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전북현대와 전설 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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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전북현대와 전설 이동국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11.0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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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11월 1일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아주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전주 MBC가 오후 3시부터 중계방송한 하나원큐 2020 K리그1 27라운드 경기에서 전북현대가 대구를 2대 0으로 제압한 것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최종전이 된 27라운드 승리는 단순히 한 경기를 이긴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쓴 승리여서다. 전북현대는 2017~2020 4년 연속 우승이라는 K리그 축구 역사를 새로 썼다. 2016년도 리그 1위였지만 2013년 전북 스카우터가 심판에게 돈 건넨 것이 뒤늦게 적발돼 승점 9점을 삭감당하는 일이 있었다. 그 때문 마지막 라운드에서 1대 0으로 패한 서울에 우승컵을 내준 바 있다.

전북현대는 통산 8회의 최다 우승팀이란 역사도 새로 썼다. 이동국이 입단한 2009년부터 8차례 정상에 오르며 성남(7회)을 제치고 K리그 최다 우승 팀이 됐다. 아낌없는 구단의 투자와 그에 부응한 선수들, 그리고 전북 팬들의 성원이 일구어낸 금자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동국을 영입해 2018년까지 10년을 같이한 최강희 전 감독의 공이 크다 할 것이다.
그런 기쁨의 순간을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게 생중계한 전주 MBC의 공이 만만치 않지만, K리그1 27라운드 경기는 이동국 선수의 은퇴전이란 의미도 빼놓을 수 없다. 전반 20분이 되자 녹색 유니폼을 입은 프로축구 K리그1 전북 팬들이 2분간 기립 박수를 쳤을 정도로 ‘라이언 킹’ 이동국은 12년간 전북현대의 상징적 존재였다.
코로나19로 제한되게 입장한 관중 1만 251명이 보내는 선물에 화답하려는 듯 등번호 ‘20’을 달고 현역 마지막 경기를 치른 이동국은 전후반 9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90분 풀타임은 시즌 처음이라는데, K리그 역대 최다골(228골), 최다 공격 포인트(305개) 등 ‘K리그의 전설’ 이동국은 그의 전매특허인 발리슛 등 4개의 슈팅을 시도했지만 득점에는 실패했다.
이동국은 은퇴식에서 “팬들이 가져온 내 유니폼을 보며 울컥했다. 나만이 전북에서 이 번호를 쓸 수 있게 돼 감격스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북은 역대 구단 선수 중 처음으로 이동국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처음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정의선 전북 구단주(현대차그룹 회장)가 이동국에게 럭셔리 미니밴과 은퇴 기념패를 증정한 소식도 전해졌다.
전주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지난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 은퇴식에서 전북현대 이동국 선수에게 명예 시민증을 수여했다. “12년 동안 전북현대모터스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하며 K리그 최약체로 평가됐던 팀을 아시아 최강팀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등 전주시민에게 큰 감동과 행복을 선사했다”는 이유에서다.
1979년 포항 출생인 이동국은 1998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다. 포항에서 초·중·고를 나온 그는 이내 팀의 팬들을 몰고 다니는 스타로 자리 잡았다. 축구 실력에 준수한 외모로 스타성까지 겸비한 대형 신인 등장에 프로축구 전체가 들썩였는데. 실제 2000년대 중반 여고생이던 큰딸이 이동국 팬으로 야단법석을 떨어대던 일이 기억난다.
이동국은 2009년부터 12년 동안 전북현대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맹활약하며 K리그 8회 우승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회, FA컵 1회 등 모두 10차례 우승컵을 들었다. K리그 최다 승점과 전주월드컵경기장 홈경기 최다 관중수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전주시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K리그 최약체로 평가받던 팀을 아시아 최강팀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해피엔딩의 선수생활 마감인데, 이동국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특히 월드컵은 그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보도를 종합해보면 1998년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전에서 깜짝 데뷔한 그는 19살 52일로 우리나라 최연소 월드컵 출전 기록을 세웠다. 한국이 0-5 대패를 당하던 와중 호쾌한 중거리슛을 날리며 ‘이동국’ 이름 석 자를 국민에게 알리기도 했다.
당시 한 외국 축구잡지는 프랑스월드컵을 결산하며 “이동국 같은 선수가 성장한다면 한국 축구도 미래가 있다”라고 적기도 했다. 불행은 2002년 한일월드컵부터 시작됐다. 당시 이동국의 국가대표 선발을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이 부임하면서 ‘무한경쟁’이 시작됐고, 이동국은 대표팀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다.
온 국민이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 있던 그때 이동국은 “대표에서 탈락한 뒤 2주 동안 평생 마실 술을 다 마셨다”고 할 정도였다. 절치부심 도전했던 2006년 독일월드컵 때는 대회 직전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며 대표팀에서 또 탈락했다. 6년 전 “나를 안 뽑아준 히딩크 감독은 새로운 이동국을 만든 은인”(동아일보, 2014년 12월 8일)이라 말했지만, 세월이 흐른 뒤 덕담일 뿐이다.
아무튼 한 팀에 무려 12년을 몸담은 이동국도 ‘전설’답지만, 전북현대가 자랑스러운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얼마전 기소된 공직선거법 위반사범에 전북 국회의원이 4명(15%)이나 들어 있는데다가 뭐 하나 딱 부러지게 전국적으로 1등인 것이 없어 생긴 도민들의 기본적 열패감·상실감 따위를 확 날려버린 전북현대라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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