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축구 시합
상태바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축구 시합
  • 장세진
  • 승인 2019.10.29 17: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이게 실화냐?’ 반문할 정도의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 벌어졌다. 10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2022카타르월드컵 2차예선 북한전 축구 경기를 TV 생중계로 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의 A매치 경기가 TV로 방송되지 않은 건 1985년 3월 열린 1986멕시코월드컵 아시아예선 네팔원정이 마지막이었다. 네팔의 통신 환경이 좋지 않은 이유였다.
1990년 1월 남북통일축구대회 이후 29년 만에 평양에서 두 번째로 진행된 카타르월드컵 2차예선 남북한전 축구는 우리 취재진과 응원단은커녕 관중조차 없는 3무 경기였다. 이에 대해 영국 BBC 방송은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축구 시합’이라 말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평양의 빈 관중석 앞에서 기이한 월드컵 예선 경기가 열려 무승부로 끝났다”고 보도했다.

우리 취재진과 응원단이 없었던 건 북한 당국이 입국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다. 중국 순방시 동부인하는 등 여느 나라와 다름없음을 보여주려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행보와 상관없이 과연 북한이 정상 국가인지 의심케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 협상이 파행하는 상황에서 남북 관계가 이번 경기를 계기로 풀어지는 듯한 모양새가 되는 것을 북한이 부담스러워 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있지만, 만약 그렇다면 되게 쪼잔해 보인다.  
그런데 통일부 국감에서 김 장관은 “북한에 엄중히 항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라”는 한국당 의원들의 요구에 “축구와 남북관계를 분리해서 접근해야겠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3무 경기에서 보듯 북한은 스포츠와 정치를 분리해 생각하지 않는데, 정부에서 항의조차 않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동네 축구도 아니고 월드컵 2차예선 경기가 이렇듯 파행을 겪어야 되는지 묻고 싶다. 평양을 방문해 경기를 본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 회장은 피파 홈페이지를 통해 “역사적인 경기인 만큼 관중석이 가득찰 것으로 기대됐는데, 경기장에 팬들이 한 명도 없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경기 생중계와 비자 발급 문제, 외국 기자들의 접근에 관한 이슈들을 알고 놀랐다”는 말도 했다.
결국 피파 회장 역시 북한의 일방적 처사에 당했다는 얘기가 된다. 인판티노 회장은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북한축구협회에 제기했”다고 하지만, 그러나 아시아축구연맹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이 이번 경기에서 FIFA 규정을 어긴 사례는 없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월드컵 예선 과정에서 개최국이 원정팀 취재진과 응원단 활동에 협조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북한인데도 말이다.
징계를 받은 경우에 한해 반강제적으로 진행되는 무관중 축구 경기도 이해 안 되는 일이다. 일례로 북한은 2005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독일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이란에 0-2로 패한 뒤 관중들이 이란 선수단 차량을 가로막았다가 다음번 일본과의 홈경기 개최권을 박탈당하고 태국에서 무관중 경기를 치른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엔 징계에 따른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 자발적 무관중 경기다. 징계에 따른 처벌이 아니라 스스로 무관중 경기를 연 것은 세계 축구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희귀한 일이다. 중계권료와 입장권 판매수입을 포기하면서까지 치른 무관중 경기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비난을 자초한 북한의 저의는 무엇일까.
세계 최대의 통신사 AP통신은 “북한이 5만 명의 홈 관중 앞에서 한국에게 패배할 가능성에 대해서 걱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굴욕적인 전개가 됐을 것”이라 보도하고 있다. 한국이 객관적으로 우위에 있긴 하지만, 믿기지 않는 분석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북한과 17차례 A매치를 벌였고, 7승 9무 1패를 기록중이다.
또한 AP통신은 “무관중 경기를 치른 것은 공정성에 대한 질문을 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여겨진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리 취재진과 응원단을 못오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담은 대응인지 또 다른 속내가 있는 행동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4만 명 넘게 들어찬 관중의 일방적 응원에 우리 선수들 기가 죽을 것이란 보도가 무색해져버렸단 점이다.
아무튼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축구 시합’은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인 그 전쟁과 맞닥뜨리고 있음을 새삼 환기시킨다. 다름 아닌 분단현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소위 태극기부대는 물론 툭하면 꺼내드는 자유한국당의 색깔론에 또 하나 3무의 남북한전 축구 경기라는 분단현실의 모습이 추가된 셈이라 할까.
아울러 지난 해 4월 27일 판문점 선언 이후 9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백두산 등정, 지난 6월말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회동 등 금방 통일은 아니더라도 뭔가 달라진 남북간 분위기라든가 정서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셈이라 할까. 그것이 한낱 정치적 쇼일 뿐이었던가 하는 탄식도 갖게 한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