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효 선생의 판소리 사설 필사본이 완질로 발견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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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효 선생의 판소리 사설 필사본이 완질로 발견되다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09.1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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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우 동리 문화사업회 이사장
지난 2일 고창 고수면의 박종욱 씨 댁에서 동리 신재효 선생이 쓰신 사설집의 필사본이 완질로 발견됐다.
거의 1906년 무렵에 필사한 것으로 보이는 이 필사본이 100여 년을 지나 거의 완벽한 상태로 우리 앞에 놓이게 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소중한 문화 유산을 소중하게 보관해온 문중에 고마움을 표하고자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동리 신재효 선생은 전해 오는 판소리 열두 바탕 중 여섯 작품을 개작해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19세기 말의 판소리 사설 형태를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던 것이다.
특히 변강쇠가는 선생이 개작해 남겨준 필사본이 유일한 것이어서, 개작한 필사본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작품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개작이 이루어지 않은 여섯 작품은 판소리로 전승되지 않아 판소리로서의 실상을 알 수 없게 됐던 것이다.
선생은 여섯 작품을 개작했을 뿐만 아니라 단형판소리인 오섬가와 광대가, 치산가, 도리화가 등의 작품을 직접 창작해 판소리의 영역을 넓히는 노력을 했다.
선생은 개작한 여섯 작품과 창작한 작품, 그리고 그 이전부터 전승되던 단가 등을 일일이 필사해 후세의 소중한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고 시간이 지나면서 손상이 되자, 후손들은 원본을 다시 필사해 그 마멸을 대비했다.
그 때 필사한 것은 원본과 같이 한글로 쓴 것과 정확한 이해를 위해 한자를 병기하거나 국한문 혼용으로 쓴 두 가지가 있었다.
이렇게 해 이른바 읍내본과 성두본이 만들어졌는데, 신재효 선생이 직접 만든 원본이 그 소재를 알 수 없게 됐으니, 그나마 필사본이 남게 된 것은 천행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재효 선생의 사설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학문적으로 고찰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이후이지만, 그 전에도 이미 고창에서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인식하고 전승을 위해 필사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이번에 발견된 고수 청계본은 1900년대 초기에 학정 박정림 선생이 삼농당 정자에서 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많이 알려진 이병기 선생이 필사한 가람본과 강한영 선생이 필사한 새터본, 그리고 북으로 넘어간 김삼불이 필사한 김삼불본 등이 있지만, 이것들은 모두 1940년대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의 발견을 계기로 필사된 것으로 알려진 고수의 덕동본과 흥덕본도 온전한 모습으로 발굴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은 일제의 강점과 6.25, 그리고 농촌의 피폐한 경제 사정으로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험난한 세월을 지나면서 고수의 청계본이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된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필사본의 연구를 통해 신재효 선생의 판소리 사설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전승됐는가를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1900년대 초기의 언어 사용 방식과 판소리를 수용하는 선인들의 태도 등도 함께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신재효 선생이 고창을 판소리의 성지로 만들었다는 구체적 실중 자료가 확인됐다는 점이 강조돼야 할 것이다.
동초 김연수 명창이 이 사설을 참고하면서 동초제 판소리를 만든 것과 같이, 신재효 선생의 사설은 앞으로의 판소리 발전에도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이 소중한 자료를 잘 간수해 빛을 볼 수 있게 해주신 소장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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