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흥행 참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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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흥행 참패
  • 장세진
  • 승인 2019.09.0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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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예년에 비해 이른 추석(9월 12일)이라 그런지 아침 저녁으론 제법 시원한 요즘이다. 이런 계절의 변화는 극장가 최대 성수기라 할 여름대전이 끝나고 추석 대목에 접어들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타짜: 원 아이드 잭’ㆍ‘나쁜 녀석들: 더 무비’ㆍ‘힘을 내요, 미스터 리’ 등 추석 개봉영화 라인업이 공개된 시점이니 지난 7말 8초 여름대전 영화들 정리도 나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올해에만 ‘극한직업’ㆍ‘어벤져스: 더 엔드게임’ㆍ‘알라딘’ㆍ‘기생충’ 등 4편이나 천만영화가 이미 탄생해서 그런가. 지난 여름대전에서 천만영화는 없다. 여름대전 한국영화는 ‘나랏말싸미’(130억 원)ㆍ‘엑시트’(140억 원)ㆍ‘사자’(147억 원)ㆍ‘봉오동 전투’(190억 원) 4편이다. 이들 영화는 괄호 안의 제작비에서 보듯 한국형 블록버스터 내지 대작들이다.

4편중 7월 31일 개봉한 ‘엑시트’만 891만 명 남짓(9월 1일 현재) 동원, 흥행 성공했을 뿐이다. 평일에도 수만 명이 극장을 찾아 더 지켜봐야겠지만, ‘엑시트’의 천만 관객 돌파 관건은 속속 개봉하는 신작들 틈바구니에서 과연 얼마나 상영을 더 할 수 있느냐다. 개봉 53일 만에 천만영화가 된 ‘기생충’이 있는데, 그렇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나머지 3편중 8월 7일 개봉한 ‘봉오동 전투’는 471만 명 남짓 동원, 약 450만 명인 손익분기점을 넘겨 시름은 던 상태다. 7월 24일 가장 먼저 개봉한 ‘나랏말싸미’는 100만 명도 안 되는 관객으로 일찌감치 나가 떨어졌다. ‘엑시트’와 같은 날 개봉한 ‘사자’도 160만 명 남짓에 그쳤다. 두 영화 손익분기점은 약 350만 명으로 알려졌다.
2006년 ‘괴물’을 시작으로 ‘해운대’(2009)ㆍ‘도둑들’(2012)ㆍ‘명량’(2014)ㆍ‘암살’ㆍ‘베테랑’(2015)ㆍ‘부산행’ㆍ‘택시운전사’(2017)ㆍ‘신과함께-인과 연’(2018) 등이 여름대전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들이다. 특히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째 마치 하나의 전통처럼 여름대전 천만영화가 있었는데, 6년 만에 없어진 셈이다.
대작들의 성적 부진에 8월 전체 관객 수도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 영진위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해 8월 한국영화 관객 수는 2220만 8501명인데 비해 올해는 1800만 1563명에 그쳤다. 무려 420만 6938명이나 적다. 이는 2013년 이후 8월 한국영화 관객 수 최저 기록이다. 2013년부터 6년간 계속된 2000만 명 대의 한국영화 8월 관객 수 기록이 깨진 것이다.
7월 관객 수에서도 그 점이 역력히 드러난다. 지난 해 7월 한국영화 관객 수는 539만 명이다. 올해 7월엔 334만 명에 그쳤다. “2008년 이후 가장 적었고, 한국영화 점유율도 15.2%로 200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국일보, 2019.8.26.)했다. 특히 7월 24일과 31일 각각 개봉한 ‘나랏말싸미’와 ‘사자’의 흥행 참패가 여실히 반증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나가 떨어지기가 비단 이번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추락은 지난 해 유난히 심했다. 상반기 개봉한 ‘염력’ㆍ‘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ㆍ‘7년의 밤’이 흥행 실패했다. 여름대전에 뛰어든 ‘인랑’의 경우 제작비 190억 원의 대작으로 손익분기점이 570~600만 명인데, 관객 수는 90만 명도 되지 않는다.
추석 대목에 개봉한 ‘물괴’ㆍ‘명당’ㆍ‘협상’ㆍ‘안시성’ 4편도 모두 100억 원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들이다. 손익분기점은 ‘물괴’ㆍ‘명당’ㆍ‘협상’ 세 편이 각각 300만 명이지만, 72만, 208만, 196만 명에 그쳤다. 특히 72만 명에 그친 ‘물괴’는 ‘인랑’과 같은 참패였다. 200억 원 대 ‘안시성’만 544만 명 남짓한 관객을 동원, 손익분기점을 겨우 넘긴 것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연말연시 대목을 맞아 또다시 순제작비만 120~135억 원이 투입된 한국형 블록버스터 ‘마약왕’ㆍ‘스윙키즈’ㆍ‘PMC-더 벙커’가 개봉했지만, 이들 모두 그야말로 추풍낙엽 신세가 되었다. 이들 영화 손익분기점은 각각 400만ㆍ370만ㆍ410만 명이지만, 세 편 모두 각기 200만 명도 동원 못한 채 흥행 참패한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되고 말았다.
1년에 여러 편 100~200억 원에 이르는 대작들이 관객과 만나는 건 그만큼 한국영화 파이가 커진 걸 의미하지만, 그러나 빈번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흥행 참패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제 대작으로 승부 보는 시절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무조건 혹 하는 관객이 아닌 현실 직시가 절실해 보인다.
나름 반면교사를 삼았음인가. 그나마 이번 추석 영화들은 지난 해와 다른 점이 눈길을 끈다. 단골처럼 있어온 사극이 없는가하면 대작들의 제 살 깎아먹기가 아니어서다. 그만큼 흥행 참패에 대한 우려도 줄어든 셈이라 할까. ‘타짜: 원 아이드 잭’의 경우 총제작비가 110억 원으로 알려졌지만, 두 편의 80억 원 대 추석 영화들 승자는 누구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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