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당 0석과 안철수 원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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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당 0석과 안철수 원죄론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05.0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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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일인 4월 15일 일간신문들은 ‘지난 총선 잘 찍으셨나요, 나의 한 표가 미래입니다’(한국일보), ‘내 손에 달린 내일의 정치’(한겨레), ‘오늘 선택의 날… 내 한 표가 전북의 미래 바꾼다’(전북일보) 같은 제목의 기사를 1면 톱으로 내보냈다.

그런 독려성 신문기사가 아니라도 나는 투표할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런데 300명 당선인이 확정되자 ‘나의 한 표가 미래’라는 일련의 기사가 꼭 그런 것만도 아님을 깨닫는다. 특히 ‘내 한 표가 전북의 미래 바꾼다’에 짙은 회의가 생긴다.

요컨대 4년 전 내가 찍은 국민의당이 미래를 바꾸긴커녕 당 자체가 공중분해되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만 보이다가 0석을 기록한 참패의 결과로 나타나서다. 바로 민생당 이야기다. 민심의 엄중한 심판이라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게 하는 결과지만, 그 연원은 4년 전 국민의당 돌풍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찾을 수 있다.

국민의당은 민주당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과 호남의 반문(反文)계가 주축이 돼 2016년 2월 2일 창당했다. 국민의당은 그해 4·13총선에서 호남 28석중 23석 당선 등 총 38석의 제3당 돌풍을 일으켰다. 이를테면 안철수 대표가 거대 양당에 맞설 확실한 제3당의 맹주 역할을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셈이었다.

거대 양당제에 피로감이 쌓인 유권자들의 신선한 선택이었고, 그로 인해 안철수 대표의 대권가도에도 탄력이 붙는 듯했지만, 그러나 2017년 5월 이른바 장미대선으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서 국민의당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2017년 1월 24일 박근혜 탄핵정국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한 일군의 의원들이 창당한 바른정당과의 합당 문제가 표면적 이유였다.

결국 2018년 2월 13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친 바른미래당이 출범했다. 당시 안대표의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우클릭 행보로 해석됐다. 다음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장기 포석으로 읽히기도 했다. 이보다 앞선 2월 6일 정체성이 다르다며 바른정당과 합치길 거부한 국민의당 의원 14명이 먼저 민주평화당을 창당했다.

그런데 그들은 당권파의 민주평화당과 비당권파의 대안신당으로 다시 쪼개졌다. 나는 ‘시끄러운 국민의당을 보며’(전북연합신문, 2017년 11월 30일)와 ‘민주평화당 왜 이러나’(전북연합신문, 2019년 7월 15일)란 칼럼을 통해 그런 국민의당 행태를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나 미래통합당은 놔두고 그런 행태에 대해 두 번이나 비판의 글을 쓴 것은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후보를 찍은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속 상하고 부아가 치밀어서다. 아무튼 창당 주역인 유승민·안철수 대주주가 떠난 손학규 대표의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이 다시 합쳐 민생당으로 이번 선거에 나섰지만, 결과는 민망하게도 0석이다.

내가 ‘민주평화당 왜 이러나’에서 ‘지금도 표가 멀리멀리 달아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대로 유권자 외면의 참담한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손학규 대표가 책임진다며 즉각 당을 떠났지만, 민생당 몰락의 원인(遠因)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있지 싶다.

안 대표 입장에선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뛸지 모르지만, 이른바 안철수 원죄론이다. 안철수 원죄론은 다른게 아니다. 그가 만든 당으로 확실한 제3당의 위치를 확보,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는데도 그걸 걷어차버린 그의 실패한 정치적 승부수를 말함이다. 결국 민생당 0석이란 총선 결과도 그와 무관치 않다.

박지원·정동영·천정배·박주선 등 소속 호남 중진의원들은, 이를테면 안철수 대표의 실패한 정치적 승부수에 놀아난 희생양이 되고만 셈이다. 거기서 갖는 생각 하나는 그런 원죄를 짊어지게된 안철수 대표가 과연 2022 대선에 나설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당장 4년 전 열광적 지지를 보내준 호남 민심도 든든한 지원군으로 안착시키지 못하고, 이미 유승민 의원이 떠난 손학규 대표의 바른미래당도 걷어차버린 그는 도대체 누구, 어느 세력을 등에 업고 2022 대선에 나서려는 것일까.

새로운 국민의당을 창당한 안철수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단 3석을 얻는데 그쳤다.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아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런지 난데없는 국토 종주 마라톤에만 열중한 모습이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을 롤모델로 말하는 모양이지만, 내 사람 또는 내 편 만들기 실패를 거듭하는 그의 대선주자로서의 앞날이 어떨지 민생당 0석이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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