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도의 남북 로맨스 ‘사랑의 불시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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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의 남북 로맨스 ‘사랑의 불시착’
  • 장세진
  • 승인 2020.03.0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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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tvN토일드라마 16부작 ‘사랑의 불시착’이 지난달 16일 종영했다.

지난해 12월 14일 첫 방송에서 6.0%대(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로 출발한 ‘사랑의 불시착’은 제8화에서 11.3%를 찍은 이후 종영까지 두 자릿 수 시청률의 인기를 끌었다.
최종회 시청률은 무려 21.7%다. 평균 시청률은 12.1% 수준이다.
평균 수치는 12.9%의 ‘미스터 션샤인’(2018)보다 못하지만, 최종회 시청률은 tvN 드라마 중 역대 최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tvN 드라마중 역대 최고 시청률은 2017년 1월 21일 종영한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가 최종회에서 찍은 20.5%다. 이미 여러 차례 말했듯 케이블 방송의 시청률 1%는 지상파 10% 정도와 맞먹는 점을 감안하면 완전 대박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월 4~5일, 1월 25~26일 4차례나 결방했는데도 그런 결과로 이어진 건 일견 의아한 일이다. 지상파 방송처럼 무슨 국가대표 축구경기 중계로 인한 결방이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사랑의 불시착’ 대신 방송한 설 특선영화 ‘극한직업’을 열 일 제치고 보긴 했지만, 결방 직후에도 떨어지지 않은 시청률이 의아한 것이다. 그만큼 인기를 끈 ‘사랑의 불시착’이다.
다른 글에서 설 특선영화 ‘극한직업’을 TV 최초로 방송한 tvN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최다 관객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올라있는 ‘극한직업’을 지상파도 아닌 케이블 방송에서 내보낸 점을 높이 산 것이다.
‘사랑의 불시착’도 그 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드라마다. 북한을 배경으로 한 남녀북남 이야기가 그리 낯익은 것이 아니어서다. 우리가 기억하는 북한 소재 콘텐츠는 드라마보다 영화가 더 많다. 대부분 남북한 남성들이 주인공으로 남남케미를 그린 영화들이다. ‘의형제’·‘공조’·‘강철비’·‘공작’·‘백두산’ 등이 얼른 떠오르는 그런 영화들이다.
이를테면 새로운 시도의 남북 로맨스 ‘사랑의 불시착’인 셈이다. 일단 완전 대박은 MBC ‘내조의 여왕’, KBS2 ‘넝쿨째 굴러온 당신’ 등을 집필한 박지은 작가의 이름값 확인으로 이어진다.
‘사랑의 불시착’은 퀸스그룹 후계자로 예정된 세이스 초이스 대표 윤세리(손예진)가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땅에 떨어져 겪는 이야기다. 하필 총정치국장 아들이면서 북한군 장교 리정혁(현빈)의 품에 떨어져 로맨틱 코미디임을 예고해준다. 우선 남북한 금수저들이라 할 세리와 정혁의 기상천외한 연애담이자 북한 풍물기란 극본을 써낸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로맨틱 코미디 형식을 취하긴 하지만, 뜻밖에도 순애보로 귀결되는 그 과정은 제법 그럴 듯해 보인다. ‘뜻밖’이라 말한 것은 순애보가 세리의 전체적 캐릭터와 딱 맞아 떨어져 보이지 않아서다. 아무튼 “기다리기라도 해야 살 수 있으니까”라는 세리와 “사랑하오라는 말을 못하게 될까봐 무서웠소”라는 정혁의 그런 사랑을 이루는 남녀가 현실에서 얼마나 있을까만, 디테일이나 여러 극적 장면 내지 장치들을 통해 시청자 마음을 휘젓는 힘이 있다.
그러나 스위스에서의 만남보다 만나지 못한 채 애타게 그리워하는 결말이 더 나을 뻔했다. 경색된 남북관계 등 현실뿐 아니라 그로 인한 원천적 비극 상황이 극대화될 수 있어서다.
로맨스물치곤 빼어난 유기적 구성이라든가 디테일을 잘 살린 사랑 장면과 달리 좀 성긴 구석도 있다. 가령 자신을 죽이러 온 조철강(오만석)에 대한 어떤 경계나 대비도 없이 평소처럼 생활하는 세리가 그렇다. 또 예정대로 북으로 가지 못한 표치수(양경원) 등 중대원들이 아무런 걱정도 안한 채 태평스러운 서울시민처럼 구는 걸 들 수 있다.
북한의 일상적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건 새로운 경험이다. ‘언제 그런 모습의 북한을 본 적이 있었나?’ 반문할 정도다.
정혁을 비롯한 그의 중대원들이 멋지고 착하거나 인간미 넘치는 군인들로 그려지긴 하지만, 그런 걸 북한 미화니 찬양 따위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잦은 정전에 평양 가는 열차가 멈춰서고, 모텔이나 여관 임검도 아닌 가정집 숙박 검열이 일어나고, 사흘 굶어 도둑질하는 소년들과 자동차 와이퍼 훔치는 패거리들을 본 시청자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또한 쉴새없이 나불대거나 너무 인간친화적인 코믹 모드의 세리를 보는 일보다 더 불편한 건 거의 모든 캐릭터나 극중 상황의 희화화다. 가령 고명은(장혜진)·명석(박명훈) 남매가 ‘기생충’ 출연 배우로 주가 상승중이긴 해도 이 드라마에서 왜 ‘웃기는 짜장’이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웃기지 않는 등장인물이 거의 없는 건 세리와 정혁의 순애보조차 장난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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