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선 TV영화들과 ‘국가부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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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선 TV영화들과 ‘국가부도의 날’
  • 장세진
  • 승인 2019.09.1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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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지난 번 칼럼 ‘계속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흥행 참패’에서 3편의 추석 극장영화중 승자는 누구일지 궁금해하며 글을 맺었는데, 16일 현재 가장 많은 관객이 든 것은 287만 명 남짓 동원한 ‘나쁜 녀석들: 더 무비’로 나타났다. 더 두고 봐야겠지만, 추석 대목에 개봉해 천만영화가 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나 9백만 관객의 ‘관상’(2013) 같은 대박은 아마 없지 싶다.
그보다 더 치열한 건 오히려 추석특선 TV영화들이다. 신문 등 TV편성표에 따르면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지상파 4사(EBS의 경우 정규프로 포함)가 방송한 추석특선 TV영화는 22편이다. OBS와 종편 17편, 거기에 tvN 3편까지 합치면 무려 42편의 영화가 전파를 탔다. 이는 OCNㆍ채널CGVㆍ스크린ㆍ슈퍼액션 등 영화전문 게이블 방송에서 내보낸 영화들은 뺀 수치다.

번잡하고 돈까지 따로 들여야 하는 극장을 가지 않은 시청자 입장에선 즐거운 비명을 지를만한 TV영화다. 한 지상파 편성 관계자는 “가족들마다 보던 드라마가 다를 수 있지 않나, 애초에 다시 보거나 새로 보기에 부담이 덜한 ‘특선영화’를 편성하는 이유다. 방송 최초로 전파를 타는 ‘특선영화’를 선점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 치열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지난 설에 이어 이번 추석에도 SBS가 가장 많은 영화를 내보냈다. 11일부터 14일까지는 하루에 2편, 15일 1편 등 모두 9편의 특선영화를 방송했다. 그것도 전부 한국영화다. 채널이 두 개인 KBS 6편(정규프로 ‘독립영화관’이 방송한 ‘영주’ 포함)보다 많다. 특히 MBC 2편에 비하면 SBS 추석 특선영화는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지난 설이나 추석에 방송했던 ‘궁합’ㆍ‘너의 결혼식’ㆍ‘신과 함께: 죄와 벌’과 ‘보안관’ㆍ‘청년경찰’ 등 재탕 영화는 좀 아쉽다. 물론 SBS만 재탕을 일삼은 건 아니다. 가령 KBS는 2년 전 추석 특선으로 방송했던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같은 1TV로 내보냈다. EBS가 방송한 ‘앤트맨’도 지난 해 설 특선영화로 이미 전파를 탄 적이 있다.
반면 극장 개봉 7~8개월밖에 안된 신작들도 있다. 2019년 1~2월에 개봉했던 ‘말모이’ㆍ‘증인’ㆍ‘내 안의 그놈’ㆍ‘뺑반’ 등이다. 달랑 2편만 편성한 MBC는 그걸 만회하려는 듯 신작 ‘말모이’ㆍ‘증인’을 선보였다. 2019년 1월 개봉해 천만영화가 된 ‘극한직업’이 SBS에서 방송될 것이란 소식이 인터넷에 전해져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불발되어 아쉬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거기서 특기할 건 SBS의 유독 많은 특선영화 방송이다. 일례로 KBS 10편, MBC 6편, SBS 6편, EBS 17편이었던 2017 추석특선영화들을 떠올려보면 그 점이 확연해진다. KBS도 반토막난 편성이지만, EBS와 MBC는 3분의 1 수준으로 확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SBS만 추석특선영화들을 대폭 늘려 올인한 셈이다.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은 내가 챙겨본 여러 추석특선영화중 하나다. KBS 특집드라마 ‘생일편지’를 재방으로 미루고 애써 챙겨본 영화이기도 하다. SBS가 방송한 9편중 유일하게 ‘국가부도의 날’을 챙겨본 것은 ‘내 안의 그놈’을 뺀 7편이 이미 본 영화들이어서다. ‘내 안의 그놈’은 tvN의 ‘협상’과 시간대가 겹쳐 포기한 경우다.
‘국가부도의 날’은 2018년 11월 28일 개봉하여 375만 5133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영화다. 260만 명쯤으로 알려진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겼으니 흥행 성공작이다. ‘국가부도의 날’이 흥행 성공한 건 국가부도라는 사상 초유의 비극적 현대사를 최초로 다룬 영화라 그런지도 모른다. 비극적 역사를 다룬 사극 및 현대물 못지않게 봐야할 영화로 인식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11월 대한민국이 맞닥뜨린 IMF 외환위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로 인해 벌어지는 한시현(김혜수)ㆍ윤정학(유아인)ㆍ갑수(허준호) 이야기가 영화의 축을 이룬다. 거기에 정부를 대표하는  재정국 차관(조우진)과 청와대 경제수석, 윤정학을 따르는 투자자들 이야기가 더해진다.
대통령 선거 벽보라든가 뒷면 배불뚝이의 컴퓨터 등 당시 시대상 재현은 제법 실감나지만,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국가부도의 날’이 썩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다. 마치 전혀 다른 인물들이 진행하는 3원 생방송이란 느낌을 주는 이야기 전개 때문이다. 요컨대 한시현ㆍ윤정학ㆍ갑수 이야기가 긴밀하게 유기되지 않고 따로 논다는 것이다.
캐릭터나 디테일에서도 다소 성긴 구석이 아쉽다. 가령 돈벌었다며 좋아하는 오렌지(류덕환)를 패는 윤정학이 왜 그런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하는지 설명이 없다. 미혼인지 기혼녀인지도 알려주지 않은 시현이 갑수의 동생인 것 역시 뜬금없어 보인다.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가는 한국은행 직원의 모습도 좀 의아하다. 웬만한 신문은 관공서에 다 들어가지 않나?
다만, 한시현처럼 위기 극복을 위해 애쓴 이들과 무능한 정부, IMF에 앞장선 재정국 차관 등 관료들이 이후 잘 나가는 모습을 상기시킨 점은 그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외환위기를 제대로 알리지 않으려한 정부의 무능을 환기시킨 점은 당시 절망에 빠졌던 많은 국민에게 바치는 헌사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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