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금강 마실길은 부남면 도소마을에서 무주읍 서면마을에 이르기까지 강변을 따라 이어진 길이다. 그 중 대소와 율소를 잇는 벼룻길은 수려한 부남이 품고 있는 가장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오래전 두 마을 간 소통을 가능하게 했던 이 길은 주변 경관이 뛰어날 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곳으로 ‘길’의 의미를 더한다.
요즘처럼 누구와의 만남도, 대화도 제한된 시기. 자연의 품이 더욱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부남면에서는 한적한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나 라이딩을 즐길 수 있고, 보트에 몸을 실어 강물을 따라 레프팅을 체험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벼룻길을 산책하며 얻는 감흥은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걷는 데는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다. 자연이 차려놓은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할 준비만 하면 된다. 누가 어떤 이유로 이 길을 지나든, 걷는 이에게 치유와 힐링의 시간이 될 것은 분명하다.
여정은 시골마을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부남면 대소마을에서 시작된다. 사방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산, 그 아래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어쩌면 이곳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마을에서는 부남의 명산 조항산과 옥녀봉, 지장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 고장의 출입문 역할을 했던 대문바위도 멀지 않은 곳에 의연하게 서있다. 걷기 전, 한 바퀴 시선을 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준비운동이 된다.
인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지형이 완만한 동산에 이른다. 산인지 들판인지 분간이 어려운 이곳을 주민들은 저마다 경계를 정해 대월평, 사근평, 구석뜰이라 부른다. 언덕 위부터 언저리까지 논밭과 과수원이 올망졸망 구성지게 자리잡고 있다. 농부들의 땀방울이 스며있을 대지, 여기가 바로 주민의 주된 삶터일 것이다. 가끔 금강변을 타고 온 시원한 바람에 감사하며 잠깐의 휴식을 가졌으리라. 이 구간은 여름밤 길동무가 돼주는 반딧불이를 쉽게 볼 수 있어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완만한 경사지를 오르내리다보면 넓게 펼쳐진 강변길을 만난다. 길에서 벗어나 강쪽으로 발을 옮겨 물속에 손을 담가보고 물수제비 뜨기로 동그랗게 퍼져나가는 잔물결을 만들어 본다. 여름의 끝자락, 지금 주변은 무성한 수풀이 자리잡고 있지만, 지난 봄 형형색색의 들꽃이 행인을 반겼고 올 가을이면 바람따라 흔들리는 갈대숲이 운치를 더할 것이다.
먼발치 보이는 큰 바위를 가까이서 보고픈 마음에 걸음을 재촉해본다. 다가가 마주한 것은 성품 착한 며느리의 애환이 서려 있는 각시바위. 금강 벼룻길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전설 속 바위 중 하나다. 어쩌면 여기서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며, 풍파를 견뎌 온 세월만큼이나 스쳐 보낸 인연도 많았을 것이다. 각시바위의 한 부분에 동굴처럼 생긴 특별한 통로가 눈에 띈다. 어찌 보면 대소와 율소를 통하는 관문처럼 보인다. 수로였을 땐 물이 흘렀을 테지만, 지금은 지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탐험의 느낌을 주는 명소가 된 곳이다. 망치와 정을 사용해 뚫어놓은 길이라니 누군가의 수고로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맞은편에 각시바위의 전설 배경인 봉길마을이 보인다. 강 건너에서 이곳을 바라보는 느낌은 또 어떨지...
시야에 들어오는 것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며 걷다보면 어느새 금강 마실길 1코스의 종착점인-누군가에게는 출발점인- 율소마을이다. 예부터 밤나무가 많아 밤소라 불렸던 아름다운 마을이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한눈에 보이는 경관이 이채롭다. 벼룻길 모습을 강물에 찍어 낸 데칼코마니 같다. 마주쳤던 바위와 나무들은 기특하게도 잘 어우러져 있다. 그들의 침묵을 깨우는 강물과 바람도 존재감을 알리며 나그네처럼 부는 듯 흐르고 흐르듯 스친다.
유무형의 개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섭리와 이치에 어긋나지 않게 어울려 있다. 그리고 인간에게도 그 속에서 그리 살아가라 이른다. 자연이 빚고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사람이 다듬어놓은... 이곳 벼룻길이 전하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 지난달 수해로 인해 금강 벼룻길 일부 구간에 대한 통행을 제한하고 있어, 오는 10월 경 정비된 벼룻길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