극장쪽이다. 단연 8월 7일 개봉한 ‘봉오동 전투’가 눈에 띈다. 190억 원 대 제작비가 투입된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 ‘봉오동 전투’는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한 최초의 승리를 그린 영화다. 8월 25일 현재 451만 명 남짓 동원하고 있다. 관객 수에서 1주일 먼저 개봉, 836만 명을 넘긴 ‘엑시트’에 밀리고 있지만, 손익분기점 450만 명은 돌파했다.

저예산 다큐영화들도 있다. 8월 8일과 7월 25일 각각 개봉한 ‘김복동’과 ‘주전장’이다. ‘김복동’은 뉴스에서도 가끔 보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로 활동했지만,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김복동 할머니를 그린 영화다. 단체관람과 표나누기 운동 등에 힘입어 독립영화로선 대박이라 할 7만2천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극장을 찾은 관객 수가 ‘김복동’의 절반 정도에 그치지만, ‘주전장’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영화다.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이 연출한 ‘주전장’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부정과 함께 숨기고 싶어하는 일본 우익들의 실체를 쫓는 내용의 영화로 알려져서다. 흥행에 힘입어 미키 데자키 감독의 두 번째 한국방문 소식이 들려온다.
다음은 방송쪽이다.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라 할 정도로 광복절 특선영화들이 즐비하다. 지상파의 경우 ‘암살’(SBS)ㆍ‘항거: 유관순 이야기’(MBC) 두 편뿐이지만, 케이블 방송을 보면 여러 편의 광복절 특선영화들이 편성됐다. ‘박열’(채널 CGV)ㆍ‘밀정’(OCN)ㆍ‘눈길’ㆍ‘아이 캔 스피크’ㆍ‘허스토리’ㆍ‘귀향’(이상 스크린) 등이다.
비록 설이나 추석 명절 특선으로 이미 방송된 재탕이라 해도 광복절에 일본제국주의 만행을 직ㆍ간접적으로 다룬 그런 영화들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다만, KBS가 광복절 특선영화 없이 그냥 지나친 것은 좀 의아스럽다. 이런저런 다큐멘터리를 광복절 특선으로 내보낸 KBS라 해도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다.
MBC가 74주년 광복절 밤 10시 5분부터 방송한 ‘항거: 유관순 이야기’(감독 조민호)를 애써 챙겨본 것은 유일하게 ‘신작’이어서다. 방송의 다른 광복절 특선영화들 전부 이미 본 것들이기에 같은 시간대 본방사수하던 KBS 수목드라마 ‘저스티스’를 재방으로 미루고 신작인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극장에서보다 더 편하게 본 것이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2019년 2월 27일 개봉한 흑백영화다. 50만 명쯤인 손익분기점보다 2배 이상 많은 115만 명 넘는 관객을 동원한 흥행영화이기도 하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이를테면 개봉 6개월도 안돼 TV로 방송된 신작인 셈이다. 먼저 재빠르면서도 시의적절한 ‘항거: 유관순 이야기’ 소환을 단행한 MBC에 박수를 보낸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충남 병천 아우내 장터 3ㆍ1만세시위에서 앞장서다 잡혀온 17세 유관순(고아성)의 서대문 형무소 1년여 생활을 그린 영화다. 실제 인물로 알려진 기생 김향화(김새벽),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김예은), 다방 종업원 이옥이(정하담) 등 서대문 형무소 8호실에 갇힌 25명의 여성들과 함께하는 수감 생활이다.
앞에서 ‘더 편하게 본 것’이라 말했지만, TV 방송의 환경을 말함이지 영화의 내용이 아니다. 그렇게 편하게 보는 것조차도 죄스러울 만큼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일제의 만행을 다룬 어느 영화보다도 먹먹한 아픔을 진하게 안겨준다. 동시에 유관순이 갇힌 8호실에서 1년 후 3ㆍ1만세시위가 재현된 사실도 알게 된다.
유관순을 연기한 고아성의 부은 왼쪽눈을 보는 처음부터 뭔가 심상찮은 그런 느낌이 몰려온다. 유관순은 두 팔 묶이고 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진 채이거나 발에 채운 족쇄, 그리고 손톱 밑을 송곳으로 찔러대다 결국 뽑아버리기까지 하는 일제의 잔혹한 고문을 당한다. 그런 고문을 당하면서도 “만세 1주년인데 빨래 널고 있을 순 없잖아요”라며 끝까지 항거하는 유관순이다.      그런 유관순이 10대 소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놀랍고 슬프다. 유관순은“정당한 일을 하니까 하느님이 도와주실 줄 알았다”며 10대 소녀적 감성을 드러내지만,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라는 배식남에게 “그럼, 누가 합니까?”라고 반문한다. 아우내 장터에서 아버지가 일본군 총에 맞아 죽고, 그걸 보고 달려오는 어머니마저 대검에 찔려 죽는 개인적 원한이 승화되는 대목이다. 광복절의 의미를 더한 ‘항거: 유관순 이야기’다.
그런 유관순 고문에 니시다로 변한 정춘영(류경수)이 실제로 있었다는 건 지금까지도 친일 청산을 이뤄내지 못한 점에서 또 다른 아픔의 환기이다. “나태와 분열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일본 관리의 논리도 되새겨볼 대목이다. 다만, 옥에 티랄까 “뭐야, 초등생도 아니고”란 대사의 ‘초등생’은 당시 용어가 아니라 관객을 어리둥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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