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물은 혼탁해도 아랫물이라도 맑아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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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물은 혼탁해도 아랫물이라도 맑아지자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02.2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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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고사에 걸린 연천(乞人憐天)이란 말이 있다.

글자대로라면 ‘거지가 하늘을 걱정한다’는 말이지만 이는 ‘거지가 정승(政丞)을 동정한다’는 뜻이다.
또 우스갯말로 다리 밑에 사는 거지 부자가 어느 부잣집에 불이나 구경하는데 집주인이 식솔들을 찾느라고 울부짖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불을 끄랴 가재도구를 건지랴 법석을 떨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거지 아이가 “아버지 우리는 집이 없으니 불 날 걱정은 없어 응?” 하고 말하자, 애비 거지 왈 “다 네 애비 덕분인 줄 알아라”고 했다는 것.
항상 나 자신이 못나서 남들 하는 높은 벼슬자리 한번 앉아보지 못하고 또 가진 것도 없어 자식들에게 넉넉한 용돈 주지 못한게 그저 부끄럽게만 여겨 왔는데 요즘은 사정이 좀 달라졌다.
다시 말할 것도 없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세상을 호령하던 사람이 대도(大盜)로 몰려 얼굴조차 들지 못하는 대죄인 신세가 되고 있는가 하면 세상을 몽땅 사 버릴 듯이 엄청난 재산을 모아 웬만한 사람은 그 앞에서 고개조차 함부로 들지 못할 만한 재벌들이 줄줄이 사법당국에 불려가는 고초를 겪을 뿐만 아니라 마치 벌떼처럼 침을 뽑아 들고 에워싸는 취재진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한 채 고개 숙이고 달아나다시피 피해 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니 측은하고 허탈감마저 든다.
또 앞의 거지 자식과 그 애비 사이에 한 말이 생각이 나 저기 자식들 앞에 못난 아비가 결코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도둑질하지 말아라”, “남의 것을 탐하지 말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 등은 비단 기독교의 십계명이나 불가의 십계에서 많이 지키도록 강조하고 있는게 아니라 우리가 모두 태어날 때부터 어느 가정에서나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도리로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 배움의 많고 적음에 관계 없이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관계 없이 벼슬자리의 높고 낮음에 관계 없이 인간으로서 의당 지켜야 할 법도요, 상식이다. 따라서 이를 어겼을 땐 남의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함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간 취급을 받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뽐낸다. 이는 모든 것 앞에 가장 귀중하고 영묘(靈廟)한 존재라는 뜻이다. 만물을 지배할 수 있는 지혜가 있고 힘이 있어서만이 불리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만은 아닐 것이다.
여느 동물이 흉내 낼 수 없는 도덕과 도리, 순리, 의리 그리고 염치(廉恥)를 알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를 행하는 사람만이 이 말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하겠다. 아무리 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도 이를 행하지 못하면 유사 인간이랄 수 밖에 없다.
시경(詩經)에 ‘록자득이불독식. 명초제록화공식(鹿者得餌不獨食. 鳴招諸鹿和共食)’이라는 글귀가 있다. ‘사슴은 먹이를 얻으면 혼자 먹지 아니하고. 여러 사슴을 불러 사이좋게 같이 먹는다’는 뜻이다.
특히 이 말은 군왕이 교훈으로 삼았던 구절이다. 그러기에 어떤 이는 동물의 욕심이 없음을 배울 때라고 역설한다. 그래서 그는 TV프로 가운데서 ‘동물의 세계’를 가장 즐겨 본다고 말하고 있다.
동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조지 오웰’이 쓴 동물농장이 생각난다. 쿠데타로 농장주인을 축출한 동물들은 돼지가 통치권을 거머쥔 뒤 비둘기를 날려 정보를 알아 오게 하고. 양 떼들에게는 네발은 좋고 머리카락은 나쁘다고 노래 부르게 해 자신을 숭배하토록 강조했으며 사냥 개떼를 앞세워 신변 보호를 하게 하는 한편 힘이 센 말에게는 먹이를 나르도록 강요했다.
끝으로 필자는 인제 우리는 모두 언제까지나 정치인들만을 쳐다보면서 눈을 흘기고, 허공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허탈감에 빠져 행여 자신이 하는 일마저 그르치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억지소리인지는 모르지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속담을 ‘윗물은 혼탁(混濁 사회의 현상 따위가 질서가 없이 혼란과 탁하고 어지러움 이라는 말) 해도 아랫물이라도 맑아지자’로 바꿔 보았으면 어떨지 제안한다.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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