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축구경기 대신 방송한 영화 ‘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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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축구경기 대신 방송한 영화 ‘뺑반’
  • 장세진
  • 승인 2019.10.2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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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10월 15일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북한전 축구 경기가 평양에서 열리던 그 시각, KBS는 영화 ‘뺑반’(감독 한준희)을 내보냈다. 남북한 축구 경기 생중계가 무산되자 취한 조치로 보이지만, KBS는 2019추석특선 영화로 9월 14일 밤 ‘뺑반’을 이미 방송한 바 있다.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방송, 그러니까 재탕한 것인데, ‘뺑반’이 2019 추석 연휴기간 시청자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영화이긴 하다. 
미디어데이터 기업 TNMS에 따르면 9월 12일부터 15일까지 지상파ㆍ종합편성채널ㆍtvN에서 방송된 영화 36편중 시청률 1위를 차지한 건 ‘뺑반’이 다. 이른바 더 많은 중간광고를 하기 위해 3부로 나누어 방송했는데, 평균 시청률은 7.9%다. 2위는 6.8%의 ‘신과 함께: 인과 연’(SBS), 3위는 6.7%를 찍은 ‘내 안의 그놈’(SBS)으로 나타났다.

시청률 7.9%는 대박은 아닐망정 웬만한 평일 미니시리즈보다 높은 수치로  ‘뺑반’이 인기리에 방송된 추석특선 영화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거기서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1위 ‘뺑반’이 2019년 1월 30일, 3위 ‘내 안의 그놈’이 그보다 3주 앞선 1월 9일 개봉작이란 점이다. 이를테면 극장 개봉 7~8개월 만에 방송된 신작영화의 인기가 높은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그 성적표에서 간과할 수 없는 건 SBS의 추석특선 올인 전략이다. 비록 1위 자리를 ‘뺑반’에 내주긴 했지만, SBS의 추석특선 영화들이 시청률 2, 3위를 차지했으니 그런 편성은 다가오는 설날 연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다른 글에서 말한 바 있듯 SBS가 2019추석특선으로 방송한 영화(그것도 전부 한국영화)는 무려 9편에 이른다.
아무튼 ‘뺑반’의 그런 인기는 좀 의아스럽다. 정작 극장 개봉에서 130억 원 대 대작이란 이름값을 해내지 못해서다. ‘뺑반’의 손익분기점은 대략 400만 명쯤으로 알려졌는데, 극장으로 불러 모은 관객 수는 고작 182만 명 남짓에 불과하다. 속된 말로 반타작도 못한, 흥행 참패 영화가 되고만 것이다. 뺑소니 범죄에 분노하는 민심이 ‘윤창호법’까지 만들어낸 걸 생각하면 일견 이상한 일이다.
거기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극장 상영과 TV 방송의 차이다. 무슨 말이냐면 따로 돈을 써가며 극장까지 가서 볼 영화는 아니지만, 집에서 편안하게 거의 공짜로 보는 TV라면 기꺼이 시간쯤은 낼 수 있다는, 뭐 그런 대중의 심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달 만에 ‘뺑반’을 남북한 축구경기 대신 내보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뺑소니 전담반을 줄인 ‘뺑반’은 뺑소니범 정재철(조정석)을 내사과에서 뺑반으로 좌천된 은시연(공효진) 경위와 서민재(류준열) 순경이 잡는 이야기다.근데 재철은 단순한 뺑소니범이 아니다. 카레이서 출신 사업가로 경찰과의 유착은 물론 사이코패스 성향의 악질이다. 조정석이 맡은 첫 악역으로 관심을 끈 캐릭터이기도 하다.
전남 담양의 미개통 국도,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레이싱 장면이라든가 자동차 추격신 등 볼거리는 제법 있지만, 문제는 이런 것들이 뭔 말인지 잘 이해안되게 펼쳐지는데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적 관심사인 뺑소니범을 온갖 비리 온상의 주범쯤으로 몰고간 극대화된 서사가 오히려 자충수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영화를 보면서 또는 보고난 후 딱히 가슴에 와닿는 게 없는 것도 흥행 참패의 한 원인으로 보인다. 스케일만 있고 메시지가 없는 영화라 할까. “보이는게 진실이고 전부”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상당히 복잡한 플롯으로 인해 보여주지 못한 것이라 할까. 과거 회상 장면 또한 적재적소에 매끄럽게 배치되지 않아 산만한 전개를 가중시킨다.
카레이싱이 익숙치 않은 한국적 상황도 관객 확산을 막은 듯하다. 얼른 공감되지 않는, 그야말로 너무 영화적인 장면들도 그렇다. 가령 119구급차량과 재철이 모는 승용차 충돌을 보자. 상식적으론 승용차일 것같은데, 정작 넘어진 건 119구급차량이다. 이게 말이 되나? 서민재가 공격당해 쓰러져 있다가 아무 인과적 묘사도 없이 불쑥 일어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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