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아니면 안되나,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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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아니면 안되나,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 장세진
  • 승인 2019.09.2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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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3월 23일 시작한 KBS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이 9월 22일 6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원래 100부(옛 50부)작이었으나 108부작으로 늘려 끝났다. 당초 100부(옛 50부)작을 인기에 힘입어 106부작으로 연장한 전작 ‘하나뿐인 내편’과 같은 방송이다. 추석 연휴 결방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없던 일로 한 종영이기도 하다.
대하드라마가 없어진 지금 가장 긴 방송 기간을 자랑하는 KBS 주말드라마의 연장은 한마디로 인기 때문이지만, 썩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설사 그걸 인정하더라도 연장 방송해야 할 만큼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이 전작들처럼 인기 드라마였는지 의문이 들어서다. 그 지점에서 제작진의 베트남 포상휴가도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은 시청률 22.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로 출발했다. 10% 대로 추락한 적도 있지만, 최고 시청률은 최종회에서 찍은 35.9%다. 최고 시청률로만 보면 전작들인 ‘하나뿐인 내편’ 49.4%, ‘같이 살래요’ 45.1%보다 훨씬 못한 인기라 할 수 있다. 통상 시청률 20% 대 밑으로 내려가면 망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KBS 주말드라마라 그렇다.
먼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을 보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매일 드라마를 시청하는 입장인데도 처음 보는 배우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주요인물들인 한태주ㆍ강미혜ㆍ김우진을 각각 연기한 홍종현ㆍ김하경ㆍ기태영이 그들이다. 이들보다 비중이 덜한 이원재(정진수 역)ㆍ한기웅(피터박 역)ㆍ남태부(방재범 역)ㆍ박근수(박영달 역) 들도 처음 보는 배우들이다.
아무튼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은 강미선(유선)ㆍ미리(김소연)ㆍ미혜 세 딸을 둔 엄마 박선자(김해숙) 이야기다. 6개월간이나 방송되는 KBS 주말드라마답게 그들을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가 더해진다. 재벌 2세와의 결혼, 고부간 갈등, 육아의 어려움, 소 닭보듯하는 은퇴자 부부의 각자 인생, 노년의 고독, 직장생활의 애환 등이다.
없는가 싶던 시한부도 등장한다. 89회에서 잦은 기침을 하던 박선자가 92회에서 폐암 말기 판정을 받는 것. 이후 드라마는 그에 맞춰 전개된다. 그야말로 자식들의 눈물짜기 등 ‘불효자는 웁니다’ 모드다. 한여름의 100포기 김장부터 장황하게 묘사되는 장례 절차까지 쓸데없는 억지 설정의 전개가 짜증날 정도다. 시한부 아니면 안되나, KBS 주말드라마를 이끌어갈 수 없는지 묻고 싶다.
실제 “‘세젤예’ 시한부 카드 통했다”(스포츠서울, 2019.8.27.)에는 “막장 드라마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자극적인 전개로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바 있다. 여기에 폐암말기 시한부 선고까지 더해지면서 시청자들의 원성은 더욱 높아지게 됐다.”고 나온다. 나름 볼만하던 무난한 드라마에 시한부의 상투적 이야기로 원성을 산 셈이라 할까. 
그것은 역시 시청률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막장이라고 욕을 먹어도 시청률이 높아지는 효과가 확실하다면 그 카드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특히 KBS 주말극은 30% 돌파는 너무 당연시되는 편성시간대라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생각들 할 것이라 종영을 앞두고 다급한 마음이 있을 수 있다”(위의 스포츠서울)고 말한다.
그런데 기른 정이라든가 엄마의 의미에 방점을 찍은 드라마라는 점에서 박선자는 좀 튀는 캐릭터로 다가온다. 가령 큰딸네 집안 청소하다 남자 팬티를 발견, 직방 사위 직장으로 전화하는 장모여서다. 직장 다니는 큰딸에게도 전화해 연락 안한다며 투덜대는 박선자 모습이 우리가 지금껏 봐온 희생과 자애의 전형적 어머니상은 아니다.
하긴 튀는 건 그뿐이 아니다. 억지스럽거나 냉큼 현실 공감되지 않는 장면이 그렇다. 가령 출판사 편집장이 작가더러 원고를 쓰게 하고 검사하는 등 일련의 수련과정을 들 수 있다. 드라마 전체적으론 미혜의 사랑 움트기 및 결혼에 대한 복선일 수 있지만, 좀 아니지 싶다. 미혜가 ‘만해문학상’ 수상후 9년이 지난 소설가로 나오는데, 등단 10년 이상의 작가에게 주어지는 같은 이름의 실제 상인지도 의아하다.
미리와 태주의 연인되기 과정도 좀 그렇다. 상사는 그만두고 연상녀인데, 태주가 “미리야, 너” 따위 반말로 대거리할 수 있는지 의문스러워서다. 둘의 사랑과 결혼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연달아 너무 ‘착한’ 재벌 2세가 그려진 건 문제로 보인다. 전작 ‘하나뿐인 내편’의 왕대륙이나 ‘황금빛 내 인생’의 최도경 등 너무 ‘착한’ 재벌 2세들을 이미 볼 수 있어서다.
또 하나 생각해볼 것이 있다. 연상녀나 재벌 2세는 논란거리조차 안될 정도이고 이혼남도 처녀와 결혼하는 내용이 그것이다. 하긴 얼마 전 끝난 ‘봄밤’에선 부모 반대가 잠시 있었지만, 처녀가 애딸린 남자와 결혼하기도 한다. 드라마나 소설이 시대의 반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세태가 딴은 좀 놀라운 일이다. 아니면 그야말로 드라마라 그런 것일까.
그 연장선에서 미선 부부의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젊은 부부는 미선처럼 남편에게 “어디서 개수작이야?”를 예사로 하는가. 툭하면 남편더러 “밥 챙겨 먹으라”며 윽박지르는 것이 아내인지도 궁금하다. 그보다 더 어이가 없는 건 미혜의 결혼을 가족투표로 정하는 장면이다. 결국 결혼은 박선자 폐암으로 급하게 성사되기에 이른다. 이런 억지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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