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쾌한 카타르시스가 만만치 않은 ‘악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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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한 카타르시스가 만만치 않은 ‘악인전’
  • 장세진
  • 승인 2020.02.1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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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TNMS 미디어데이터 집계 자료를 토대로 보도한 뉴스들에 따르면 1월 24일 설 연휴 시작일부터 1월 27일 마지막날까지 나흘간 방송(지상파+종편+tvN)된 총 39개 영화 중 전국 가구 시청률(유료가입+비가입) 1위는 9.4%(1부 8.8%, 2부 10.1%)의 ‘걸캅스’(MBC)로 나타났다. 27일 밤 방송한 ‘걸캅스’를 총 310만 명이 시청했다는 얘기다. 
KBS 2TV 설 특선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와 부분적으로 시간이 겹쳐 부득이 보는 걸 포기하고만 ‘걸캅스’라 나로선 1위 영화를 놓친 아쉬움이 생긴다. 하지만 ‘지난 추석에 이어 이번 설에도 다른 지상파 방송보다 훨씬 적은 2편만 특선영화(PMC: 더 벙커’와 ‘걸캅스’)를 편성한 MBC로선 나름 환호성을 내질렀을 법하다.

그야 어쨌든 시청률 2위는 7.3%(1부 6.1%, 2부 7.9%)의 ‘악인전’(SBS), 3위는 7.2%(1부 6.2%, 2부 7.9%)의 ‘극한직업’(tvN)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소식을 보도한 기사들에 따르면 각 236만 명과 249만 명이 ‘악인전’과 ‘극한직업’을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0.1% 더 많은 ‘악인전’ 시청자 수가 ‘극한직업’보다 적게 쓰인 내용은 의아한 점이다.
일단 흥미로운 것은 시청률 1~3위 영화들 모두 범죄자들을 때려잡는 경찰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물론 ‘악인전’의 경우 조폭 두목 장동수(마동석)가 경찰 정태석(김무열)과 같은 비중의 주인공이지만, 그만큼 범죄에 대해 민감한 일반 대중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단, 19금 영화인 ‘악인전’의 경우 설 명절용으로 적합했는지는 의문이다.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 세계를 놀라게 한 제72회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상영된 ‘악인전’(감독 이원태)은 688만 명남짓한 관객으로 완전 대박을 일군 ‘범죄도시’(2017) 제작진이 다시 뭉쳐 만든 영화다. 2019년 5월 15일 개봉, 336만 4712명을 동원했다. 200만 명쯤인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긴 흥행작이다. 
‘악인전’은 ‘범죄도시’처럼 실화(2005년 충남 천안 일대에서 벌어진 9명 살해의 연쇄살인사건)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살인마가 조폭 두목을 죽이려다 실패에 그친 픽션을 가미, 기발한 상상력으로 완성된 ‘악인전’의 흥행은 연이은 실화 영화의 승리라 할까. 특히 ‘범죄도시’처럼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라는 점에서 ‘악인전’ 흥행의 의미는 크다. 
그뿐이 아니다. 개봉도 하기 전 해외 104개국에 선판매가 이루어졌고, 할리우드 배우이자 감독·프로듀서로 활약 중인 실베스터 스탤론이 이끄는 발보아 픽쳐스에서의 리메이크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마동석은 리메이크작에서도 연쇄살인마의 습격을 받는 조직 보스 역을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판 ‘악인전’이 어떤 영화가 되어 상륙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발보아픽쳐스 측은 “조직 보스와 형사가 손잡고 연쇄살인마를 잡는다는 콘셉트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이 있다”고 리메이크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악인전’은 그렇게 할리우드에서 탐낼 만큼 이전 조폭 내지 범죄영화들과 궤를 달리 한다. 깡패가 형사와 공조해 악마를 잡으니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만만치 않다. 그 점에서는 명절 영화로 생각해도 될 법하다.
‘악인전’은 조폭 두목을 칼로 죽이려한 연쇄살인범이란 소재도 신선하지만, ‘나쁜 놈’ 동수로 변신한 마동석의 포스랄까 아우라가 섬뜩하면서도 재미있다. 우선 샌드백에 사람을 집어넣은 채 주먹질하고, 건방 떠는 상대편 부하의 생이빨을 뽑아 유리컵에 담고, 선배들 위로연에서 좀 나불거리는 그중 1명의 귀뺨을 때리며 패대기치는 등 악행이 섬뜩하다.
재미있는 건 “법으로 못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라든가 “우리도 세금 내는 시민인데, 이제 경찰 도움 좀 받아야지” 따위 조폭 두목으로서 ‘주제넘게’ 떨어대는 너스레 및 그에 따른 액션이다. 가령 문짝이 뜯겨나가면서 거기에 씌운 악당에게 주먹질하는 액션에선 통쾌하고 후련함이 뒤따른다. ‘우리 편’인 경찰이 악당에게 휘두르는 펀치가 아닌데도 그렇다.
얼핏 조폭 미화로 볼 수 있는 대목이지만, 연쇄살인범을 잡은 일등공신이라 하더라도 깡패는 나쁜 놈일 뿐이다. 다행은 태석의 경찰다움이다. 태석은 동수가 먼저 잡은 살인범을 가로채 법정에 세운다. 동수를 설득해 법정 증인으로까지 나오게 한다. 그로 인해 동수는 감옥에 가게 된다. 나쁜 놈에 대한 응징이 이뤄져 그런 혐의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동수가 연쇄살인마 강경호(김성규)와 교도소에서 만나며 끝나는 결말은 마치 2편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에 비해 미친 존재감 형사로서의 김무열은 좀 약해 보인다. 연기를 떠나 뭔가 얍실하고 날렵한, 그러면서도 너무 선한 김무열 마스크 자체가 그런 느낌을 갖게 하는데, 극중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한 탓이다. 한편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할 만큼 연쇄살인마를 연기한 김성규는 ‘범죄도시’ 진선규처럼 새로운 발견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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