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고 다섯 번째 스승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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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고 다섯 번째 스승의 날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05.2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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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선생님은 제 평생 잊지 못할 스승님이세요. 자주 연락 못드려 죄송해요. 일간 한 번 찾아 뵙겠습니다”

2005년 전주공업고등학교에서 편집장을 했던 제자 J군이 전화를 해와 잠에서 깼다.

J군은 전문대 졸업후 대기업 엔지니어로 일한 제자다. 언젠가 중국 공장에서 근무하게 돼 한동안 연락 못드렸다며 조만간 회사를 그만두려 한다고 전화를 해온 적도 있다. 이어진 통화에서 J군은 10년쯤 회사생활하다 희망퇴직으로 그만두고 자기 가게를 차렸다고 했다.

어제는 J군 1년 후배인 제자 O군에게 연락이 왔다. O군의 경우는 J군과 좀 다르다. 전주에 사는 O군은 학생기자를 했던 동기 4명의 간사라서다. 그 4명이 군대 제대하고 나서인가, 그 이후 해마다 날 찾아오곤 했다.

작년엔 내가 발행인을 맡고 있는 ‘교원문학’ 출판기념회를 겸한 제3회교원문학상·전북고교생문학대전 시상식장에 하객으로 참석한 바 있다. 그러고 보니 벌써 퇴직하고 다섯 번째 스승의 날(제39회)이다. 제자들의 전활 받아서 그런지 퇴직하고 맞는 스승의 날 감회가 오히려 더 새로운 듯하다.

재임 중 ‘참 우울한 스승의 날’(전북연합신문, 2014년 5월 15일), ‘개념없는 스승의 날’(한교닷컴, 2015년 5월 26일)을 쓰곤 했으니까. 이 글들은 제목에서 짐작되듯 스승의 날에 대해 부정적 소감을 각각 밝힌 것이다.

물론 기쁜 스승의 날 추억도 있다. 가령 학생들로부터 선행상을 받은 스승의 날 기억이다. ‘제29회 스승의 날 기념표창’이 상장 일련번호를 대신한 상문 내용은 이렇다. “위 선생님은 본교를 위해 아름다운 마음으로 참교육을 실천해 학생들에게 모범이 됐음으로 이에 상장을 수여함. 2010년 5월 15일 군산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회장 김연주”이다.

부상도 없고 그냥 덕담이거나 우스개로 쓴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게 딱 맞는 말이다. 나는 그 기발한 발상에 박수부터 보냈다. 이런저런 수상을 수십여 차례 했지만, 그런 상은 처음이라서다. 더 깜찍하고 기특한 것은 교사 전원에게 상을 수여한 점이다. 상의 남발이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스승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하는 제자들의 그 충정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마지막 순서 스승의 날 노래 제창에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뜨거운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감격의 눈물, 자부심이나 긍지의 물결, 아니면 그 둘 모두일 수도 있다. 제자들의 마음과 정성이 물씬 배어 나오는, 그리해 선생하길 잘했다는 그런 뿌듯함 말이다. 이를테면 그런 뿌듯함을 이제 사회인이 된 제자들 전화나 방문으로 느끼게된 셈이라 할까.

기쁜 기억은 또 있다. 나는 특이하게도 군산여자상업고등학교 제자 B양의 추천으로 제33회 스승의 날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알고보니 2013년 12월 대통령상인 ‘대한민국인재상’을 수상한 B양이 지도교사였던 나를 추천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수상자들처럼 학교에서 후보자 신청 공문을 올린 게 아니라 교육청에서 서류 작성해 보내달라는 연락이 와 표창받은 경우다. 그런 개인적 소회 말고 감회가 새로운 이유가 더 있다. 가령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던 2014년을 떠올려 보자. 정부 주관의 기념식을 비롯한 교사 사기 진작 열린음악회 등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대한민국스승상’ 시상식도 무기한 연기됐다. 최대 교원단체라 할 한국교총 역시 기념식을 열지 않기로 했었다.

지금은 어떤가. 코로나19로 아예 학생들 등교조차 안된 사상 초유의 상황이다. 각 시·도별로 제39회 스승의 날 훈·포장, 대통령 표창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학생들 없는 텅 빈 교실에 담임교사만 덩그러니 있는 뉴스 속 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인다.

특히 이번에 임용된 새내기 교사들은 학생들이 없는 교단 처음 스승의 날을 맞이하게 됐으니 오죽 할까. 예년과 같은 스승의 날 기념식이나 행사는 커녕 죄지은 심정으로 코로나19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전국의 교원들 고충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미 퇴직한 선배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외람되지만, 현직에 있는 교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지금도 여전히 성직(聖職)인 선생님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으로 국가적 재난인 코로나19를 잘 극복해 나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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