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인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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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인생2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10.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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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지난해 나는 ‘실패한 인생’(전북연합신문, 2019년 7월 10일)이란 글을 쓴 바 있다.
딸아이 결혼식을 치르고 축하객 명단을 작성하면서 느낀 친구와 인간관계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 글이다.
그로부터 1년 3개월 만에 다시 실패한 인생 이야기를 하자니 씁쓰름하다.
이름해 ‘실패한 인생2’다. 바야흐로 신춘문예나 문학상 시상식 계절을 앞두고 새록새록 생겨난 잔상(殘像)이라 할까.
오래전 문학도로서 나의 꿈은 ‘○○대교수, 문학평론가’였다. 그러나 나는 내내 ‘○○고교사, 문학평론가’였다.
문학석사를 따고 하필 박사과정을 밟으려는 시점에 좋지 않은 소식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박사학위는 기본이고 1억 원 들여야 교수가 된다는 ‘돈 주고 교수되기’ 비리가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식겁한 나는 그만 박사학위 과정을 포기해버렸다.
나는 1983년, 당시로선 좀 희귀한 방송평론가로 데뷔했다. 그러니까 지금 문력(文曆) 38년차인 중견평론가라 할 수 있다.
문학평론만으로 좁혀도 30년이 넘었다. 1989년 ‘표현’신인작품상과 199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니까.
나는 반짝 등단에 그치지 않았다. 멀쩡한 직업 교사를 하면서도 그야말로 눈썹 휘날리는 비평 등 작품활동을 해왔다.
지금까지 펴낸 문학평론집·산문집 등 저서가 총 47권(편저 4권 포함)에 이를 정도다.
무엇보다도 47권의 책은 도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저술로 알고 있다. 시집 1권만 빼고 모두 300쪽 이상 되는 책들이란 점에서 시인들이 펴낸 시집들과 견줄 바가 아니다.
그만큼 왕년엔 참 많이도 청탁해온 글들을 썼다. 등단 이래 일간신문이나 월간 잡지 등에 발표한 청탁 글들을 묶어 펴낸 책들이 부지기수이니까!
책 한두 권 펴낸 새내기 문인들이 부러워할 문력인데도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은 그런 내게 신춘문예나 문학상 심사위원 위촉이 없어서다.
뭐, 중앙 일간지야 그렇다쳐도 지방지에서조차 신춘문예 심사위원 위촉을 받아본 적이 없다.
수상자와 함께 발표되는 심사위원 면면을 보면 깜 안 되는 문인들도 잘만 들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참 이상한 일이다.
잡지 신인작품상 심사위원도 가뭄에 콩 나는 격으로 해보았을 뿐이다.
주로 소설 심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심사위원이기 때문 이른바 신인을 양산해대는 잡지가 위촉해오는 걸 오히려 경계했던 마음도 있었지 싶다. 그래도 내가 해온 문학 활동에 비하면 너무 뜸한 심사위원이란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막상 퇴직하고 4년 이상 지나다보니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더 스쳐가곤 한다.
특히 고교생백일장처럼 수십 명씩 참여하는 심사위원으로 위촉을 받지 못한 것은 실패한 문학 인생의 하이라이트라 할만하다.
아마 고교 교사로 현직에 있을 때는 학생들 인솔교사로 사제동행해야 했으므로 심사위원 위촉이 없어도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무릇 작가란 작품(집)으로 말하는 게 아닌가.
그것이 확실한 명제라면 저명 문인인 나는 그만큼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혹 문학박사도 아닌데다가 대학 교수가 아니어서 그런 것일까. ‘실패한 인생’에서 알 수 있듯 결코 친화적이지 못한 인간관계까지 설상가상으로 겹쳐 신춘문예나 문학상 심사위원 한 번 못해본 것인가?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많은 도내 어떤 신문사로부터도 논설위원 위촉이 없는 점이다.
상근은 고사하고 하다못해 객원 논설위원을 해달라는 요청이 없는 게 나로선 이상한 일이다. 전에는 현직 교사의 신분이라 그런 생각할 짬조차 없었지만, 퇴직한 지 4년이 지난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는 이들은 다 아는 일이지만, 나는 1992년부터 오랜 세월 신문에 칼럼을 발표해왔다.
내가 펴낸 47권 중 13권에 이르는 산문집은 대부분 신문 등에 발표한 칼럼들을 묶은 책이다.
항의 전화도 받았지만 “가려운 곳을 긁어주어 통쾌하다”며 앞으로도 계속 써달라는 격려·주문이 많았다. 평론가보다도 신문 칼럼 필자로 알아보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음을 알게됐을 정도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등단한지 38년째 되는 문인이다. 거기에 더해 교원문인으로서 수많은 제자들을 지도해 상을 받게 하고, 그런 공적으로 유수의 교육상까지 받았는데도 왜 실패한 인생이란 생각이 드는지 모를 일이다.
방송과 영화평론까지 합쳐 47권의 책을 펴냈으니 나름 알찬 문학 인생을 산 셈인데도 왜 그런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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